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6 14:37최종 업데이트 23.03.0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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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3년 3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6일 오전에 박진 외교부 장관이 강제징용(강제동원) 처리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1월 12일 공개 토론회 때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예고한 대로 제3자 변제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에 관한 박진 장관의 발표는 이렇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지원 및 피해 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 판결 원고 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 이자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또한 동 재단은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 동 판결금 및 지연 이자 역시 원고 분들께 지급할 예정입니다.
 
박진 장관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나 일본제철에 배상 책임을 묻지 않고 행안부 산하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 책임을 떠안겠다고 발표했다. 전쟁 범죄 책임을 한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떠안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강제집행 절차로 인해 전범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전범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을 거부하고 있다.

그저 과거를 덮자는 메시지

박 장관은 국익에 걸맞은 대승적 결단이라고 자화자찬했다. 80년간 축적된 자국민들의 한을 풀어주고 역사를 바로세우기보다는 기시다 내각과 그 배후의 바이든 행정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윤석열 정부의 어이없는 궤변이다. 한국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나라가 과연 이런 식으로 자국민의 문제를 봉합하려 할지를 도외시한 발언이다.


6일 박 장관이 발표한 대로, 그동안 윤 정부는 한국 정부가 책임을 떠안되 일본 측의 성의 표시를 관철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일본 측의 사과 표명과 더불어 약간의 금전 출연은 반드시 받아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작년 5월 정부 출범 이래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양국 정부와 실무진 사이에 적지 않은 접촉과 회담이 있었는데도 아무런 성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서 나타난 대로, 일본은 사과 표명을 거부하는 대신에 과거의 사과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과거의 사과 담화는 박 장관이 언급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다(관련기사: 기시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전체적으로 계승할 것" https://omn.kr/22yp3).

식민 지배 피해에 대한 구체적 해법 제시 없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만 표명하는 데 그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겠노라고 기시다 총리가 언급하는 것으로 사과를 받은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 80년 가까이 한과 울분이 쌓여온 피해자와 유족들을 그렇게 우롱하는 것으로 문제를 봉합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 금전 출연 문제는 양국 경제인 단체의 자금 기부로 대체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가칭 미래청년기금을 함께 만드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 기금은 강제징용 해결에 쓰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강제징용 배상금으로 비쳐 자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까 일본 측은 우려하고 있다. 이 돈은 유학생 장학금 등을 포함한 양국 청년 기금으로 사용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국 청년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징용 문제를 덮고자 하는 일이다. 의도가 순수하다고 볼 수 없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자는 메시지를 강조하고자, 과거의 징용 피해자와 관련된 사안에서 미래의 청년들을 위한 기금을 운운하는 접근법을 구사하는 셈이다.

장애물 하나 더 세운 윤 정부

이렇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징용 배상 책임을 떠맡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식민 지배 문제의 해결은 한층 더 곤란하게 됐다. 한국 정부가 1965년과 2015년에 이어 2023년에 또다시 반역사적이고 반국민적인 결정을 내려 식민 지배 문제의 장애물을 하나 더 세워놓은 셈이다.

한·일 협정으로 통칭되는 한일기본조약과 부속 협정이 체결된 1965년에는 식민 지배에 대한 처리 없이 양국 국교를 정상화시켰다. 일본은 이때 체결된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가 다 처리됐다고 주장하지만, 2012년에 우리 대법원은 그런 주장이 허구라고 판시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같은 불법 행위를 종결했다고 하려면 그런 행위가 있었음을 양국이 인정하는 일이 선결돼야 한다. 일본이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종결하는 합의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 2012년 판례의 논지다. 이런 데서도 나타나듯이 1965년 6월 22일의 한·일 협정은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 같은 구체적 각론에 대한 합의 없이 식민 지배 문제를 총론 차원에서 봉합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0년 뒤에 강행된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1965년의 총론적 합의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라는 각론 하나를 봉합하는 일이었다. 위안부 합의의 접근법 역시 한·일 협정과 다를 바 없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가짜 사과와 배상금 아닌 위로금 지급으로 사안을 덮으려 한 시도였다.

아베 신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 입장을 표명했다가 이틀 뒤 <산케이신문>을 통해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며 짜증스러운 심기를 표시했다. 그런 합의마저 왜 해주는 거냐는 극우세력의 불만을 그렇게 달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사과는 가짜 사과로 평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위안부 합의는 배상은 물론 사과도 없었던 가짜 합의가 됐다.

그로부터 8년이 다시 흐른 2023년 3월 6일, 강제징용이라는 또 하나의 각론에 대해 윤 정부가 봉합을 시도했다. 일본과의 협상에 대패한 윤 정부는 양국 합의도 아닌 일방적 선언으로 징용 문제 봉합을 시도했다.

이 문제의 접근법도 1965년·2015년과 다를 바 없다. 일본의 사과·배상을 관철해 문제를 원칙대로 해결하는 것이 한·일 관계를 올바로 세우는 길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1965년·2015년만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합의도 아닌 단독 선언으로 책임을 떠안았으니, 일방적인 항복 선언이란 표현이 떠오를 만한 일이다.
 

‘강제동원 매국굴욕 해법 강행 규탄 진보당 기자회견’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앞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규탄 피켓을 외교부 입구에 부착하고 있다. ⓒ 권우성


대충 덮으려 할 때마다 생기는 일

한·일 두 정부가 매번 간과하는 것이 있다. 양국 정부가 대충 덮는다고 덮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덮일 문제였다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이미 다 덮였을 것이다. 이번처럼 대충 덮으려 할 때마다 발생한 일은, 대충 덮으려 한 정권이 결국 민심 이반에 직면하곤 했다는 사실이다.

1965년 협정 체결 이후 일본 방문이 매번 무산돼 박정희는 대통령 재임 중에 한번도 일본에 가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고 야당을 억압한 박 정권도 그 뒤 한·일 관계에서만큼은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박정희는 자신과 일본이 엮이는 것을 최대한 경계했다. 한·일 협정 당시에 자신했던 한·미·일 군사동맹은커녕 한·미·일 군사협력도 끝내 실현시키지 못했다.

위안부 합의의 주역인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계기로 민심 이반에 직면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어 2015년 위안부 합의 참사는 2016년 촛불혁명으로 박 정권이 끝나는 계기가 되었다.

식민 지배 문제는 공권력을 앞세워 서두른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민들의 가슴에 맺힌 한(恨)의 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이 아니면 그 어떤 시도도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1965년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965년과 2015년에 이어 이번에도 미국이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위해 양국 정부를 움직였지만, 이제까지 미국의 힘도 이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억압하지는 못했다.

일본 정부 못지않게 한국 정부도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을 억누르는 데 주력해왔다. 이번처럼 식민 지배 문제의 장애물을 하나씩 세워놓곤 한 것이 바로 한국 정부다(관련기사: 3.1절, 한국 정부와 국민 사이의 괴리감 https://omn.kr/22wb0). 그런데도 80년 가까이 이 문제가 계속 이슈가 되고 있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계속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이런 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님을, 식민 지배 문제의 생명력이 그처럼 질기고 질김을 보여준다.

한·일 두 정부는 이것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덮고자 하지만, 이번 일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한·일 협정 이후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1965년과 2015년에도 식민 지배 해결이 곤란해졌지만 결국에는 이 문제가 다시 살아나 꿈틀댔던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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