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0 08:29최종 업데이트 23.03.10 08:29
<조국의 법고전 산책>(조국 지음)을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15권의 고전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와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시대를 앞서간 거인들.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의 틀과 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고, 이것이 '불순죄'가 되어 화형을 당하거나 추방을 당하기도 했던 그들.

맨 처음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을 들고 나왔을 때 그것은 기존의 기득권을 뒤흔든 혁명적 사상이었으나, 지금 우리 시대 '자유'라는 가치는 너무도 당연하다. 오히려 '보수의 아이콘'이 되었을 정도이다. 그들이 외치는 '자유'라는 관념은 밀이 외친 것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최초에 하나의 생각 씨앗이 날아와 우리 토양에 싹이 트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실로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선각자들은 비록 살아생전 빛을 발하진 못했을지라도, 사후에 그 씨앗이 꽃과 열매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큰 거름이 된다. 우리들은 이 거름 덕분에 문명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우리가 이름만 듣고 넘겨버린 시대를 앞선 사상가들이 저술한 고전들을 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서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사상가들이 발현시키고자 했던 미래 세상의 사람들과 시대를 초월하여 교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거인들과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함께 호흡하고 대화를 나누며, 이 거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그 중매인이 바로 조국 교수인 셈이다.

쓰면서 위로 받고, 읽으면서 위로 받고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이은영

 
현재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조국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유배당한 정약용처럼, <사기>의 저자 사마천처럼 책을 쓰는 일로 비운을 달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더 특별했고, 그들의 사상이 더 가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가 296쪽에 썼던 표현 중 '울프피쉬 호리' 물고기의 예가 와닿았다. 이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겨우 1cm 자라는데, 강에서 키우면 15cm, 바다에서 키우면 60cm까지 자란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틀에 해당되며, 이 틀이 우리의 사고를 속박하도록 짜여 있다면 우리는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고, 반대로 우리가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그 틀이 짜여 있다면 결과는 다를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사실 자체 면적규모도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지리적으로 분단까지 되어 있다. 이렇게 단순 지리가 나뉜 것도 사고의 틀을 제약할 수 있는 요인이다. 남한은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벌판, 유라시아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데, 북한과 단절로 사실상 섬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좁아진 지역만큼이나, 쭉쭉 뻗어나가면 바로 위가 러시아이고 더 지나면 유럽이라는 지리적 확장성을 잃어버리고 휴전선 앞에서 단절된 세계만 경험할 뿐이다.

지리적 단절보다도 더 큰 문제는 사상적 단절이다. 우리는 북한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면서 사상의 자유가 크게 제한되어 있다. 한쪽이 거세되어 한쪽만으로 살아가는 '외눈박이'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고의 폭이 너무나 좁고, 제한된 틀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처럼 현실만 놓고 보면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다행히 해결책이 있다. 바로 책이다. 고전이 있다. 앞서 나갔던 사상가들의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사유의 체계를 보다 확장시켜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비록 육체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나 정신은 제한이 없다. 정신은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협소한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정신만큼은 틀을 깨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이 책이 그 틀을 깨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구절은 존 로크 <통치론>에 나온 부분이다.
 
"인민에게 먼저 노예가 되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자유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폭정에서 벗어날 권리뿐만 아니라 예방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17세기에 쓰여졌던 이 저항권 개념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거침없어 보인다.우리나라처럼 '내란선동죄'가 혁명을 원천봉쇄하면서 겁박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국가에게 참 필요한 문구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에서 느꼈던 자유의 공기를 사회에 나와서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결혼부터 직장,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틀의 압박을 받아왔다. 대학에서 배웠던 수많은 것들은 그저 이상으로만 그쳤고, 현실은 무거운 벽처럼 나를 틀에 가두었다. 

20대 중반부터 직장과 결혼 등 세상의 틀 속에 갇혀버린 나는 일찍부터 염세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디에도 창의적인 발상과 자유의 공기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조직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고, 결혼 또한 하나의 틀이 되어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작은 감옥처럼 여겨졌다.

