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9 05:14최종 업데이트 23.03.09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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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 앞에 유럽연합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세기 전반기 30년 동안 유럽은 자신들의 근대 과학기술 혁명으로 이룬 가공할 힘을 모두 전쟁에 쏟아부었다. 일방적 침략을 당한 국가 피해를 제외하고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 참전국에서만 최소 70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갑자기 불어난 힘을 관리하지 못한 유럽은 그렇게 스스로 무너졌다. 재건은 물론 세계질서 재편까지 미국의 의도에 따라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마셜플랜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규모 지원 계획은 유럽을 정치, 금융, 통상뿐 아니라 문화, 예술, 학문 등 전반에 걸쳐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했다.


이때 유럽이 선택한 미래 전략은 두 가지. 대외적 안보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지하면서, 대내적 안정은 그들 사이의 경제적 결속을 다지는 것이 골자다. 그렇게 탄생한 유럽 안보와 번영의 두 축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이다.  

1949년 4월 4일 미국과 11개 유럽 국가가 모여 창설한 집단방위체제 NATO는 서유럽의 안보 상황을 빠르게 안정시켰고 군사적 다자외교의 한 모델을 만들었다. 집단안보의 두 핵심인 억제기능과 방어기능이 순조롭게 작동하는 듯 보였다.

냉전이 종식된 후에는 국제경찰 역할까지 수행했다. 유고슬라비아연방 해체 후 벌어진 분쟁 개입이 대표적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 당시, 비행금지구역을 비행하는 전투기를 격추시키는가 하면, 세르비아가 지원하는 스릅스카 공화국 기지를 향한 군사작전이 전개되기도 했다.

역시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신생국 코소보 개입도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무력 개입은 없었지만 NATO가 주도하는 코소보군(KFOR)의 주둔만으로 현재까지 평화가 잘 관리되고 있는 것은 인정할 만하다. 코소보 개입 10년 만에 NATO는 주둔 목적을 '전쟁 억제' 기능으로 공식화했다.

EU는 역내 전쟁만은 막겠다는 현실적 위기감에서 출발했지만 경제적 잠재성에 대한 기대도 한 몸에 받았다.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슬로건대로 경제, 외교, 사법 등 하드웨어는 국가를 넘어 대륙화를 추구하면서, 언어, 예술, 문화 등 소프트웨어는 국가보다 작은 지방화를 지향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 외에 각료회의 격의 이사회, 정상회의, 유럽의회 등 국가에 버금가는 정치체제의 기본 구성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이사회, 정상회의가 1국 1표 원칙이라면 유럽의회는 철저히 국가 간 인구 비율을 따르고 있다. 의회의 권한은 점점 확대하는 쪽으로 진화 중이다.

가입 요건을 갖춘 유럽 국가라면 심사를 통해 가입할 수 있으며 탈퇴 또한 자국이 원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강력한 결합을 향한 유럽 헌법 발효가 좌절됐지만 '각자의 속도로' 더 큰 결속을 향해가고 있다. 유럽화의 법적 주체를 국민으로 할지, 국회로 할지 역시 각국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NATO와 EU라는 쌍두마차
 

2022년 5월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스웨덴과 핀란드의 NATO 가입 신청 기념식에 클라우스 코호넨 주나토핀란드대사,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 악셀 베르호프 주나토스웨덴대사가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 간에도 민주주의 원칙이 작동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유럽인들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EU 출범과 변화 과정은 근대 민주주의 혁명 이후 또 하나의 정치사적 의의를 가진 사건이 되고 있다.  

NATO와 EU라는 쌍두마차에 올라탄 유럽은 20세기 후반기 40여 년 동안 안보와 번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그들의 도전 결과는 성공적으로 비쳐졌다. 반세기 만에 유럽을 절반으로 갈라놓은 철의 장막을 무너뜨렸고,  비슷한 시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EU도 출범시켰다.

