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2 16:32최종 업데이트 23.03.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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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말]
[소셜 코리아 연속 기획] 이제는 보건의료 개혁이다
① 총론 – 보건의료 개혁의 필요성과 방향
②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려면
③ 공공의료 체계에서 돌봄의 중요성
④ 일차보건의료와 공공의료

우리나라 국민들이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쉽고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정답은 동네의원이다. 동네에서 흔히 이용할 수 있는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 수는 2022년 기준 약 6만 8천 개로 전체 병의원 7만 6천 개의 약 90%를 차지한다.


특히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관절염·독감과 같은 감염병, 건강검진, 예방접종 등의 의료를 제공하는 '의원'은 약 3만 4천 개로 동네의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건강보험 가입자 중 90% 정도는 의원을 이용할 정도로 국가 전체 보건의료 체계에서 의원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우리가 흔하게 겪는 여러 건강 문제를 종합적으로 진료하는 '의원'은 '일차 의료'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차 의료(primary care)'란 "한 개인의 보건의료 필요 대부분에 책임을 갖는 의사와 일차 의료팀이 환자와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가족과 지역 사회 맥락을 고려하여 제공하는 통합적이며 접근성 높은 보건 의료"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잘 파악하고, 건강 관리를 위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건강과 관련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으며, 가장 먼저 상의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료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일차 의료는 시민이 선호하는 의료를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더 편하고 더 적은 비용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일차 의료를 국가 보건의료 체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설정하고 있다.

OECD "일차 의료에 우선 투자하라"
 

일차의료기관은 환자의 건강과 관련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건강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통합 건강관리가 가능하다. ⓒ 셔터스톡

 
세계는 지금 인구 고령화와 만성 질환이라는 공통의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사회보장 체계 전반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다양한 성찰과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일차 의료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일차 의료가 잘 보장될수록 건강 수준은 더 높고, 의료비 지출과 인구 집단 내 건강 불평등은 더 낮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고려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년 우리나라에 '일차 의료 강화'를 국가 차원의 최우선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일차 의료의 중요성에 비해 일차 의료 강화를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 관련 제도 정비, 전문 인력 양성, 재정 지원 등 일차 의료 강화를 위한 투자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강력한 일차 의료 영역의 발전에 중점을 둔 정책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 환자들이 다양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계속적으로 필요할 때 스스로 이를 조정하여 자신의 질환 위험도를 감소시키는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한국 보건의료 체계가 도와주는 기능을 하기 위해 이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 의료 영역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보건의료의 질 평가 : 한국 편(OECD, 2012)

일차 의료의 역할과 기능이 미흡하면 적절한 의료 서비스의 도움을 받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대학병원에 입원한 192명의 척추질환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치료를 위해 평균 약 4.3개의 의료기관을 방문했고, 그중 4명은 방문한 의료기관 수가 너무 많아 답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들 중 의사의 소개나 의뢰로 대학병원을 방문한 경우는 7%에 불과했으며 진단을 받기까지 MRI 검사를 최대 10회나 받은 경우도 있었다. 만약 척추질환자가 처음 건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차 의료 의사로부터 적절한 상담과 조언을 받았더라면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참고로 한국인 1인당 연간 의사 외래 진료 횟수는 크게 높은 수준이다. 2021년 OECD 통계에 의하면 17.2회로 OECD 국가 평균(6.8회)의 2.5배, 2위 일본(12.5회)의 1.4배로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많은 의사 진료 횟수는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문제에 대응해 '합리적 의료 이용 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의료 이용이 적절하지 않거나 처방약 성분이 10개 이상인 다제약물 복용자를 대상으로 적절한 의료 이용 지원 및 약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제대로 된 일차 의료는 이 사업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의원 간판들이 걸려있다. ⓒ 서울시


일차 의료는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 습관 개선이 필수인 만성질환 예방 관리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주민이 이용하기 편리한 가까운 곳에서 의사와 환자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환자의 건강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당뇨병은 30세 이상 성인 6명 중 1명이 앓을 정도로 흔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 사망 원인 중 6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중대한 질환이다. 당뇨병 환자의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조기 사망을 막기 위해서는 혈당을 목표치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 치료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약물 치료와 함께 영양, 운동 등 비약물 요법과 교육 상담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체 당뇨병 환자의 약 2/3가 이용하는 동네의원에서 적절한 교육과 상담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별도의 전문교육을 받은 당뇨병 교육자는 물론이고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부터도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교육상담 받기엔 너무 짧은 진료 시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22년 발간한 <의사의 진찰 시간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진찰 시간은 초진 약 12분, 재진 약 6분에 불과했다. 즉 의사 진료 횟수는 많지만 진료 중에 적절한 교육 상담을 받기에는 진료시간이 너무 짧다.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은 동네의원에서 제공하는 당뇨병 교육상담에 대해 별도의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진단과 처방 중심의 진료만으로도 바쁜 일차 의료 의사 이외에 당뇨병 교육자의 역할을 할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호사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

참고로 미국의 공적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가입자는 당뇨병을 진단받은 첫 해에는 최대 10시간, 그다음 해부터는 매년 최대 2시간씩 병원은 물론 동네의원 등에서도 '전문 당뇨병 교육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보장받는다.
 

