23.05.22 12:00최종 업데이트 23.05.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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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아 토마스가 2022년 3월 18일 애틀랜타 조지아 공대에서 열린 NCAA 수영 및 다이빙 챔피언십 여자 200m 자유형 결승전에서 수영을 마친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수영 선수이자 트랜스젠더 여성인 리아 토마스는 2022년 집피 인비테이셔널(zippy invitational)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자 그녀의 소속팀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수영 선수들의 부모 중 몇몇은 익명으로 전미대학체육협회(NCAA)에 편지를 보냈다. 리아 토마스의 경기 참가를 막아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의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여성 스포츠가 위협을 받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이어진 예일대와의 경기 중 리아 토마스는 자유형 100야드 경주에서 6위로 들어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논란을 의식한 리아 토마스가 일부러 천천히 수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돌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는 시스젠더 여성 선수보다 유리하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결과를 맞추려고 하니 벌어진 소동이었다. 


리아 토마스를 향한 설화는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같은 해 리아 토마스는 NCAA 디비전 1 여성 챔피언십 500야드 자유형 경기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해당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그러자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를 문제 삼던 사람들과 <폭스 뉴스>와 같은 우익 미디어 채널 그리고 론 드산티스를 비롯한 공화당계 보수 정치인들이 리아 토마스의 성취를 비난했다.

사실 국가 대회 수준의 대학 리그 경기에서 성과를 거둔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미국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급 대회인 NCAA 디비전 1이 아니라 중급 대회인 디비전 2를 살펴보면 이미 2019년 트랜스젠더 여성인 세시 텔퍼가 허들 종목 우승을 차지한 전례가 있다. 물론 당시에도 텔퍼의 성취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리아 토마스의 경우 만큼 전방위적으로 혹독한 비난이 쏟아지진 않았다.

성소수자 향한 편견

리아 토마스를 향한 맹렬한 비난은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그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젠더를 제물 삼아 미국 사회의 우경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이 집권한 주에서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성 확정 치료를 금지하고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을 제한하거나 아예 도서관 서가에 관련 도서 퇴출하는 법안을 속속 통과시키고 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스포츠 참여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아 토마스와 같이 눈에 띄는 선구자들은 아주 좋은 목표물이 된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 아니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과 이들의 혐오 선동은 이미 존재했다. 그리고 리아 토마스는 우승을 통해 단숨에 유명세에 올랐다. 정치인들은 이미 존재하는 혐오 선동에 힘을 실으며 군불에 기름만 부어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은 이미 공고하다. 때문에 이들을 악마화하거나 부당한 프레임을 씌우기는 매우 편하다. 반대로 이에 맞서는 쪽은 사실 불리한 입지에 서있다. 선입견을 부수기 위해서는 기나긴 설명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그것이 편견에 기반한 것이라도 익숙하고 짧은 구호에 쉽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이 괜히 트랜스젠더를 건드는 게 아니다. 때문에 이런 의제를 다룰 때는 보다 정확한 정보를 찾고 세심하게 판단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리아 토마스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성인이 될 때까지 '남성'으로 살아왔으니 아무리 호르몬 요법을 받았다고 해도 시스젠더 여성과의 경기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대부분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별 정체성을 부인하는 편견 때문에('이들은 자신이 여성이라 주장하지만 여전히 남자다'와 같은) 설득력을 가진다. 별다른 검증 없이 이런 주장을 '하나의 의견'으로 소개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정말로 부당한 이점을 얻었나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매우 당혹스러운 글을 발견했다. 지난 13일 <한겨레>에 실린 '400위권 남성 수영선수, 여성 되고 1위에 오르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일단 제목부터 맞지 않다. 리아 토마스가 지정 성별에 따라 '남성'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을 수는 있지만 토마스의 성별 정체성은 명백히 여성이다. 그런 사람을 '남성 수영선수'라고 지칭하며 '여성이 되었다'고 표현해선 안 된다.

