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2 15:54최종 업데이트 23.05.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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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코로나 이후 한국 맥주 시장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시점입니다. 한국맥주문화협회와 민텔이 조사한 2022년 자료를 토대로 2023년 맥주 시장을 2회에 걸쳐 예측해 봅니다. 지난 1회에서는 지난 10년간 맥주 시장을 살펴보며 현재까지 상황을 점검했고, 이번 2회에서는 2022년 국내 맥주 회사들의 실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2023년 맥주 시장 현황과 미래를 분석했습니다. [기자말]

지난 4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맥주박람회 및 와인&로컬 드링크 페어' 한 부스에서 관람객에게 시음용 맥주를 건네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과 종량세 개정은 70년간 볼 수 없었던 맥주 시장의 변화를 촉발했다. 특히 편의점 수제맥주의 급격한 성장은 기존 터줏대감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오비맥주는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orea Brewers Collective)라는 회사를 설립해 편의점 수제맥주 흐름에 동참했고 롯데칠성은 제주맥주와 곰표밀맥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진행했다. 이는 백여 년 간 대기업 독과점 시장이었던 한국에서 예외적인 일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약화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한 2022년은 시장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였다. 위축되었던 대기업 맥주와 수입 맥주는 반등했을까? 기세등등했던 편의점 수제 맥주들은 그 기세를 이어갔을까? 한국맥주문화협회와 민텔이 조사를 통해 시장 현황을 점검하고 2023년 시장과 그 이후를 예측해 보려 한다. 

시장 견인한 대기업 맥주, 반등 노리는 수입맥주 

Made with Flourish

한국맥주문화협회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를 통해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2022년 맥주 시장은 소매 기준 약 3조 7000억 원으로 2021년에 비해 약 10% 상승했다.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이 73%, 하이네켄, 칭따오, 아사히 등 수입맥주가 23%, 편의점 수제맥주가 2% 그리고 기타 소규모 맥주 회사 및 크래프트 수입 맥주가 2% 정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시장 상승을 견인한 회사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두 대기업이다. 오비맥주는 1조 5000억 원, 하이트진로는 7800억 원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에 비해 각각 3000억 원, 500억 원 상승했다. 매출뿐만 아니라 순이익도 증가했다. 

이는 팬데믹 제한이 사라진 이후 회식과 외식이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카스와 테라 같은 대기업 맥주의 수요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카스의 경우 투명색 병으로 꾀한 이미지 변신이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초록색 병 테라의 돌풍도 잠재웠다.

하이트진로는 매출의 반등을 이뤄냈지만 2019년 수준인 8000억까지는 회복하지 못했다. 국내 맥주로만 따지면 오비맥주가 약 54%, 하이트진로가 43%, 롯데 클라우드가 3%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롯데칠성 맥주 부문인 클라우드는 여전히 실적이 부진하다. 1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그중 클라우는 약 820억 원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곰표밀맥주와 제주맥주 OEM 실적이다. 음료회사의 사업부로 존재하는 클라우드는 타 대기업 맥주에 비해 영업 마케팅 집중도가 떨어진다. 클라우드 생으로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면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국내 매출 기준으로 3위 맥주 회사는 클라우드가 아니라 하이네켄 코리아다. 2022년 하이네켄 코리아 매출은 137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약 10억 원 정도 줄었다. 하이네켄 코리아뿐만 아니라 칭따오를 수입 유통하는 비어케이도 전년에 비해 40억 원 정도 하락한 1000억 원을 달성했다. 순이익 역시 떨어졌다. 

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이 크게 상승한 것에 기인한다. 몰트와 홉, 캔과 병 그리고 운임의 증가는 맥주 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하이네켄은 8%, 오비맥주도 7.7% 정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다른 맥주들도 7~10% 가격을 높였다.

4캔 1만 원으로 대변되던 맥주 가격은 자연스럽게 4캔 1만 1000원으로 형성됐고 유흥 시장에서도 국산 맥주 한 병을 6000~7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런 부정적인 외부 요인을 감안하면 대기업들은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수입 맥주들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큰 손해 없이 한 해를 견뎠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브랜드는 아사히다. 노재팬 운동으로 수입 맥주 1위를 내어준 일본 맥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롯데아사히는 322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필스너 우르켈을 수입하는 에이이브랜드코리아(260억)와 칼스버그를 수입하는 골든블루(200억)를 제쳤다. 과거처럼 수입 맥주 시장 1위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지만 올해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된다. 

길을 잃은 수제맥주

편의점에 입성하며 기존 맥주들을 떨게 했던 수제맥주들은 2022년 크게 추락했다. 곰표밀맥주를 만든 세븐브로이는 2021년 400억 원에서 320억 원으로, 제주맥주는 280억 원에서 240억 원으로 매출이 하락했다. 카브루는 55억 원에서 60억 원으로 매출이 올랐지만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가 풀렸음에도 경영이 악화된 이유는 재료비 상승과 가정용 시장 하락, 그리고 주력 상품이었던 콜라보레이션 맥주에 대한 관심이 끊겼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곰표밀맥주, 말표, 진라거 등 비슷비슷한 콜라보레이션 맥주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말초적인 재미와 인공 향을 넣은 맥주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원래 수제맥주는 고품질, 프리미엄, 진정성을 대변하는 맥주였다. 그러나 본질에서 벗어난 수제맥주들이 범람하는 수준에 이르자 그 효용이 다한 것이다. 

