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3 07:14최종 업데이트 23.02.2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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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1939년, 나치당과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계속해서 군사력을 확장해온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끔찍한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군사적인 해법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지구촌을 꿈꾸기 시작했다. 유엔이 설립되고 실제로 유럽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수차례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군사적인 개입을 하는 등 지구촌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평화와 공존의 지구촌은 유럽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만적이지만, 적어도 유럽 안에서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소방관들이 파괴된 차량 앞을 걷고 있다. 2022.11.23 ⓒ AP=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83년 뒤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같은 유럽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 세계에서 많은 시민이 전쟁 반대를 외쳤다. 한국에서도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주말에 도심에서 평화행진을 했다.

전쟁으로 삶터가 파괴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모금에 동참하는 사람,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홀로 묵묵히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사람,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염원하며 거리에서 날마다 작은 음악회를 연 사람들도 있었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전쟁 반대와 평화를 위한 마음과 노력이 무색하게도 전쟁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았다. 푸틴은 승리를 장담했지만, 21세기 여러 전쟁이 그러하듯 이 전쟁 또한 어느 나라도 승자일 수 없는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전쟁으로 죽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7200여 명에 달하고, 미국과 영국 국방부의 통계를 참고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는 최대 32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쟁에서 이기는 쪽이든 지는 쪽이든 막대한 인명 손실로 결코 어느 쪽도 승리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인데, 심지어 전쟁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평화를 위한 중재에 나서야 하는 국제사회는 도리어 전쟁을 틈타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만 따지거나 전쟁의 추이를 살피며 자국의 정치적 득실에 유리하게 전쟁을 활용했다. 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틈타 군비를 증강했고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군비는 최초로 2조 달러(약 2500조 원)를 돌파했다.

무기를 사는 국가들이 있다면 무기를 파는 기업과 국가도 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에 124억 달러의 무기 수출 계약을 맺는 등 2022년 무기 수출 170억 달러를 '달성'했다.

전 세계의 군사적 긴장도는 높아지고 전쟁터에서 죽고 다치는 사람은 늘어만 가는데, 군수산업체들만 신나게 돈벌이를 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핵무기 사용까지 언급하는 푸틴을 보면서는 분노가 일고, 평화협상은 결코 없다고 외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절규를 듣고 있자면 한편으로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과연 이 전쟁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 우리가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자괴감만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 세력이 무서워하는 것

아무리 열심히 전쟁 반대를 외쳐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절망, 자괴감을 가장 반기는 이들은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이다. 거대한 전쟁에 맞선 시민들의 반전 운동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민들의 반대만큼 국가가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없다.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이고, 정부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데, 시민들이 반대한다면 그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을 것만 같은 독재자 히틀러도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고 탄압했던 노동계급이 전쟁을 반대할까 봐 기업의 법인세를 인상했고, 나치 독일과 맞섰던 영국의 처칠 또한 노동계급의 전쟁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의 보수적인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복지 공약을 대대적으로 약속했다.

권력자들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시민들이 전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푸틴이 동원령을 발표한 이후 많은 러시아 청년들이 러시아를 탈출하거나 동원령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런 소식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권력자들은 때때로 시민들의 반전 여론을 은폐하거나 막을 수 없다면 자신들은 반전 여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허풍을 떨기도 한다. 반전 운동이 거셌던 베트남 전쟁 시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그 어떤 반전 운동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퇴임 후 쓴 <회고록>에서 반전 운동의 위세 때문에 확전할 수 없었다고 시인했다.

히틀러도, 처칠도, 푸틴도, 리처드 닉슨도 결국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시민들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전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혹은 더 나아가 전쟁에 동참하지 않거나 협조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나 군인들도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푸틴처럼 전쟁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탄압이 거세도 모든 반전 운동을 막을 수는 없다.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해 왔다.
 

국정연설에서 제스처 취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정연설을 하면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서방이고, 이를 억제하려 한 것은 우리였다"고 주장했다. 2023.2.21 ⓒ 모스크바 AP=연합뉴스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특별히 정치적으로 각성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평화활동가가 된다. 인류 최악의 비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내전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을 평화활동가로 각성시켰다. 이 연재의 9화 사망자가 쌓여갔다 이미 죽음조차도 지겹다(https://omn.kr/222mt)에서 소개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주인공들은 내전 피해자들을 구하고 돌보며 일상을 꾸려간다. 연루된 모두에게 극단적인 상황을 강요하는 전쟁터에서는 일상을 꾸려가는 일조차 전쟁에 대한 저항이 된다.

아사드 독재정권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도시 다라야(Daraya)에서는 정부군에 포위되어 폭격을 받으며 고립된 시민들이 저항을 이어간다. 이들은 정부군에도 과격파 반군에도 휘둘리지 않고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해 노력한다. 다라야의 시민 중 일부가 고립된 폐허 속에서 책을 꺼내 폭격이 한창인 다라야의 어느 건물 지하에 도서관을 만들고, 책을 함께 읽으며 저항을 이어갔던 감동적이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는 반전 운동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되짚고, 다시 똑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쓰는 것도 전쟁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과거에 저지른 전쟁 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한국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 이루어지는 전쟁에 대한 저항이다.

비록 전쟁 중이긴 했지만 한국전쟁 당시 심각한 폭격 피해를 입은 북한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알렸던 국제여성연맹의 활동 역시 과거에 일어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바로잡는 저항에 속한다.

전쟁이 일어난 뒤 혹은 전쟁 중에 펼치는 저항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쩌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평화 활동이 중요하다. 전쟁이 이미 일어나 버린 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평화운동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더 활발해야 한다.

돈벌이를 위해 전쟁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군수산업체들의 정체를 폭로하거나 이들이 자유롭게 무기를 사고팔지 못하게 막는 평화행동, 핵무기나 확산탄 혹은 지뢰처럼 특별히 더 문제가 큰 무기들의 사용을 금지하는 각종 국제 조약을 조직하는 활동, 각국의 군사비를 감시하고 꾸준히 늘어나는 군사비를 줄이도록 요구하는 활동들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저항이다.
 

24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서 경찰이 동원령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2022.9.24 ⓒ 연합뉴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나하나 보자면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인다. 당장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만 보더라도 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반전 집회에 참여하고 강제 동원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도, 각국의 러시아 대사관 근처에서 전쟁 반대 시위가 열려도,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모든 사회 운동이 그렇듯 반전 운동도 한 번의 그럴듯한 이벤트로 뚝딱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전쟁은 어제까지 격렬하게 싸우다가 하루아침에 뚝딱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처럼 조금씩 전쟁의 강도를 줄이고, 전쟁이 중단되는 날을 하루씩 앞당기는 것이 전쟁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다. 다양한 저항이 쌓여간다면, 반전 운동의 영향력은 더 세지고 그만큼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힘은 약해진다.

전쟁꾼들의 힘을 더 약하게 만들고 싶다면 좀 더 직접적인 저항을 하는 이들을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쟁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러시아를 떠난 이들 중 일부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 한국 정부는 난민 심사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병역거부자 난민을 적극 환영한다면 더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러시아를 떠날 것이고 푸틴은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을 지속할 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러시아 난민을 지원하는 활동 하나만으로 전쟁이 끝날 리는 만무하지만 이런 저항 활동이 쌓여가는 만큼 전쟁의 끝이 앞당겨질 것이다.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고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지속'이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떤 변화도 지속적인 노력이 없다면 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우리가 노력하면 평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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