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화진지 내 대전차 방호벽 일부. 2016년 지자체와 관할 군부대 사이에 방호시설을 리모델링하는 협약이 체결되면서, 시민 문화 창작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방호벽 아래로 보이는 것은 야외공연장인 '평화울림터'이다.
성낙선
대전차 방어벽 뒤쪽에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세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는 낡은 시멘트 벽을 마주한 순간,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베를린에 있어야 할 장벽을 서울 도봉구에서 봐야 하는 게 의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벽이 모형이 아닌 진짜 베를린 장벽이란다. 안내판에 "독일 베를린시로부터 기증받은 3점의 장벽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곳 도봉구에 세운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벽'을 보면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다른 '벽'을 떠올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게 언제 적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베를린 시민들이 직접 장벽을 부수기 시작한 게 1989년이니까, 그새 벌써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가 이룬 건 무언가? 대전차 방어벽이 문화진지로 바뀐 걸 보고 흐뭇해 하다가, 베를린 장벽을 보고 나서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아프게 되짚는다. 아직도 '전쟁 불사'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평화'를 뒤로 하고, 도봉산역을 떠나서는 석계역까지 달린다. 내친김에 바로 한강까지 달려가고 싶지만, 몸이 지쳐서 그 이상 가기 힘들다. 석계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숫자가 다시 고개를 든다. '34년'이면... 어떤 장벽이든 너끈히 무너뜨리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이날 동두천시 지행역에서 서울시 석계역까지 달린 거리는 약 38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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