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시내 한 식당가에서 주류 업자가 주류 상자를 옮기고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외식용 맥주 물가 상승률은 10.5%로 IMF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10월(10.8%) 이후 24년 4개월 만의 최고였다.
연합뉴스
2010년 초반 카스와 하이트, 두 거인이 수십 년간 지배하던 시장에 작은 돌을 던진 건 수입 맥주들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몇몇 크래프트 맥주들이 선반 한구석에 자리 잡은 이후, 독일 바이스 비어와 벨기에 스트롱 에일이 소비자들의 미각을 다채롭게 했다.
수입 맥주들의 성장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국내 신생 소규모 브루어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소비자들은 대기업이 만든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새로운 향미를 접하며 작지만 다채로운 맥주를 찾기 시작했다.
2014년 소규모 맥주의 외부 유통을 허용한 주세법 개정은 이런 흐름을 더욱 활발하게 했다. 독일 스타일 맥주를 만들던 하우스 맥주에서 벗어나 인디아 페일 에일(IPA), 벨지안 윗, 세종 같은 그간 국내에서 볼 수 없던 맥주들이 탄생했고 수입 맥주 또한 이런 문화에 동참했다.
다양한 맥주에 대한 폭발적인 공급은 가격 경쟁을 낳았다. 2013년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서 한시적 묶음 판매 형태로 진행된 수입 맥주 프로모션은 4캔 만원의 틀을 형성했다. 백화점이나 부티크 비어샵에서 구매할 수 있던 프리미엄 수입맥주도 대형 마트 선반에 얼굴을 내밀었다. 한 캔에 1000원짜리 맥주 같은 초저가 수입맥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절정에 달했던 맥주 시장에 조금씩 부작용이 생긴 건 2018년 정도였다. 낮은 수입가로 들어오던 맥주들이 국내 맥주들과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수입가격 또는 제조가에 70%의 세금이 붙던 종가세 체계는 국내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보다 해외에서 위탁 양조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오비는 보란 듯이 해외 공장에서 카스를 생산해 국내로 수입했고 일부 소규모 맥주 회사들도 해외에서 위탁 양조를 한 후, 마치 국산 수제 맥주인 것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4캔 만원이 일반화되자 전체적인 맥주 시장 포지셔닝이 흐려지기도 했다. 프리미엄 맥주는 가치에 맞는 가격에 판매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4캔 만원 프레임으로 인해 맥주는 싸다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심어진 것이 뼈아팠다. 마트로 입성한 프리미엄 맥주들은 노출은 증가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그 결과, 수익 확보를 할 수 없었던 프리미엄 맥주들은 점차 선반에서 사라졌다. 무엇보다 제 돈 주고 맥주를 마시면 손해라는 소비자 인식이 업계의 가장 손해였다.
맥주 세금 체계의 변화
2020년 맥주 주세법 개정과 코로나는 잔잔하던 맥주 시장에 큰 파장을 남겼다. 기재부와 국세청은 맥주 세금 체계를 생산량에 세금이 붙는 종량세로 변경했다. 무려 70년 만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입맥주와 국내맥주 간 형평성 문제 때문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종가세는 저가 수입맥주를 부추긴 반면, 국내 제조 맥주의 위축을 불렀다. 국내 소규모 맥주들의 강력한 요구도 있었다. 대량 생산이 불가한 소규모 맥주 양조장들은 높은 제조원가에 붙는 세금 때문에 판매가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생산량에 세금을 붙이는 종량세가 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종량세 변경은 맥주 산업을 탈바꿈시켰다. 우선 저가 수입맥주들이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맥주를 저렴하게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편익은 줄었지만 지저분하던 시장은 정리가 됐다.
반면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비전은 확장됐다. 투자자들은 수제맥주가 금광이 될 것이라 여겼다. 양적 성장이 필요했던 소규모 맥주 회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생산시설을 늘렸고 수제맥주 4캔 만원 시대가 열렸다. 수년간 마트와 편의점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던 수제맥주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며 선반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새로 바뀐 세금 체계 중 국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맥주 허가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덕에 콜라보레이션 맥주가 가능했다. 여러 분야에서 상표 마케팅을 하고 있던 대한제분의 곰표는 맥주를 만나 대박을 터트렸다.
세븐브로이가 생산한 곰표 밀맥주 이후 말표, 유동 골뱅이, 백양, 금성 심지어 쥬시 후레쉬 같은 브랜드가 맥주로 재탄생했다. 이런 수제맥주들은 선반에서 수입맥주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일본 맥주 불매 운동 또한 소비자들이 수제맥주에 시선을 돌리게 했다.
코로나 팬데믹, 맥주 시장 바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