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9 13:24최종 업데이트 23.03.09 13:24
  • 본문듣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소셜 코리아 연속기획] 국민연금,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꿔야 하나  
① 국민연금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② 미래세대 부담은 얼마나? 
③ 이해당사자 목소리가 안 들린다

 

지난 2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 연합뉴스


최근 연금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금개혁은 두 차례 있었는데 1998년이 1차 개혁, 2007년이 2차 개혁이었다. 연금개혁에 대한 시각은 크게 보장성강화론과 재정안정론으로 나뉜다. 전자는 급여수준 향상을, 후자는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다.

또 연금개혁의 내용 혹은 방법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으로 나뉜다. 전자는 현행 제도의 틀 내에서 주요 제도변수를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제도변수는 파라미터 또는 모수라고 부르는데 기여율이나 소득대체율, 연금수급연령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후자는 연금의 제도 틀 자체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두 차례 연금개혁은 모두 재정안정론 입장에서 추진되었다. 2차 개혁 때의 기초연금 도입을 제외하면 소득대체율을 하향조정한 모수개혁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두 차례의 연금개혁 이후 주목할 만한 개혁 시도로는 2019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때 비록 최종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연금개혁 역사상 가장 폭넓은 합의를 도출했다. '소득대체율 45%-기여율 12%'라는 다수안에 노동계와 시민단체 및 청년단체까지 합의한 것이다. 당시 경사노위 다수안에 끝까지 반대한 세력은 경영계와 그들의 편을 든 재정안정론자들이었다.

작년 11월에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연금개혁특위는 산하에 민간자문위를 두고 여기에 재정안정론과 보장성강화론을 각각 대표하는 두 전문가를 공동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을 병행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민간자문위는 연금개혁에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금개혁특위는 민간자문위의 활동기한을 연장함으로써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이 동시에 추진될 기회를 열어두었다.

내 돈 내고 이자 붙여 받는 게 연금?

연금개혁을 올바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내가 젊을 때 돈을 내고 여기에 이자를 붙여 노후에 돌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현재 국민연금 급여를 받는 퇴직세대는 그들이 젊었을 때 냈던 돈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젊은 세대가 매달 납부하는 기여금(연금보험료)에서 받아 간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국민연금에는 왜 기금이 쌓이는가? 그것은 국민연금을 처음 설계할 당시 일정 기간 완충기금 목적으로 국민연금을 쌓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여금 납부자가 연금 수급자보다 훨씬 많아서 기여금 수입으로 연금을 지급하고도 돈이 남아서 그것이 기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의 최초 설계자들은 왜 기금을 쌓기로 했을까? 국민연금을 처음 설계할 당시 노인들의 소득원을 조사한 통계를 보면 자녀 의존이 78.2%에 달했다. 나머지는 공적연금 1.7%(주로 특수직역 연금), 저축 및 재산 9.0%, 취업 21.8% 등이었다(중복응답).

효 문화가 상당히 남아있어서 사적 이전소득이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최초 설계자들은 당시의 효 문화를 국민연금으로 곧바로 대체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최소 15년을 가입해야 연금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한 것이다.

최초 설계자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1980년대 중반이 연금 도입의 적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인구고령화를 예측했고 그에 따라 제도가 성숙하면 기여금을 인상해야 하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로부터 기여금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최초 설계자들은 국민연금 급여는 15년 후부터 지급하도록 해서 베이비붐 세대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연금에 기여금을 납부하도록 하여 그들의 퇴장까지 완충기금을 쌓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기금은 기여금 인상 부담을 완충하지만 제도성숙에 따라 점차 소진되고 종국에는 기여금으로 연금급여를 모두 충당하는 것으로 설계됐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을 처음 도입할 때 기여금 3%, 소득대체율(국민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소득 대비 연금으로 지급하는 비율) 70%로 한 것은 재정적으로 불균형한 설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내 돈 내서 거기에 이자 붙여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노인 세대를 당대의 젊은 세대가 부양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3% 기여금 - 70% 급여'를 직접 연결 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한 이유
 

연금제도 초기의 낮은 기여금과 높은 급여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이유는 연금제도가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 셔터스톡


또 처음 5년(1988~1992년)은 기여금이 3%였지만 그다음 5년(1993~1997년)은 6%, 1998년부터는 9%였다. 당시 국민들은 3~9%의 기여금을 냈고 그것으로 당대의 노인들에게 급여를 지급할 때는 소득대체율 70%를 기준으로 급여액을 계산했던 것이다.

당시 연금수급 연령은 60세였는데 이 연령 이상 인구가 1988년에는 7.2%였고 15년 후인 2003년에는 12.3%, 완전 노령연금이 본격 지급되기 시작한 2008년에는 14.3%였다. 따라서 기여금 납부 인원을 감안할 때 부담 능력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또 국민연금 시행 당시에는 사적 부양문화가 제법 남아 있었고, 그것을 국민연금으로 곧장 대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여금을 처음부터 높게 설정할 수는 없었다. 이처럼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기여금을 낮게 하고 급여를 높게 하는 것은 많은 나라가 해오던 방식이다.
     
