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그는 글쓰기뿐 아니라 말하기로도 친일을 했다. 조선임전보국단 등이 주최한 대중 행사 때는 무대에 서서 연설을 했다. 좌담회나 위문 활동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시 낭독 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열혈 전사가 되어 여기저기 출현하면서 전쟁 지원을 독려했던 것이다.
노천명은 친일단체 실무진으로도 일하고 총독부 기관지 기자로도 일했다. 30대 전반기의 노천명은 친일 재산을 기반으로 살아간 셈이 된다. 그런 재산이 그의 육체로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됐으니, 그 영혼에서 나오는 문학 역시 제국주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긴 수필·논설·기행문뿐 아니라 주 종목인 시에서도 그런 색채가 노골적으로 배어 나왔다.
그는 감각적인 시어를 동원해 한국 여성들의 전쟁 지원을 독려했다. 1942년 3월 4일 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부인근로대'에서는 군복 수리에 동원된 여성들의 모습을 비장하게 묘사했다.
시에서 그는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도네/ 한 땀 한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라고 읊었다. 동원된 여성들이 불만을 품지 않고 자기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게끔 고안된 시였다.
1944년 10월호 <조광>에 발표한 '싸움하는 여성'이라는 수필에서는 전쟁의 승패가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여성들이 근로정신대 활동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의 강조점이었다. 그는 "대동아전쟁의 승패는 결국에 있어서 적국 여성들과 일본 여성의 근로의 투쟁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뒤 외아들을 전쟁터에 바친 어머니와 새신랑을 전쟁터에 바친 여성을 거론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여자 정신대는 이때 우리 여성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길인 줄 압니다"라고 썼다. 사랑하는 이를 전쟁터에 보낸 여성들이 할 일은 후방 지원이며 '우리 일본 여성'이 적국 여성보다 더 많이 투쟁해야 전승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메시지였다.
그는 청년 남성들을 겨냥한 작품도 썼다. 1943년 8월 5일 자 <매일신보>에 발표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에서는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쟁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이라고 읊었다.
32세의 이 여성은 남성을 부러워하는 듯이 하면서 내가 남자였다면 주저없이 부르심을 받들었을 것이라며 남성들의 등을 떠밀었다.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라는 시구와는 대조적으로, 힘없는 대중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앞잡이 역할을 서슴없이 수행했던 것이다.
1945년 해방 후에 매일신보사의 후신인 서울신보사에 근무하다가 부녀신문사로 옮긴 그는 한국전쟁 때도 전쟁 선동에 가담 또는 동원됐다. <친일인명사전>은 "6·25 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았다가 1950년 6월 하순 문학가동맹에 참여했다"라며 "문화인 총궐기대회에 참가하여 결의문을 낭독하고 유세대에 참여했다"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때의 행위와 맥락은 다르지만, 전쟁 중에 대중 앞에 나서 선전 활동을 하는 모습은 1945년 이전과 다르지 않다.
이 일 때문에 그는 형사처벌을 받았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뒤에 부역자 처벌법에 의해 2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친일로 인한 처벌은 받지 않고 친북으로 인한 처벌만 받았던 것이다.
동료 문인들의 석방 운동에 힘입어 1951년 4월 석방된 그는 부역행위에 대한 해명의 뜻을 담은 <오산이었다>라는 소설을 1952년에 발표했다. 친일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고 친북에 대해서만 해명을 했던 것이다.
제국주의에 부역한 일로 그가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그의 삶에는 이것이 하등의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친일인명사전> 노천명 편은 그의 46년 인생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끝낸다.
1955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이화여대 출판부에 근무하면서 <이화 70년사>의 간행을 맡았다. 1957년 6월 16일 서울시 종로구 자택에서 사망했다. 2001년 이후 노천명문학상이 제정되어 매년 시·수필·평론 등 9개 부문에서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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