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3년에도 한·일 관계가 긴장돼 있었다. 우경화로 달려가는 일본이 1982년 6월에 노골적인 역사 교과서 왜곡을 벌여 한국인들을 분노케 한 직후였다. 베트남 전쟁과 68혁명으로 위기에 처했던 미국이 힘을 추스르며 반격에 나선 1980년 전후의 세계정세에 편승해 일본 우익이 그런 방식으로 세력 확대를 모색할 때였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일차적으로 원한 것은 일본과의 무조건적 협력이 아니라 일본의 사과·반성이었다. 1982년 6월 26일 자 일본 언론보도로 알려진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증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의 사과·반성 요구는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문부성은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외교권 접수'로,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부동산 약탈을 '토지 소유권 확인'으로 미화했다. 또 '침략'은 '진출', '출병'으로 둔갑시켰다. 3·1 운동은 '데모와 폭동'으로, 8·15 한국 광복은 '일본의 지배권 상실'로 폄하시켜 놓았다.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는 곳곳의 시위로 분출됐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국민들이 이번에는 일본의 반성을 요구하면서 거리로 뛰어나왔다.
이 때문에, 7월 27일 자 <조선일보> 하단에 나타나듯이, 서울 종로경찰서는 반일 시위대의 일본 대사관 공격에 대비해 기동전경대원 50명을 별도로 비상 대기시켜야 했다. 9월 16일 자 <경향신문> 7면 하단에 실렸듯이, 서울대는 '학생에게 고함'이라는 공고문으로 집회를 금지시켜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두환 정권은 일본의 사과·반성을 촉구하기보다는 일본과의 연대에 치중했다. 박정희 정권 몰락 뒤에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열기를 5·18 광주 학살로 짓밟은 전두환 정권은 박 정권의 초기 행보를 모방해 일본 경협 차관을 얻는 데 주력했다.
전두환 정권은 설상가상으로 경제협력뿐 아니라 군사협력까지 추진했다. 윤성민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정부는 앞으로 보다 현실적인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방안을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1983년 9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도 나타나듯이, 전두환 정권은 한·미·일 군사협력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한·일 군사협력 추진을 정당화하려 했다.
전두환 정권이 한국 국민보다는 일본 정부를 더 의식했다는 점은 3·1운동 제64주년을 경축하는 1983년 3·1절 기념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해 1월 11일 한국을 방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로부터 방일 초청을 받고 일본 방문을 기대하게 된 전두환의 '설렘'을 이 기념사에서 느낄 수 있다.
전두환은 1981년부터 1987년까지의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의의를 높이 평가한 뒤, 일본제국주의 비판이 아닌 북한 비판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반복했다. 일례로, 1983년에는 "3·1 정신을 우리가 진정으로 승계하는 길은 우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그 기틀 위에서 안으로 우리의 내실을 튼튼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직후에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외부의 위협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 공산집단에 의한 것입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렇게 북한과의 투쟁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그의 기념사는 방일 초청을 받은 직후인 1983년에는 이상한 흔적을 남겼다. "이번 세기의 초반 일본 식민주의의 굴레 속에"(1981년), "우리에게 있어 일본 통치가 준 쓰라린 교훈"(1982년)에서 나타나듯이 3·1운동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일본을 언급했던 1981년·1982년과 달리, 1983년에는 일본이란 단어가 연설문에 나타나지 않았다. 3·1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겨냥한 것이었는지를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뒤 엉뚱한 주문이 기념사 결론부에 나타났다. 일본에 대한 지난날의 감정을 털어버릴 것을 촉구하는 주문이었다. 1983년 연설은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지난날 우리를 침략한 세력에 대한 증오와 울분을 이제는 우리의 국력을 신장하여 선진조국을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가꾸어 나가는 슬기와 금도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책무에 충실할 때 우리의 선인들은 지하에서도 성원과 가호를 아끼지 않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우리 조국의 영원한 수호와 구원한 번영을 위해 다시 한번 온 겨레의 합심과 분발을 바라는 바입니다.
일본이 사과·반성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에 대한 울분을 털어버리자고 주문하는 것은 한국인들을 분노케 하는 한편 일본 우파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전두환의 연설이 한국 국민과 일본 정부 중 어느 쪽을 더 의식한 것인지는 이로써 명확해진다.
1983년 기념사는 나카소네를 만나고 그의 초청을 받은 뒤로 일본에 더욱 기울어진 전두환의 정서를 보여주는 자료가 될 만하다. 일본이 아닌 북한을 맹공격하는 그의 기념사는 1984년에도 계속됐고, 그의 방일은 그해 9월 6일 실현됐다.
일본 총리의 초청을 받은 뒤, '일본에 가야 할 사람답게' 3·1절 기념사를 발표한 전두환의 모습은 한국 대통령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일본 정부의 위력을 절감케 만든다. 국민의 명령보다 일본의 명령 앞에 움찔하는 한국 대통령의 모습은 한국 국민들을 서글프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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