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2023.1.18
연합뉴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정책 공론장에서 공급부족론의 영향은 광범위했고 위력은 강력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 견해가 진실인 양 보도하는 언론사들이 태반이었으며,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도 대부분 이에 토대를 두고 시장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정부 인사들까지 공급부족론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토건 국가다. 전체 산업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크고, '토건족'이 경제 정책과 부동산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까지 토건족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때는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을,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 때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며 이익을 챙겨왔다.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도 외형상 주택가격 안정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토건족의 이해를 챙기는 성격이 강했다.
주택 공급확대 정책은 시장 조절용 정책으로는 부적합하다. 가격 폭등기에는 새로운 투기를 촉발해 가격 폭등을 자극하고, 가격 하락기에는 가격 폭락을 가속화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경기불안정화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정책을 부동산 시장 안정화의 수단으로 삼고 대대적으로 추진했으니 보통 잘못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분양주택 공급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 자체가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분양주택 공급은 민간 건설업체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매매되는 상품의 공급량 결정에 정부가 일상적으로 개입하다니 말이 되는가. 시장의 기능을 추앙하는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주택 공급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주기를 기대한다. 철학과 정책 대안의 부조화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다.
물론 정부가 공급 측면에서 관여해야 할 일도 있다. 바로 저소득층과 청년층에게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들의 능력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렴한 주택의 공급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면서 공급하는 공공주택에는 공공임대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 두 가지 유형이 있다(토지임대부 주택이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면서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을 가리킨다). 공공임대주택은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어느 정도 공급이 증가했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은 전혀 공급되지 않았다.
임기 말까지 문 정부의 관심은 민간분양주택 공급을 장려하고 공공분양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데 있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최후의 주택 공급 대책으로 불리는 2.4대책(2021년)에는 수도권에서 층수 제한 완화와 용적률 상향으로 공중 공간을 확보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총 공급물량의 70~80%는 공공분양 주택으로 잡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재인 정부 주택 공급 정책에서 드러난 수도권 중심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2.4대책의 주택 공급 목표는 2025년까지 전국에서 총 83.6만 호를 공급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가운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61.6만 호(74%)를 차지했다.
투기 열풍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불었으니 주택 공급도 그 지역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두지 않은 큰 실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지역균형 발전 정책이 등한시되고 있다는 소문이 항간에 파다했는데, 주택 공급 정책을 보면 그 소문이 진실에 가까웠다고 판단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이 또다시 오를 기미가 보인다면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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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대 정부 최고의 집값 폭등과 최다의 풍선 효과를 기록했다는 이유를 들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규정하면, 그건 결과론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과잉을 이유로 어떤 정책을 펼쳤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라고 애써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와 실행에 관여한 인사들은 대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보았듯이, 그런 이유로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옹호하기에는 정책 내용에 치명적인 결함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 특히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표 정책을 뒤집는 것에 반발하기에 앞서 먼저, 문재인표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이 일을 정성껏 해서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장차 진보개혁 세력이 다시 집권할 때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오류를 그대로 반복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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