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0 11:42최종 업데이트 23.05.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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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사> 책자 표지 ⓒ 전라북도청

 
작년 12월 모습을 드러낸 <전라도 천년사>로 인한 논란이 상당하다. 총 34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가 식민사관이나 임나일본부설의 영향을 받았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라도 천년사>라는 책 제목은 강감찬 귀주대첩(1019) 당시의 고려 주상인 현종 임금의 행정구역 개편에 근거한다. <고려사> 지리지는 995년에 강남도(전북 일대)와 해양도(전남·광주 일대)가 설치됐다고 서술한 뒤 "현종 9년에 합쳐서 전라도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귀주대첩 전년도인 1018년에 강남도와 해양도가 합쳐진 전라도가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그때부터 천년이 흘렀음을 근거로 책 제목에 천년사가 들어간 것일 뿐, 책 내용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상고사 시대부터 다루고 있다. 이재운 편찬위원장은 제1권 총설에 실린 '편찬사'에서 "혹자는 <전라도 천년사> 책 제목만 보고 단순하게 1000년간의 역사만을 다룬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한 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방대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목의 천년은 영고성쇠의 긴 세월을 의미"한다는 나름의 해석도 부가했다.

논란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가 집필진 213명과 함께 생산한 이 시리즈에 맞서, 지난 1월 10일 출범한 '전라도 오천년사 바로잡기 500만 전라도민연대'는 강력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호남권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지역 역사단체 관계자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200여 명은 그날 출범식 때 <전라도 천년사>를 식민사관의 산물로 깎아내렸다.

전라도민연대는 창립 선언서에서 "왜적 일본제국이 <일본서기>를 근간으로 조작해 낸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이 땅에 깊숙이 뿌리박고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을 어찌해야 합니까?"라며 <전라도 천년사>가 언급한 고대 한민족 소국들의 명칭 중에 기문국(己汶國)과 다라국(多羅國)이 있는 것 등을 비판했다.

선언서는 "지난 2022년, 임나일본부설이라는 독버섯은 거짓 학설임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라며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설에 근거하였던 남원의 '기문'과 합천의 '다라'가 문화재청에 의해 '기문'은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다라'는 '쌍책 지역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수정"됐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2021년 2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등재 신청서에서 기문국과 다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이런 명칭이 <일본서기>에 근거했다는 비판이 일어나자, 유네스코에 표현 정정을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가야사 바로잡기 전국연대'에 통지한 2022년 5월 9일 자 답변서에서 "다라국을 '쌍책 지역 일대의 가야 정치체', 기문국을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정치체'로 표현하고자 한다는 내용을 전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 소국들의 명칭이 한국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데다가 <일본서기> 지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을 고려해, 국가 명칭을 특정하지 않고 '어느 지역의 가야 정치체'처럼 표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것이다.

전라도민연대 선언서가 지적하는 부분은 그것이다. 일제 식민사관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물론이고 문화재청의 공식 결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전라도천년사편찬위원회가 기문국·다라국 같은 표현을 사용한 일을 문제 삼은 것이다. 선언서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 쓰에마쓰 야스카즈 등 악질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식민화의 망상으로 만든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설이 죽은 줄 알았는데, <전라도 천년사>를 통해 다시 '기문'을 살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남을 '침미다례'로, 전남 내륙을 '임나 4현'으로 왜곡·둔갑시켜 전라도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 전체를 일본의 식민지 영토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운봉 황산태첩비지 앞 제방에서 <전라도 천년사>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편찬 정상화를 위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 이완우

 
이에 대해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는 이달 10일 자 입장문에서 "<전라도 천년사> 집필진의 노력과 학술적 성과가 폄훼되고 왜곡되는 현실에 대해 우려와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며 "구체적인 내용 확인도 없이 단지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 등을 인용하였다는 것을 문제 삼아 <전라도 천년사> 전체를 식민사학 역사서로 매도해 버렸다"라고 항변했다.
 
마한 및 백제, 가야사 서술 내용에 대해 단지 <일본서기>의 지명을 사용하였다는 사실과 일부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으로 매도해 버리고 언론전을 펼치는 태도는 참으로 안타깝고 황당스러울 뿐이다.
 