또한 글은 리아 토마스가 '남성'으로 살며 남자부 경기에 출전할 때는 400위권 정도의 순위를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토마스가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며 이점이 발생한 듯 묘사한다. 그런데 사실 리아 토마스는 유년 시절부터 촉망받던 수영 선수였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진학한 이후 출전한 아이비리그 챔피언십에서도 10위권 이내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기량은 계속 상승해 이후 같은 대회에서 2위에 올라서거나 학교별 대항전에서는 승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은 미국 현지 언론에도 보도되었고 스윔 클라우드(Swim Cloud)와 같이 선수들의 성과를 기록한 페이지에서도 쉽게 살필 수 있다. 그러니까 추세를 살핀다면 리아 토마스가 우승을 차지하는 게 이상한 흐름도 아니다('400위권'이라는 순위는 공식적으로 남겨진 기록도 아니며 그마저도 리아 토마스가 이미 호르몬 요법의 영향을 받던 시점에 '남성부' 경기에 출전하여 남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리아 토마스는 정말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며 부당한 이점을 얻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리아 토마스의 경기 기록을 다른 시스젠더 여성 선수의 것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마침 영국의 언론사인 <인디펜던트>에서 NCAA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이 작업을 수행했고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리아 토마스가 여성 스포츠에 위협이 된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분석에 따르면 리아 토마스가 우승을 차지한 500야드 경기에서 평균보다 약간 높은 기록을 보였지만 오히려 100야드 경기의 경우 평균보다 낮은 기록을 남겼다. 500야드 경기에서 최고 기록은 여전히 시스젠더 여성인 케이티 레드키의 것이었으며 리아 토마스는 <인디펜던트>가 수집한 56개의 기록 중 8번째로 빠른 것에 속했다.

한마디로 리아 토마스의 기록은 다른 시스젠더 여성과 별반 다를 게 없거나 오히려 우승하지 못한 종목의 경우 더 느린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언론이 소수자 다룰 때 주의할 것

2차 성징이 끝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호르몬 요법은 사람의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고 에스트로겐을 주입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체지방의 형태가 바뀌거나 체모가 가늘어지고 근육량과 근력이 줄어드는 현상을 겪는다. 리아 토마스 역시도 그로 인한 기록 저하를 겪었으며 키가 1인치 줄어들기도 했다.

2015년 최초로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들의 운동 성과를 분석하여 저널로 발간한 조안나 하퍼는 호르몬 요법 이후 변화한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 요법으로 인해 문제를 겪거나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트랜지션 전보다 훨씬 낮은 성과를 기록한 트랜스젠더 여성 운동선수들도 있다고 언급한다. 하퍼는 단지 그들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4년부터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출전권을 따낸 선수는 2021년에야 등장했다. 몇 백 명의 시스젠더 메달리스트들 사이에서 메달을 딴 논 바이너리 선수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 스포츠를 파괴하고 공정성을 해치리라는 우려에 비하면 지나치게 소박한 기록이 아닌가.

트랜스젠더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놓고 '공정'을 말하는 이들은 이 사실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하퍼의 말처럼 승자만 이야기 된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트랜스젠더 여성처럼 분야의 '외부인'으로 치부되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약탈자'라는 이미지를 씌우기 쉬워지는 효과를 낳는다.

스포츠에서 공정을 추구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일은 다양한 사례를 참고하여 엄밀하고 정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우승한 경우만 가져와서도 안 되고 실제로 그런 경우에도 해당 선수가 정말로 부당한 이점을 누린 게 맞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누군가의 우승이 왜 지금 더 특별히 논란이 되는지도 맥락을 짚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칼럼은 그 일을 하는 대신 공정과 공정,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고 있다며 독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 질문을 돌린다. 이미 편견에 기반한 관점을 수용하여 그게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마치 아무 판단 없이 중립을 지키는 척한다. 나는 이것이 특히나 소수자를 다루는 언론의 적절한 태도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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