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필용 만년필을 가져가 손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던 섬마을인생학교 프로그램
김덕래
60여 명의 도초고 학생들과 함께한 수학여행은 또 어땠고요. 한번 시작한 강연은 다음, 또 그다음 강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디지털 시대와 맞지 않을 것만 같은 만년필이란 도구가, '노모포비아('No Mobile Phone Phobia'의 줄임말, 휴대폰 중독현상)'를 이겨내는 수단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묘한 쾌감이 들기도 합니다. 만년필 수리가 업이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만년필을 늘 만나게 됩니다. 몸은 한 평 공간 작업실에 있지만, 마음은 만년필이란 매개체를 통해 늘 세계여행 중입니다.
출간 이후, 일상이 더 드라마틱해졌습니다. 유수 일간지에 서평이 실린 것을 시작으로, 지상파 아침뉴스에 제 책과 작업실이 소개되더니, 몇몇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와 놀랐어요. 기업체 사외보 제작팀에서 칼럼 요청이 들어오고, 이른 봄 북토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부모 독서학교 연수 강사 제의도 있어 시간을 더 잘게 쪼개어 쓰는 요즘입니다.
'지인이 권해줘 당신 책을 봤다'는 사람. '날로 첨단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아직도 만년필 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고, 또 그걸 고치는 당신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게 참 흥미롭다'는 이야기. 제가 작업실에서 펜을 매만지고 그걸 글로 풀어내는 일상을 영상에 담고, 세계 각국의 유명 제조사들을 직접 찾아가 실제 만년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탐방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자는 감독님도 있어 설레는 나날입니다.
그렇다보니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예정대로 진행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이맘때쯤 만년필과 관련된 영상물 한 편이 만들어질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거짓말 같은 일들이 생겨날지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것 뿐이에요.
작은 일은 귀한 일의 시작점... 보다 많은 시민이 기자 되는 세상을 꿈꾸며
▲안방 드레스룸을 활용한 한 평짜리 작업실, 나만의 퀘렌시아
김덕래
시간 그 자체가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입니다. 시간을 들인 만큼의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가치 없는 행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이 아날로그인데, 오직 빠름 그 자체가 정답일 수는 없겠지요.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으니, 둘의 장점만을 취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그 둘을 융화시키는 도구 중 하나로 만년필이 쓰일 수 있다는 건, 참 짜릿한 즐거움입니다.
작은 일은 하찮은 일의 전부가 아니라 귀한 일의 시작점이며, 공을 들이면 빛이 나기 마련이고, 그 빛이 점점 커지면 나를 감싸는 보호막이 된다는 말을 과거에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참이었습니다. 3년 전 오마이뉴스에 두어 장 내외의 짧은 글 한 편을 써보냈던 것이, 마치 눈송이가 구르고 굴러 큼지막한 눈덩이가 된 것처럼 커졌습니다.
고장난 만년필 손보는 일을 하다 보니 남들이 '펜닥터'라 부릅니다만, 저는 만년필 수리공이란 말이 더 정겹습니다. 어쩐지 아날로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아, 나름의 소명감이 들기도 합니다. 긴 호흡으로, 내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일에 정진하려 합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글 써보낸 3년 전의 나를 칭찬합니다. 또 내민 손잡아 주는 걸 넘어, 힘있게 끌어당겨준 그때의 오마이뉴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격려와 응원만큼 사람을 기운 나게 하는 영약이 또 있으려고요. 이왕 길 위에 올라선 셈이니, 기세 좋게 뻗은 펜촉처럼 앞으로 나아가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가 23주년을 넘어 50주년 100주년에 다다르기까지, 보다 많은 시민들이 기자가 되는 세상을 같이 꿈꿔봅니다.
▲힘있게 뻗은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4 M촉
김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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