여기에다 사회는 어떠했던가? 내가 대학을 졸업한 2000년도 이후 밀레니엄 세대가 시작되었지만 정치는 정작 노무현 시대를 지나면서 보수로 회귀하였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세월호'를 겪었다.

이 비운의 사건을 통해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고 썩었는지 실감했다. 사회가 점점 자유의 물결을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보수 반동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유의 위축이라는 엄청난 후퇴를 경험해야 했다.

대규모 촛불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키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다시 시대의 흐름을 순행하는 듯하다가 5년 만에 또다시 반동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이 이 사회를 이처럼 쉽게 보수로 회귀하게 만들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유의 결핍'이 아닌가 싶다. 그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결국 독서를 기피하고, 얕은 정보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과 사유가 사라진 사회. 얕은 지식과 정보는 쉽게 조작이 가능하고 인간에게 짧은 시간 안에 통제가 가능하게끔 만든다. 철학과 사고의 깊이를 가진 사람에게는 얕은 지식과 정보로 그 사람의 정신을 뒤흔들게 할 수가 없다. 단편적인 지식들로 사고의 틀을 제한시킬 수 없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한, 사유의 폭을 넓히고 그 틀을 깨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나온 사상가들은 대부분 그 시대에 위험인물로 꼽혀서 핍박을 받거나, 추방당한 사람들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만 해도 절대 왕정 시대에 '오직 합법적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며 혁명권을 인정한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데다, 저술한 <에밀>이 신성모독이라 하여 법원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영국으로 망명을 가기도 했다. 그의 저서들은 불태워졌다. 시대를 앞서 나간 자들의 비극에서 그 또한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책들이 바로 민중혁명의 불씨가 되어 현대 민주주의를 낳았다. 우리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정립되어 있어야 하므로, 사상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시민이 정치적 감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

여기에 소개된 대부분의 책들은 대학 교재로 읽었고 교양서로도 조금씩 읽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쭉 얼개를 갖고 연결 지어서 자세히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려운 책들을 저자의 해박한 지성과 친절함으로 쉽게 풀어서 썼기에 그 어려웠던 고전들이 마치 에세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장은 '안티고네' 이야기였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책은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다루게 되어 깊은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BC 5세기의 고대 그리스 작가가 이처럼 현대에도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을 썼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시대의 작가들이나 철학가들을 보면, 오늘날의 사유체계와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여서 우리가 과연 얼마나 진보했나, 2000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우리가 옳다고 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라. 의심해보라는 얘기가 아닐까? 또한 인간의 법이 있기 이전에 '신의 법'이 있다는 것, 여기에서 신의 법이란 동양에서 말하는 '천륜' '순리' '도'와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인 법에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 자체로서 갖는 고유의 양심, 영혼의 감각 등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을 '신의 법'이라고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원래 책을 상당히 빨리 읽어 보통 하루 만에 다 읽는데 이 책은 일부러 아껴서 천천히 읽었다. 빨리 읽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싶었다. 특히 정치로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읽는데 진짜 위로가 되었다.

조국 교수가 서문에 본인이 이 법고전을 쓰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는데, 실로 나 또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가장 힘든 시기에 처해 있는 저자가 쓴 이 책이 도리어 가장 큰 위로를 주었다니 역설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동안 고전에서 많은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다. 고전이 주는 위로의 힘, 지혜의 힘은 참으로 큰 선물 같다.

우리가 지난 시절 했던 큰 착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노무현 정부 시절, 사람들은 이제 정치는 민주화되었고 더 없이 선진화되었으니 경제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너나없이 얘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우리는 정치의 퇴행을 겪은 것 같다. 정치가 얼마든지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지금 정부를 통해서 충분히 학습한 것 같다.

우리가 정치적 감각을 잃지 않고, 선진적인 나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각성과 감시가 필수적이다. 이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언제든 다시금 정치 후진국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정치가 후진적이 되면 경제 또한 당연히 낙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따로 가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 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정신의 인프라가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우리 사회와 시민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큰 메시지이자 선물 같다. 우리는 아직도 크게 진보하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책을 읽고 그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은이), 오마이북(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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