양측의 주장을 살펴봤으니, 이제는 <전라도 천년사>에 정확히 어떻게 서술돼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라도 천년사> 제4권의 제3편 제2장은 "일제강점기 때 지명 비정을 중심으로 시작된 가야사 연구는 1990년대부터 고고학 자료를 문헌에 접목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라며 "전북 동부 지역은 대가야 영역에 속했던 곳으로만 인식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가야 소국인 기문국을 임실군·남원시 등 섬진강 유역으로 비정한 견해가 통설"이라고 서술한다. <일본서기>에 언급된 기문국을 섬진강 유역으로 보는 견해가 확립돼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시리즈 제1권의 제2편 제1장은 "전북 동부 지역은 섬진강 수계인 운봉고원(남원시 동쪽)과 금강 수계인 진안고원(무주·장수·진안)으로 공간 구분이 된다"라며 "이 중 남원 지역은 <양직공도>에서 백제의 주변 소국인 기문국으로 알려진 곳이었다"라고 기술한다. 중국 자료인 <양직공도>에서 기문국이라는 명칭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고대사 공격 대비해야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가 당대의 현지인들에 의해 어떻게 불렸는지를 확인할 길이 현재로선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서기>나 <양직공도>를 근거로 설명하는 것은 일견 불가피한 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와 현실의 관계를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 중국도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일본제국주의가 한국 고서들을 강제로 수거해 가고 자신들의 문헌에 입각해 한국 고대사를 왜곡한 일은 한국인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이는 단순히 학문 분야에만 악영향을 끼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을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자료가 아닌 일본 자료에 등장하는 동시에 한·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지명을 언급할 때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지명을 근거로 고대사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일본을 편드는 것처럼 비쳐 한국인들의 상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역사를 서술한 사람들이 20세기 전반에 식민사관 추종자들이 되어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 그들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도 이용됐다. <전라도 천년사> 필자들은 학문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깊이 배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문제점이 침미다례국에 대한 <전라도 천년사>의 설명에서도 드러난다. 왜국이 신라를 치고 가야를 점령했다는 <일본서기> 신공왕후 편의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는 대목을 <전라도 천년사> 제3권의 제6편 제2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라도 천년사>에 인용된 <일본서기> 기록은 왜국 군대가 침미다례국을 격파하자 비리·벽중·포미지·반고 4개국이 항복했다고 서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라도 천년사>는 이 기록을 인용해 이렇게 서술한다.
 
침미다례는 그곳을 쳐서 무너뜨리자 그 주변 일대의 정치세력인 비리·벽중·포미지·반고 사읍이 모두 항복했다고 하는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 기사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노령산맥 이남 지역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강한 토착세력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 일대의 토착세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무너뜨리자 그 주변 군소세력들이 그 형세에 눌려 고개를 숙였다는 내용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위 대목은 침미다례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왜국이 침미다례국을 치자 주변 소국들이 덩달아 항복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위 서술을 읽다 보면 일본이 한반도를 쳐서 항복을 받았다는 <일본서기> 기록이 사실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본서기>의 진위에 대한 언급도 없이 <일본서기>를 근거로 설명을 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무심코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에 대한 고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주의한 서술이라 할 수 있다.

<전라도 천년사> 필진이 식민사관이나 임나일본부설을 의도적으로 이 책에 담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읽힐 수도 있는 여지를 이 책 스스로 남겼다. 한국 사료에 나오지 않으므로 외국 사료를 근거로 쓸 수밖에 없다는 식의 항변은 타당하지 않다. 그런 식의 접근법이 일제강점기 역사교육에서도 활용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은 근현대사 분야의 역사왜곡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는 역사왜곡을 통해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은 고도의 팀워크를 과시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로부터 '강제징용 배상책임을 떠안겠다'는 선언까지 받아냈다. 근현대사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일본이 가하는 역사 공격의 무게 중심이 머지않아 고대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한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연합해 편찬한 <전라도 천년사>에 담긴 부주의한 서술도 일본 극우세력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근현대사 역사공정이 한국의 굴욕외교로 이어진 지금의 현실은, 일본의 고대사 공격 역시 단순한 역사논쟁으로 그치지 않고 한국의 실질적인 위험으로 귀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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