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비 옆 자료관. 니시자키는 추도비를 지키기 위해 여기서 먹고 잤다.
니시자키
결국 니시자키는 추도비를 지키기 위해 살던 집을 나와 자료관에서 먹고 자기로 했다. 추도비를 건립하고나서부터 그는 정말 산소 지기가 되었다. 자료관은 선술집 건물이어서 난방도 시원찮고 잠자리도 불편했다. 니시자키는 기꺼이 감수했다. 다만 손빨래까지 하긴 어려워 세탁기는 들여놓았다.
니시자키는 묘지기를 하면서도 스미다구가 공식 관리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마침 <한겨레> 도쿄 특파원이었던 김효순 기자가 다리를 놔 줘 니시자키는 회원들과 함께 2012년 문석진 서대문구 구청장을 만났다. 스미다구와 자매결연 관계이니 서대문구에서 스미다구에 추도비 관리를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양 구청이 문화 교류와 친선을 위해 자매 결연을 맺었다, 추도비 관리는 정치적인 문제여서 민감하다'라면서도 청해보겠다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스미다구의 변화는 없었다.
그는 추도비 옆에서 7년여를 먹고 자다 2014년 12월 시묘살이를 끝냈다. 극우단체의 공격이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도쿄의 신오쿠보에서 혐한 시위가 일어나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SNS에서 관동대지진 때와 같이 "조선인을 조심하라"라는 유언비어가 퍼져 걱정이 많았지만 별 탈이 없었다.
문제는 산소 지기를 하는 동안 니시자키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점이다. 50대에 접어든 중년 남자가 자료관에서 혼자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해야 하니 그 형편이 오죽했겠는가? 식비를 아끼겠다고 편의점 도시락조차 안 사 먹고 스스로 해 먹었지만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이렇게 자기 몸을 돌보지 못했으니 유전력으로 고생했던 녹내장에 백내장이 겹치고 2014년에는 급성심근경색까지 앓게 되어 한때 위험했었다.
책을 펴내고
그런 몸을 돌보지 않고 자료관에서 먹고 자며 니시자키가 새롭게 시작한 것이 <관동대진재 조선인 학살의 기록 - 1100가지의 증언>이란 책을 펴내는 작업이었다. 추도비가 세워지니 이곳은 꼭 들려야 하는 역사탐방 장소가 되었다. 그는 자료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소중한 얘기를 나누고 놓칠 수 없는 증언도 접했다.
이때 니시자키의 머리에 떠오른 게 '문자로 남겨진 모든 증언'을 모아 보자였다. 사이타마나 지바, 가나가와현까지는 못 미친다 해도 도쿄와 관련된 기록은 모두 모아 책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도쿄에 있는 23개 구의 모든 도서관을 샅샅이 돌았다. 자서전, 일기가 중요했다. 특히 어린이가 남긴 글에는 생생함이 있고 왜곡이 없었다. 복사를 뜨고 자료관에 돌아와서 타이프를 쳤다. 1982~83년까지 문헌반 활동을 할 때 야마다 쇼지 선생에게 배운 게 있다. 역사는 추측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꼼꼼히 따져봐야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사료를 끈질기고 정성껏 쌓아 가는 야마다의 자세를 떠올리며 이 작업을 했다.
녹내장으로 고생하며 4~5년이 걸려 2016년에 현대서관에서 두툼한 책으로 냈다. 물론 작업은 니시자키 호주머니 돈을 털어했다. 걱정도 많았다. 백 년 전 일이고, 부끄러운 과거를 파헤치는 어두운 글인데 책을 사볼까? 뜻밖에도 2020년 9월에는 보급판도 나왔고 2023년 현재 초판이 거의 다 나간 상태다. 이 책에는 귀중한 증언이 1100개나 담겼다. 추도 모임의 소개 팸플릿에도 나온 내용이다.
"아라카와역(현 야히로역) 남쪽에 온천지(温泉池)라는 큰 연못이 있었어요. 헤엄도 칠 수 있는 연못이었고요. 쫓기던 조선인 7, 8명이 거기에 뛰어들어갔는데 자경단이 총을 가지고 쐈단 말이에요. 그쪽에 가면 그쪽에서 이쪽에 오면 이쪽에서 쏘고 마침내 죽여버렸습니다."
"그건 3일날 점심 때였지. 아라카와 요쓰기 다리 하류에서 조선인을 몇 명이나 묶어 데려와 자경단 사람들이 죽인 것은 너무나 잔인한 방법이었어. 일본 칼로 자르거나 죽창으로 찌르거나 철로 된 봉으로 찔러 죽였어요. 여성 중에는 배가 부른 사람도 있었는데 찔러 죽였어요. 죽이고 나서는 소나무 장작을 가져와서 쌓아 시체를 놓아서 석유를 뿌려 태웠습니다."
조선인 대학살 100주기인 9월 1일을 앞두고 요즘 니시자키의 하루는 바쁘다. 강연과 인터뷰, 현장 설명 등 할 일이 많다. 그는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운영위원이면서 100주년 관련 여러 실행위원회에서 역할을 맡고 있어 회의도 자주 가야 한다.
그는 100주년은 특별하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100주년을 넘어 이 활동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도 모임의 이사 신민자씨가 말했듯, "죽이지 말자, 죽여지지 말자, 죽이게 하지 말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일조선인인 한 회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와 내 아이, 내 손자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한다고. 이것은 기누타 유키에가 추도 모임을 만들면서 했던 말과 통한다. 그는 "단 한 명이라도 열정이 있으면 운동은 만들 수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된다"며 호소했었다.
젊은 세대가 희망이다
▲아라카와 강변에 모인 젋은 답사팀. 보라색을 입은 이가 니시자키 마사오
니시자키 마사오 제공
다행이라면 추도 모임에 젊은 세대가 모이는 것이다. 학살 현장을 돌아보는 현장 답사 덕분이다. 이번 백주기 행사는 이렇게 모인 젊은 세대가 실무를 맡기로 했다. 기쁘고 고마운 일이다. 니시자키는 이제 증언을 직접 들은 '현장성'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로 '기억을 이어주는' 노릇에 자기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니시자키는 산소 지기 생활을 끝냈을 때 치바현 이치카와시에 전셋집을 얻었다. 가족은 열네 마리의 고양이. 아침이면 한 마리씩 이마를 어루만져 주고 집을 나온다. 자기에게 들어가는 식비보다 녀석들의 사료비가 더 들어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소리가 쉭쉭 들린다.
하지만 60대 중반의 중늙은이가 고독한 마음을 달래기에 이보다 더한 친구가 있을까? 한 마리로 시작한 동거, 녀석이 계속 친구들을 데려왔고 마음 약한 니시자키는 이를 내치지 못했을 터이다.
니시자키는 외부 일정이 없으면 늦은 저녁에 자료관 문을 닫는다. 골목길에 어둠이 짙어지고 추도비에 살짝 걸쳐있던 노을 한 자락도 자취를 감출 때다. 그는 작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40분을 가야 하는 길,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갈까? 끼니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복잡하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니 어디선가 야옹이 녀석들이 달려올 것 같다. 니시자키가 떠난 자리. 그새 어둠은 짙어진다. 둑길 너머 아라카와에서 신음인지 읊조림인지 알 수 없는 물결 소리가 커지고 추도비를 지키는 봉선화는 붉은 핏빛을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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