미국의 공적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일차의료 중심으로 종합적인 고령자 건강관리를 보장하기 위해 환자의 다양한 의료정보를 검토한다. ⓒ 셔터스톡


최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시범사업 등을 통해 동네의원 중 약 20% 정도에서 별도의 당뇨병 교육상담을 제공하고 있지만, 전국의 당뇨병 환자가 보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일차 의료의 역할이 가장 절실한 경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여러 건강 문제를 이미 갖고 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커서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보다는 '전인적' 건강 관리가 필요한 경우다.

여러 만성질환을 진단받은 이들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의료기관 또는 진료과가 늘어난다. 그에 따라 정기적으로 검사해야 할 검사 항목, 처방받는 약물의 종류와 개수도 늘어나고 약물 복용법도 복잡해진다. 개인이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부담이 많이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고령화로 인해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마저 저하되는 경우에는 그동안 개인이 스스로 감당하던 건강 관리가 어렵게 된다. 결국 적절한 돌봄 없이는 건강은 물론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겹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의료적 개입과 함께 적절한 사회서비스 지원을 병행하는 사회적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일차 의료 현장에서 개인의 건강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으려면 일차 의료 제공자가 의료 이용 정보를 정기적인 진료를 통해 수집하거나 이미 수집된 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검진 결과, 예방접종 이력,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단받은 질병과 처방받은 약물 및 검사 결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에서는 제도적으로 이러한 정보를 지원받거나 별도의 보상을 받지도 못한다. 관련 의료행위에 대한 규정도 없다. 따라서 현실에서 의료기관이 이러한 의료 정보를 얻어서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참고로 미국 메디케어의 경우 일차 의료 중심으로 종합적인 고령자 건강 관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1회 개인별로 필요한 건강검진 항목, 지금까지 진단받은 질병, 이용 중인 의료서비스와 처방약을 검토한다. 또한 생활 습관 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신체 및 인지기능과 우울증을 평가하고, 다른 전문의료기관 의뢰가 필요한지를 검토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2012년부터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치매·만성 콩팥병·심부전 등 6개 만성질환 중 2개 이상을 진단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제공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또한 일차 의료 전문 인력(종합진료 의사)을 양성하는 등 일차 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이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담당해야 할 필요성이 잘 드러났다. 평소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다른 의료기관을 동시에 이용하는 환자라면 다른 의료기관이 처방한 약물 또는 검사 결과 정보가 필요하다. 그 정보가 제한될 경우 감염병 치료제 처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아 복용 중인 약물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처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 셔터스톡

 
'팍스로비드'는 코로나19 경증이나 중등도 환자 치료에 효과적인데, 약물 처방 시 환자의 간 기능과 신장 기능을 포함한 건강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아울러 환자가 복용 중인 약 중 팍스로비드와 함께 투여하면 안 되는 약물(병용 금기 약물)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아 복용 중인 약물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 팍스로비드를 처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질병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WHO와 OECD는 보건의료 분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보편적인 건강 보장을 위한 주요 전략으로 일차 의료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일차 의료 강화 정책을 우선순위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차 의료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기존의 질병 중심, 의료서비스 제공자 중심 의료로부터 '사람 중심' 의료로 전환하고, 일차 의료 보장 강화를 위한 방향으로 건강 정책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람 중심 일차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동네의원을 더 늘리고, 이들 동네의원이 일차 의료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일차 의료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적절한 훈련을 시행해야 한다. 질 높은 일차 의료 제공을 위해 필요한 의료정보를 지원하고 적절한 활용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일차 의료팀 활동을 장려하는 적절한 보상, 일차 의료 서비스 질 관리, 환자 개인정보에 대한 정보 보호와 환자 권리 보장 등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유원섭 / 국립중앙의료원 일차의료지원센터장 ⓒ 유원섭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유원섭은 국립중앙의료원 일차의료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관심은 사람 중심 일차의료, 통합돌봄, 노숙인 건강, 필수의료 등을 화두로 하는 기존 건강보장 체계의 혁신입니다. 주요 저서로 <사회정의와 건강>(공동 번역), <지역사회 공중보건학>(공동 번역)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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