그들은 미국과 함께 소비에트식 연합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국제주의 모델을 선보였다. 그리고 과거 철의 장막 저편의 국가들을 하나둘 NATO와 EU에 합류시키고 있다. 내구성에 자신감을 가진 그들은 냉전 종식 이후 새 도전 과제로 확장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소련 해체 당시(1991년 12월) 16개 회원국을 보유하던 NATO에 현재는 30개국이 가입돼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신규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마스트리흐트 조약 체결 당시(역시 1991년 12월) 12개 회원국이던 EU에 현재는 27개국이 가입돼 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8개국이 공식 후보국으로 돼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 후발 주자들의 모델이 되고 있는 EU는 조약 체결 후 30년 동안 그렇게 확장돼왔다. 에라스무스의 열린 지성 이상이, 칸트의 영구 평화 이상이 우리 시대에 결실을 볼 수 있다고 그들이 믿어온 시간이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그 이상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유럽의 결속과 확장에 위기감을 느낀 각국의 국가주의자들은 독립성과 다양성을 주장하며 통합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국가주의를 제국주의와 전쟁의 씨앗으로 인식하는 유럽통합주의자들과 달리 극우, 극좌의 일부는 그와 반대로 국가의 주권을 정치이념의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유럽 원년 멤버국들과 동유럽 후발 합류 국가들 사이에 있는 경제력, 민주주의 인식, 안보 체감도의 차이도 내부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경제력과 부패인식지수의 차이는 북유럽과 남유럽 국가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남유럽 국가들의 실업률 증가와 부채가 EU 내부의 큰 위기로 작용했다. 

이들보다 EU의 더 큰 위기는 영국의 이탈이었다. 과거 프랑스가 NATO를 탈퇴했다 재가입한 전력이 있는데 이번에는 영국이 EU를 탈퇴한 것. NATO가 미국과의 접점을 이루는 기구이고 EU가 순수한 유럽의 기구라는 점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이탈 대상이 눈에 띈다. 

영국의 돌발적 결별 선언을 수습할 틈도 없이 동쪽 경계 넘어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는 잠재적 EU 가입 대상국이면서 NATO 가입 희망국이었기에 유럽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내전을 제외하고 2차대전 이후 유럽이 처음 겪는 전쟁이다.

러시아 배제한 EU의 확장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리비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EU가 확장일로를 걷는 동안, 세계도 변했다. 한국과 같은 모범적 후발 주자의 경제력은 다수의 유럽 국가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유럽을 넘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을 이루게 됐다. 안보 위협뿐 아니라 경제 분야 경쟁력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영구적 평화와 번영을 꿈꾸던 유럽이 이제 안보, 환경, 에너지, 민족 갈등, 난민 등 전반에 걸쳐 새로운 도전들 앞에 서게 됐다. 지금까지 유럽이 가져온 비전을 더 강화, 보완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지 기로에 놓인 것이다.

무엇보다 확장의 조건과 목적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NATO의 확장은 무엇을 위한 확장인가? 유럽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NATO 가입이 원천 배제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NATO 가입을 신청한 바 있다.

소련 붕괴 후 보리스 옐친, 블라디미르 푸틴 두 러시아 대통령도 하나 같이 NATO 가입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번번이 서방 세계는 거절하고 러시아를 모든 유럽의 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혹자는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러시아는 서방세계의 위협 세력이라고. 소련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의 호전적 자세라고. 하지만 러시아를 호전적으로 만든 것에는 서구 세계의 책임도 한몫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고,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전 세계 식량, 에너지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푸틴 대통령은 전범이고 가능하다면 국제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물론 러시아가 붕괴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범죄자 처벌과 별도로 범죄가 발생하는 요인에 대한 반추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은 왜 번번이 소련/러시아의 NATO 가입을 거부했을까? 왜 흐루쇼프, 옐친, 푸틴의 친유럽적 전향적 자세를 모멸감과 분노로 바꾸고 말았을까?

EU도 크게 다르지 않다. EU는 현재까지는 느슨한 결합체이고 화폐 통합도 전체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EU 27개국 가운데 유로존은 20개국)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주 주장하듯 언젠가는 EU 방위군이 창설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문, 문화, 예술의 다양성 추구와 반대 방향으로 정치, 외교, 국방은 하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EU이다. 따라서 EU에 합류한다는 것은 훗날 잠재적 거대한 군사력에 합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군이 창설될 경우 NATO와의 관계 재설정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재정적 부담이 줄어드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를 배제한 EU의 확장은 러시아에 거대한 압박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는 소련 붕괴 직후부터 서유럽과 러시아가 암묵적 약속을 한 사항이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도 어느 쪽의 저항도 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4년 이뤄진 우크라이나 비핵화 협정(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은 미국과 러시아의 의견이 일치해 가능했다.

미국과 EU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를 방치 또는 고립시킨 것이 무능에서 기인했든 의도적이든 그 결과는 30년 만에 엄청난 재앙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맞은 시점에 전쟁의 귀책 사유와 별도로 역사적 책임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귀책 사유가 어디에 있든 그 피해는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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