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6 06:49최종 업데이트 23.02.1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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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구역이 탑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면서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나라 안팎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즐거움을 빼앗겨 우울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모처럼 떠나는 해외여행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여행사고, 여행사에는 어떤 책임과 의무가 따를까.

30대 여성인 A씨는 모처럼 휴가를 얻어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그는 B여행사와 항공, 숙박, 현지 일정을 포함한 3박 5일 패키지여행 계약을 맺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A씨가 가장 기대했던 스노클링 체험에서 사달이 났다. 현지 가이드로부터 안전수칙을 들은 직후 A씨는 입수하기 위해 철제계단을 내려가다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A씨는 순간적으로 계단 옆 난간의 구조물을 잡다가 엄지손가락이 끼이면서 골절 사고를 당했다.

A씨는 현지에서 응급치료 후 국내에서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완치가 불가능해 엄지손가락에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A씨는 치료비 등 배상을 청구했으나 B여행사는 책임이 없다며 발뺌했다.

"여행사는 고객에 대해 '안전배려의무' 있다"

패키지여행(기획여행)에서 여행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여행사가 여행 관련 용역을 제공하기로 하고, 고객이 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면 여행계약이 맺어진다. 쉽게 말해 특정 여행사의 패키지상품 신청서에 사인을 하거나 인터넷으로 예약 버튼을 클릭하면 계약이 성사된다. 여행 계약을 체결하면 여행전문가 위치에 있는 여행사엔 여러 책임이 따른다.

법원은 일반론으로 "여행사는 여행자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합리적 조치를 취할 '신의성실의 원칙'('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의 대원칙)상 고객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면서 이런 의무를 어기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설명한다.

"기획여행업자는 여행 일반은 물론 목적지의 자연적·사회적 조건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로서 우월적 지위에서 행선지나 여행시설 이용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반면, 여행자는 안정성을 신뢰하고 기획여행업자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여행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기획여행업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

판례에 따르면, 여행사가 안전 배려를 위해 할 일은 다음과 같다.

1. 여행자의 생명·신체·재산 등의 안전을 위해 여행목적지·여행일정·여행서비스기관의 선택 등을 미리 충분히 조사·검토하여 전문업자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2. 그에 따라 여행 전 또는 그 이후라도 여행자가 부딪칠지 모르는 위험을 예견할 수 있을 경우 여행자에게 알려 스스로 그 위험을 수용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3. 여행 도중 위험 발생의 우려가 있을 때는 미리 위험을 제거할 수단을 마련하는 등 합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A씨의 사고는 어땠을까. 여행사가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당시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A씨가 스노클링 체험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신체조건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여행사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A씨도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점을 감안, 여행사에 절반의 책임만을 인정했다.

베트남 패키지여행에선 스노클링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70대 고령인 C씨는 사전교육도 없이 스노클링 체험을 하다가 수심이 사람 키를 넘고 물살의 속도가 빠른 바닷물에 휩쓸렸다. 물속에서 겨우 바위 위에 몸을 걸친 C씨를 본 가족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가이드는 보지 못했다. 현장에는 안전요원도 없어서 주변 사람들이 구조했으나 C씨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여행사는 위험한 일정이 있으면 특히 노약자나 지병이 있는 사람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위험성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법원은 사전교육도, 안전요원도, 구호 조치도 없었던 무책임한 여행사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언어 소통이 잘 안되는 외국에서 낯선 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때 현지 가이드의 주의의무는 클 수밖에 없다. 법원은 현지 가이드가 위험성을 여행자에게 설명하고, 운전사에게는 주의를 기울이도록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본다. 현지 여행사나 가이드의 잘못도 결과적으로 여행사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자유시간'에는 여행자가 안전사고 신경 써야
 

해변. 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러나 기획여행이라도 공식 일정이 아닌 자유시간에 발생한 사고는 조금 다르다. 이때는 여행자 스스로 좀 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D씨와 E씨는 동호회 회원들과 베트남 패키지여행을 가게 되었다. 주된 일정은 현지 인솔자 F씨가 함께했다. 뜻하지 않은 비극이 발생한 건 저녁 식사를 마친 심야 자유시간 때였다.

일행들은 D씨와 E씨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F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F씨는 숙소 인근 해변에서 밤늦게 물놀이를 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선 "위험하니 빨리 나오라"고 경고했다. F씨의 만류에도 계속 물놀이를 하던 두 사람은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다.

이때도 여행사의 책임이 인정될까. 하급심(1심과 2심)은 "그렇다"고 했다.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여행업자는 여행객들에게 위험한 장소에 접근하지 말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예방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F씨 등 가이드들이 현지 바다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위험한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도 현장을 이탈하였다. 이러한 여행사 측의 과실이 사고 발생의 한 원인이 되었으므로 여행사도 일부 책임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안전배려의무 위반이 인정되려면 ① 사고와 기획여행업자의 여행계약상 채무이행 사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성이 있고, ② 사고 위험이 여행과 관련 없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③ 여행업자가 사고 발생을 예견했거나 할 수 있었음에도 위험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여행사나 가이드는 어디까지 조치를 취해야 할까. "여행 일정에서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추상적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일 필요는 없고, 개별적·구체적 상황에서 여행자의 생명·신체·재산 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필요한 조치면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야간 자유시간에 물놀이를 하는 여행자에게 가이드가 "위험하니 중단하라"는 경고를 했다면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 본 것이다. 야간 해변 물놀이가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D씨 등은 물놀이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성년자라는 사실도 감안했다. 결국, 이 사고에서 '여행사의 책임은 없다'는 판결이 확정했다.

패키지여행 대신 개별적으로 예약대행업체를 통해 현지 투어 프로그램만 예약하는 사람도 있다. 그 후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현지에서 사고가 난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때는 예약 업체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업체가 약관 등을 통해 단순 대행 서비스임을 명시하고 예약만을 대행해주었다면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

여행계약 해제, 언제든 가능하나 손해배상해야

정리하자면, 여행사는 기본적으로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에 여행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여행에 하자가 있는 경우(숙박, 식사, 관광내용, 일정 등이 여행일정표와 불일치하는 경우) 여행자는 하자시정·대금감액을 요청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 여행자가 계약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자유일정 중에 발생한 사고나 ▲ 여행사 등이 예약만을 대행해준 현지 프로그램 참가 중 발생한 사고는 여행자가 직접 책임을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로, 해외여행에는 특약이 없는 이상 '민법', '여행 표준약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적용된다. 여행자는 여행 시작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여행사에 발생한 손해는 배상해야 한다(여행 당일 통보 시 통상 국내는 30%, 해외는 50% 배상).

그러나 부득이한 사유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경우는 면책된다. 부득이한 사유란 ▲ 안전을 위해 쌍방이 합의한 경우 ▲ 천재지변, 정부의 명령 등으로 여행이 어려운 경우 ▲ 여행자의 3촌 이내 친족 사망 ▲ 여행자 본인의 신체 이상 ▲ 배우자·부모·자식이 신체 이상으로 3일 이상 입원해 여행 출발 시까지 퇴원이 곤란한 경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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