제도 도입 시에는 그전까지 존재하던 노인 부양 관행을 고려해야 하고 새 제도의 연착륙도 의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재정이 불안정하게끔 잘못 설계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제도 초기의 낮은 기여금과 높은 급여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다른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연금제도가 성숙해지기(즉 연금수급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반복하지만 이는 연금제도의 성숙으로 인한 것이지 국민연금이 처음부터 재정이 불안정하게끔 잘못 설계된 탓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급속한 인구고령화로 제도 성숙도 빨라 이 점에는 우리 모두가 유의하여 대비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에 대비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는 하루라도 빨리 기여율을 올려 기금을 크게 쌓는 것만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는 재정편향적 주장이 압도적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금소진이 없게끔 기금을 적립한다는 것은, 예컨대 2060년에도 그해의 기여금수입과 기금 수익(기금 현금화+기금 운용 수익)을 합쳐 그 해의 연금을 지급하자는 의미이다. 5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 국민연금 제4차 재정계산(2018년)에 의하면 2060년의 부과방식비용률(기금이 소진되어 기여금만으로 연금급여를 모두 지급해야 할 때의 기여율)은 27%인데 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보면 7.5%이다.

이 7.5% 중 절반(3.75%)은 기여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기금수익으로 충당한다고 해보자. 제4차 재정계산에 의하면 대체로 기금 규모가 GDP의 45%일 때 기금수익이 GDP의 2% 정도였다. 따라서 기금수익으로 GDP의 3.75%를 충당하려면 기금 규모가 GDP의 85% 정도 되어야 한다.

거대 기금이 경제에 악영향
 

지난 1월 27일 전병목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만일 시점을 더 뒤로, 예컨대 2080년을 기준으로 하면 지급해야 할 연금급여가 GDP의 9.4%가 되니 쌓아야 할 기금은 더 커지고 기여율도 더 커진다. 그러니 기금 축적을 위해 기여율을 빨리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 기금 규모를 크게 하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것인가? 국민연금의 최초 설계자들도 후세대 기여금 인상 부담을 덜기 위해 기금 적립을 의도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른 사항은 없을까?

만일 오로지 거대한 기금을 쌓기 위해서 현재의 노동세대에게 기여율을 올린다면 그들의 가처분소득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그에 맞춰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저축을 할 정도의 고소득자라면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기여금 증가액만큼, 즉 기금 축적액에 근접하는 수준의 소비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의 내수가 부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소비위축이 야기하는 부작용은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기금 규모가 국가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크기 때문에 해외자산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기금 규모가 커지면 해외투자는 더 커질 것이다. 소비를 위축시키면서까지 쌓은 기금이 국내 경제로 순환되지 못하고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경제운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경제가 축소 운용되면 미래세대에 더욱 위축된 경제를 남겨주게 된다. 물론 기금을 더 많이 쌓으면 해외로부터 수익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GDP 대비 9.4% 정도만 부담하면 될 것을 거대한 기금을 쌓아서 그 수익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 미래세대에 정말 이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시경제적 부작용이라는 문제와는 약간 다른 측면의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금수익을 퇴직세대의 연금지급분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기금이 보유한(즉 연금공단이 보유한) 주식‧부동산 등 자산의 일부를 처분하여 현금화(유동화)한다는 의미도 된다.

이 경우 유동화가 국내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해야 한다. 또 해외에 투자된 금융자산을 처분할 경우는 이를 원화로 환전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환율변동의 위험도 있다.
     
또한 기금을 쌓아 그것을 국내에 투자하든 해외에 투자하든 수익을 추구하는 한에서는 그만큼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거의 10년에 한 번씩 손실을 보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게다가 기금을 투자하면 그에 따른 관리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 1월에 발표한 5차 재정계산 시산결과에서는 인구구조가 더 나빠졌음에도 2080년 연금지출이 GDP 대비 9.4%로 제4차 재정계산 때와 동일하게 추정되었다. 재정주의자들은 이를 부담이라고 주장하지만 노인인구가 20%가 채 안 되는 유럽 국가들은 지금도 GDP의 약 10%를 연금 지출에 쓰고 있다. 2060년 이후 우리는 노인인구가 45%를 넘는데 GDP의 9.4%를 연금지급에 쓰는 것이 부담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바닥나서 연금 못 받는 나라 없어

연금기여금을 부담이라고, 그리고 GDP의 9.4%인 연금지출을 부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복지지출은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금이 사실상 거의 없는 독일이나 스페인, 영국 등 나라의 노인들이 기금이 없어서 연금을 못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재정주의자들은 세금 납부를 싫어하는 일반 정서에 편승하고 그것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확대재생산하여 기여금 납부를 부담이라고만 주장한다. 하지만 기여금 납부와 조세 납부를 통한 연금 지급은 노인들의 소비활동을 통해 다시 국내경제로 순환되어 경제운용에 도움이 된다. 기금을 쌓아서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순환을 방해하고 소비를 위축시켜 미래세대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미래에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집단에 공적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주면 내수가 튼튼해져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퇴직세대와 노동세대가 연대하고 상생하는 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못한 탓을 정치권에 돌리는 경향이 강하지만 실제 그간 두 차례의 연금개혁과 경사노위 다수안은 모두 민주정부에서 이뤄졌다. 보수정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있었지만 전 국민 대상의 연금개혁은 모두 민주정부에서 추진했다.

이번에 연금개혁을 이룬다면 보수정부 하에서 전 국민 대상의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과도한 공포감 조성보다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장성 강화와 재정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연금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남찬섭 /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남찬섭

 
필자 소개 : 남찬섭은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과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참여정부 시절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및 양극화민생대책본부의 전문계약직 공무원을 거쳤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및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 국회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