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을 맞아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사이의 체육경기 재시합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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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맘 내키는 대로 데리고 나온 김주애는 그 존재만으로 나비효과를 나타냈다. 그는 폐쇄 국가 은둔 지도자의 공주로서 국제적 이슈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북한 매체는 이례적으로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분" "존귀하신 자녀분"이라는 칭호까지 써가며 김정은 부녀의 모습을 우표로까지 제작했다. 최고 영도자의 어린 자녀를 공개적으로 치켜올리기는 북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에 더해 남한 언론이 북한의 선전·선동 매체가 되기로 작정이나 한 것처럼 김주애 관련 뉴스를 쏟아냈으니, 북한의 김주애 홍보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전문가들은 김주애의 등장을 북한의 미래세대, 즉 '주체혁명 위업 계승자'를 대표하는 이데올로기적 기호가 등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김주애 홍보 목적과 일치점을 이룬 것이다.
이 지점에서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일은 1970년대 초반 후계자로 낙점된 후 김일성과 공동정치를 해오면서 김일성과 불가분리의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 기간을 충분히 거치지 못하고 갑자기 등장한 탓에 정서적 거리감이 있었다. 또한 선대 수령의 역사성과 통치력, 카리스마는 김정은이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후 집권하면서 머리 모양과 옷차림까지 아버지가 아닌 김일성의 이미지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습은 권력만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선대 수령의 생존 업적·과오까지 넘겨받음을 뜻한다.
김정일은 민생문제 해결에 실패한 지도자로 인민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때문에 김정은은 실패한 아버지 김정일이 아니라 여전히 북한이란 국가와 인민의 시조이며 토템인 할아버지 김일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김일성의 이미지를 인민의 마음을 얻는 정치적 기호로 활용해야 했다.
한편으로 김정은은 선대 수령들과 다른 차별화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가족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를 동원하여 가족국가의 가장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김정은이 선대 수령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모두 부인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북한의 국모 김정숙은 죽은 자로서 북한 역사에서 신화로만 존재해 왔다. 김일성의 둘째 부인 김성애는 김정일의 핍박에 의해 이른바 '곁가지'로 낙인되어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 못하고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김정숙의 신화에 가려져 국모, 영부인이라는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김정일은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살다 보니 데리고 나설 정실부인이 없었다. 그 여러 부인 중 한 명이었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이 회고록 <등나무집>에서 언급한 사실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는 정실부인이 아니므로 '혁명의 어머니'로 공식 추앙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김정일 사망 후 2013년 노동당 내부에서부터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을 통해 재개된 고영희 우상화는 다시 중지되었다.
북한으로서는 고영희의 이력을 들추며 그 정통성을 지적하는 남한의 언론과 남한에서 유통되는 고영희 관련 정보가 여러 통로로 북한 내부에 전파될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어머니 콤플렉스는 이설주를 통해 극복된다.
이설주는 김정은의 정실부인이다. 그는 2012년 7월 26일 북한 주민 앞에 최초로 등장했고 북한 인민은 비로소 최고 영도자 부인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설주는 김정은의 가부장적 권위와 독재자의 폭력적 면모를 부드러운 여성성으로 희석하고 통치이념을 실현하는 주체가 되었다.
이설주는 김정은과 함께 쇼핑백을 들고 가정집을 찾아가 온돌방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직접 부엌에 나가서 설거지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젊은 부부가 시집이나 처가를 찾아가는 일반인의 모습과 같은 것이어서 가족적 유대와 정서적 친밀도를 높여주고 영도자의 인민성을 부각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이설주는 오랜 시간 동안 비어있던 가족국가의 어머니 역할에 충실했다.
김주애의 등장은 이설주 등장의 연장선에 있다. 이설주와 김주애는 그 등장만으로도 통치자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고 그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국가의 서사를 이끌어 나가며,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결핍 속에서 대가족의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데 이바지한다.

▲지난 2월 8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건군절(2월 8일)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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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이라는 폭력적 수단은 외부를 향하고, 내적으로는 부인과 자녀를 동원한 김정은의 감성 통치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신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영도자임에도 영도자를 향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인민의 모습을 액면 그대로 평가해 볼 때 그러하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의사가 환자의 몸 상태를 알아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듯이 북한을 이해하는 것도 그들이 왜 그러한지를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는 내재적 접근이 가장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학문 연구도 아니고 주로 정부의 견해를 대변해야 하는 제도언론에서 그렇게 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객관성이 결여된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행태는 북한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남한을 비추는 거울로서 북한을 바라보는 성찰적 시각을 가진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선정적인 기사만 포털에 올라온다.
북한 뉴스, 특히 최고 영도자와 고위층 관련 뉴스에서 집단으로 이성을 상실하는 언론의 행태를 '분단 히스테리'라는 병적 증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크다. 때로는 한반도 리스크를 부풀리기도 하고 그로 인해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례로 2020년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보도되자 주가가 한때 2.99%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9.2원 급등한 바 있다.
언론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우리 언론이 왜 그런지 근원을 직시해 보자. 일제 강점기부터 꿈꾸어왔던 민족=국가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좌절되었다. 그 원인과 책임은 상대에게 있고, 상대만 없어지면 해결된다는 적대적 감정으로 고착되었다.
분단과 전쟁에서 비롯된 상대를 향한 증오, 분노, 원한, 혐오는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언론 또한 국가적 정통의 서사를 구성해 나가는 나팔수로서 이러한 적대적 감정을 분단국가의 통치 에너지로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을 설득함으로써, 대북 정책과 실행동력을 살려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척박한 토양이다. 분단체제 특성상 반공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내면까지 지배하고 국가보안법이 작동하는 구조에서 북한을 그들의 방식대로 이해하기 위한 내재적 접근은 무조건 반사적인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오고 자기 검열의 장벽에 부닥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사회이지만 이처럼 분단은 사고의 자유로움과 의식을 억압하고 그 확장을 제한하는 근본 요인이 된다. 그래서 북한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언론은 물론, 개개인의 성찰에 바탕을 둔 용기, 의지, 실천의 문제이다.
▲김윤희 /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위원
김윤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윤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에서 '임수경열광'과 도전받은 집단주의>(2022), <분단 가족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미수복지역 조할머니의 3대(三大)에 걸친 분단가족 형성사>(2022), <영생하는 수령과 그리움의 정치>(2016), <북한 사금융시장의 흐름과 구조 동학에 대한 탐색>(2015) 등이 있고, 공저로 <아시아공동체와 평화>(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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