게다가 재료 인플레이션으로 입은 타격은 대기업보다 더 컸다. 다양한 종류를 생산하고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가정용 시장의 하락도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가정용인 편의점 수제맥주들은 늘어난 외식 수요의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 이들이 찾은 돌파구는 하이볼과 같은 칵테일 혼합주다. 편의점 '니즈'를 맞추는 동시에 재료비도 낮고 제조 기간도 짧아 새로운 탈출구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하이트진로 켈리 시음 팝업 스토어 '켈리 라운지'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밀가루가 맥주가 되고, 구두약이 맥주가 되고, 골뱅이가 맥주가 되는 시대.' 이 말은 하이트진로의 켈리 런칭 기자 간담회에서 마케팅실 이사가 했던 이야기다. 편의점 수제맥주들의 모습을 점잖게 비꼰 말투가 느껴진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만드는 맥주가 진짜 맥주라는 자신감도 숨어있다. 코로나와 편의점 수제맥주로 잠시 주춤했지만 대다수 소비자들은 다시 카스나 테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있다. 

실제 2023년 맥주 시장은 대기업 라거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매출 성장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신규 브랜드 출시와 대규모 마케팅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달 신규 브랜드 켈리를 런칭한 하이트진로는 대대적인 광고와 마케팅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주춤한 테라의 돌풍을 신제품으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오비맥주는 재작년 출시한 한맥을 중심으로 맞서고 있다. 두 회사의 TV 광고와 현장 프로모션 및 협찬은 지난 몇 년간 보지 못했던 수준이다. 만약 상반기 켈리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하반기 오비맥주와 롯데 또한 신제품을 출시할 가능성도 있다. 

하이네켄 코리아나 비어케이 같은 대기업 수입 맥주도 올해부터는 안정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와 물류비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고 수입 맥주 점유율을 잠식했던 편의점 수제맥주의 날이 급격하게 무뎌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흥 시장 또한 회복하며 가정용 시장의 박한 마진을 어느 정도 만회시켜 줄 듯하다. 

사라졌던 일본 맥주의 순위권 재진입은 확실시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보면 올해 3월까지 중국 맥주는 1만 5564톤, 네덜란드 맥주는 1만 1645톤이 수입되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일본 맥주는 8422톤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아사히는 올해 1000억 원 매출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정 출시된 일본산 맥주가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는 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올해 1분기 일본 맥주 수입액은 1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불안한 수제 맥주의 일탈

편의점 수제 맥주 시장은 '카브루 양조장 매각', '혼합주 제조', '새로운 곰표밀맥주', 세 가지 키워드로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우선 카브루는 작년 12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상색 브루어리'를 매각했다. 편의점 수제 맥주 시장의 한계 속 과잉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엿보인다.

이는 비단 카브루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 2년 동안 편의점에 진출한 수제 맥주 회사들은 지속적인 시설 투자를 진행했다. 올해 수제 맥주 회사들의 운명은 시설 가동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결과로 수제 맥주 회사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마실 수 있는'(Ready To Drink, RTD) 주류다. 전략적 판단이라기보다 편의점 니즈에 따른 결정이라고 추정된다. 문제는 편의점에 맥주를 공급했던 회사들이 거의 동시에 혼합주 시장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맥주 회사들이 맥주가 아닌 다른 주종으로 그들만의 경쟁을 펼치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건 하이볼이다. 그러나 진짜 위스키를 넣은 제품은 거의 없다. 주정과 향을 넣은 국적 불명의 칵테일에 불과하다. 만약 이 시장이 2년 전 콜라보레이션 맥주 시장만큼 성장하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새로운 곰표밀맥주 계약 소식은 수제 맥주 시장을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세븐브로이가 대한제분과 재계약에 실패하자 제주맥주와 플래티넘이 끼어들었다. 과거 세븐브로이 곰표밀맥주를 롯데 클라우드에서 OEM을 했듯, 이번에는 제주맥주 곰표밀맥주가 플래티넘과 팀을 이뤘다.

코스닥에 상장한 유일한 수제 맥주 회사지만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를 낸 제주맥주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적 반등을 못 하면 상장 폐지라는 큰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예산에 아시아 최대 규모 공장을 설립한 플래티넘은 가장 두려운 존재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시점이 오면 국내 어떤 회사보다 낮은 비용으로 맥주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 결국 편의점 수제 맥주 시장은 최저 생산 비용을 감내하는 치킨 게임의 승자가 독식할 가능성이 있다.  

2023년은 팬데믹이 사라졌음에도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시장의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맥주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대기업들의 독과점 영향력은 공고해질 것이다. 중간에 낀 회사들은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국내 대기업 제조사들은 여유롭고 수입사들은 담담하며 수제 맥주 회사들은 불안감이 느껴진다. 올해의 성적이 시장 재편과 미래 모습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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