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0 05:05최종 업데이트 23.04.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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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지역이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필진들이 수도권 밖 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봅니다.[편집자말]

지난 2021년 10월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모습 ⓒ 연합뉴스

    
'토론하면 좋은 친구'

지난 9일 MBC <100분 토론>이 1000회를 맞아 기획한 특집 방송의 타이틀이 이랬다. '오?' 했는데 출연진을 확인하고 '우~' 했다.


아니, 홍준표 대구시장이 '토론하면 좋은 친구'라고? 대구에서 이른바 '듣보잡' 독립언론 기자로 일하는 필자 입장에선 당췌 납득할 수 없는 표현이다. 홍준표 시장을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저런 관찰 시간은 적지 않았다. 그 관찰 결과는, 홍 시장을 달변가라고 할 순 있어도 토론가라고 부를 순 없다는 거다.

1년에 토론 1.4회꼴... 행정력 낭비일까?

오는 25일부터 시작하는 대구시의회 300회 임시회에서 쟁점이 될 안건은 절묘하게도 토론과 관련된다. 대구시는 지난달 '대구시 정책토론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대구시는 기존 300명인 정책토론 청구인 수를 5배 더 늘리는 안을 마련했다. 그럴수록 시민들이 토론을 청할 수 있는 벽은 높아진다.

개정 사유는 뜨악하다. 실제 공개된 내용에선 빠졌지만, 내부검토 단계에서 대구시는 '특정집단의 주장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돼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지난 2008년 조례가 제정된 후 조례에 따라 개최된 정책토론회는 21회에 그친다. 15년 동안 21회면 1년에 1.4회 수준이다. 정책토론 제도를 통해 시민들은 제2대구의료원 건립 필요성을 논의했고, 대구시의 박물관 정책 부재를 짚었고, 발달장애인의 시민권 보장을 위한 방안도 살펴봤다.

1년에 1.4회꼴로 열려 보건의료와 문화, 인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들이 직접 이야길 하고 정책을 살펴보는 자리가 홍준표 시장 이후 대구시에선 '행정력 낭비'의 대표 사례로 찍힌 것이다. 대구시가 정책토론제 정비를 검토한 배경에 지난 2월 제2의료원 무산에 따른 시민 청구 정책토론회 개최가 있다는 설명까지 붙으면, '홍준표 대구시'가 허락하는 토론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만한 상황이 된다.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홍 시장이 시정 인수 후 가장 먼저 뒤집어엎은 전임 시장의 정책이다. 가장 먼저 뒤집은 정책을 다시 요구하는 시민을 바라보는 시장님의 속내가 '특정집단', '논쟁거리', '행정력 낭비'라는 적나라한 내부 검토에 드러나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홍 시장이 대구시장이 된 후 보여주는 이른바 '토론의 방식'이 정책토론제 정비에 응축됐다고 생각한다. '토론'을 나와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홍 시장은 다른 의견을 조율하기보다, 뭉개거나 그냥 없는 듯 치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11일 기자들과 나눈 문답에서도 홍 시장의 이러한 태도는 그대로 드러난다. 

홍 시장은 최근 자신이 내놓은 정책 방향을 두고 반대 의견이 개진되는 것을 두고 "나는 반발에 구애되지 않는다. 일부 지역의 이익 가지고 반발하는 것, 거기에 구애돼서 할 일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고, "250만 대구 시정을 하는데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물어보고 어떻게 시정을 하나. 그렇게 할 거면 시장을 왜 하나, 허수아비지"라고도 했다. 다른 의견을 조율하기보단, 내가 옳으니 내 답을 밀고 나가겠다는 태도다. 

말 막히면 '못된 질문' 탓
 

새로운공공병원설립 대구시민운동은 28일 대구시청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대구의료원 설립을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 조정훈

 
이러한 그의 '토론 방식'은 이미 후보시절부터 드러난 바 있다. 대표적인 경험 사례는 '못된 질문' 해프닝이다. 지난해 대구시장에 도전하면서 홍 시장은 '시정개혁'을 주요 키워드로 삼았다.

시정개혁단을 만들어서 시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고 했다. 개혁은 좋은 의미로 읽을 수 있지만, 그가 말하는 개혁은 구체성이 떨어졌다. 자칫 전임 시장의 시정을 모두 개혁 대상으로 삼아버리면 계속돼야 할 사업도 좌초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었다.

4월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선 '구체성 없는 개혁'이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시정개혁을 포함한 여러 공약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은 '시정을 인수한 뒤에' 하겠다며 미뤘다. '홍카콜라'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는 맹탕 답변이었다. 그러면서도 개혁하겠다는 주장은 콜라처럼 톡 쐈다. 그래서 직접 물었다. "시정을 잘 모른다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시정 개혁을 하겠다는건지도 말씀을 부탁드린다"고. 

그때 돌아왔던 그의 첫 일성이 "못된 질문"이다. 여러 언론이 '못된 질문'이라는 휘발성 강한 발언에 주목했지만, 개인적으론 그보다 그 뒤를 따라 나온 말을 더 주목했다. "대구 시정이 침체되고, 피폐되고, 무사안일이고. 그거 대구 시민들이 다 안다" 개혁의 당위를 강조하는 추상어의 나열, 내용 없는 선언. 나는 다 알지만, 너는 모른다. 나는 옳지만 너는 틀렸다는 선언의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사례를 찾으면 발에 차일 정도라고 표현해도 무색하지 않다. 기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홍 시장은 기자의 질문이 틀렸다고 면박 주거나, 질문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매체의 성향을 거론하고, 이름을 언급하기도 한다.

시정 견제의 책임을 부여받은 시의원과 시정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를 찾기보다, '나는 아는데, 너는 몰라 그런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다 슬쩍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고, 문제가 되면 '농담'이라고 눙친다. 

개혁 대상으로 삼은 대구 시정에서 홍 시장이 뒤집어엎은 정책은 대개 오랜시간 표류하다 시민적, 정부적 토론을 장기간 거쳐 마련된 것이다. 취수원 이전이 그렇고, 신청사 이전이나 제2대구의료원 건립도 마찬가지다. 뒤집어엎은 정책은 가야 할 길이 먼 새 레일 위에 올려진 채 출발을 잊었다. 

그래서 홍 시장이 '토론하면 좋은 친구'라고 생각된다면 아마도 홍 시장이 허락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장관쯤은 돼서 시장이 '격'을 인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 시장이 한 말을 빌리면 그렇다는 거다. 대구시 정책 변화를 두고 중앙부처 관계자는 다른 이야길 하더라는 물음에 홍 시장은 이렇게 답했다.

"00일보가 취재를 잘못했네, 실국장한테 물어보는 게 아니고 장관한테 물어봐야지."

홍 시장의 '토론하면 좋은 친구' 유시민 작가를 홍 시장은 고집스럽게 '유 장관'이라고 부른다. 참, 우연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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