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1 11:14최종 업데이트 23.02.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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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고분과 나무. ⓒ 성낙선


경주는 자전거로 여행하기 알맞은 곳이다. 가볼만한 여행지들이 많은데다, 그 여행지들이 대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첨성대를 중심에 놓고 봤을 때 대릉원, 황룡사지 등 주요 여행지가 모두 직선거리로 1km 이내에 있다. 자동차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가깝고, 걸어서 다니기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는, 그런 거리다.

첨성대에서 황룡사지까지 이동하는 데 실제로는 2km 거리 이내를 가야 한다. 자동차를 타거나 걸어서 가거나 마찬가지다. 그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자동차로 7분가량 걸린다. 그 거리를 걸어서 이동할 경우에는 30분가량 걸린다. 그렇다면 자전거로 움직일 때는 어떻게 될까? 자전거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8분이다.
 

황룡사지 내 금당지. 뒤로 황룡사지 역사문화관 건물이 보인다. ⓒ 성낙선

 
물론, 경주 도심에서 벗어나 보문관광단지나 남산을 다녀올 경우에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다. 자전거로 첨성대에서 남산 삼릉등산로 입구까지 20분가량, 보문관광단지까지는 30분가량 걸린다. 차로 이동할 경우, 두 지역 모두 10분가량 걸리는 걸로 나온다.

한겨울에 자전거를 타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찬바람을 맞아가며 페달을 돌리다 보면, 가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굳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데는 자동차로는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접근하기 힘든 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경주 공영자전거, 타실라. ⓒ 성낙선


서울에는 따릉이, 경주에는 타실라

자전거여행을 하려면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 경주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가면 좋겠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이용할 수 있는 게 '공영자전거'다. 서울에 '따릉이'가 있다면, 경주에는 '타실라'가 있다. 타실라는 경주시에서 운영하는 공영자전거로, 따릉이 못지않게 이용이 간편하다. 앱만 깔면 경주 시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타실라는 '타다'와 '신라'를 조합해 만든 용어다.

경주시가 타실라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2022년 7월부터다. 운영 초기, 잦은 시스템 오류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성 아닌 원성을 샀다. 타실라를 이용하려면, 먼저 타실라 앱을 깔아야 하는데 그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 타실라 앱을 업데이트 하면서, 그런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경주,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 ⓒ 성낙선

 
실제로 타실라앱은 별 문제 없이 잘 작동했다. 이번에 타실라를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 잘 모를 수도 있다. 따릉이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몇 가지 면에서는 따릉이보다 우수한 점도 있다. 따릉이의 경우 안장 높이를 조절하는 데 한계가 있고, 기어 변속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해 타실라는 최대 안장 높이가 따릉이보다 훨씬 높다. 키가 큰 사람들도 무난히 탈 수 있다. 기어 변속도 가능해 언덕을 오르는 게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이제 타실라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남은 문제는 자전거도로에 있다. 자전거도로를 인도에서 분리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우선 인도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경주 도심에는 자전거전용도로가 따로 없다. 인도가 대부분 자전거도로 겸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편치 않다. 마음도 불편하고 몸도 불편하다. 인도를 지나다니는 자전거가 늘면 주위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다. 인도에 깔린 일부 보도블록이 오래돼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대릉원, 산수유 열매. ⓒ 성낙선

 
대릉원 일대를 여행할 때 안성맞춤

타실라는 도심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 대여소를 주로 버스터미널과 대릉원 일대, 그리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주택가에 설치했다. 대여소를 지정하면서 시민들의 이동 편의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여소 근처에서 버스 정류장이 멀지 않다. 자전거를 타다가 좀 더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할 때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할 수도 있다.

대여소를 주로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곳에 만들어 놓다 보니, 보문단지나 남산 쪽에는 대여소를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반납하려면 대여소가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보문단지나 남산 쪽에 오래 머물러야 할 경우 자전거를 반납하기 어렵다. 보문단지나 남산 쪽에도 대여소가 있으면, 타실라를 이용하는 게 좀 더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문관광단지 표지석 앞으로 자전거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 성낙선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선택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들이 있다. 타이어와 브레이크 점검은 필수다. 타이어는 공기압이 적당한지, 브레이크는 제동이 잘 되고 있는지 꼭 살펴봐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개중에 미처 정비가 안 된 자전거가 있을 수 있다. 타실라는 헬멧도 제공한다. 헬멧 유무도 살펴야 한다.

타실라는 앱을 업데이트하면서 2월 말까지 자전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 기간에 경주에 가면, 타실라를 별도의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앱에서 먼저 이용권을 구입한 다음에 타실라를 이용해야 한다. 가격이 따릉이보다는 싸다. 대릉원 일대를 주로 오갈 계획이라면 한 번쯤 꼭 이용해 볼 만하다.

대릉원 일원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황리단길을 비롯해 대릉원, 첨성대, 황룡사지, 분황사, 동궁과 월지, 오릉, 월정교, 국립경주박물관 등의 유적지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데 반나절이면 족하다. 해가 진 뒤에는 첨성대, 대릉원, 동궁과 월지, 월정교 등을 다시 가봐야 한다. 이곳의 야경을 놓치면 나중에 후회한다.
 

첨성대, 밤 풍경. ⓒ 성낙선

 
타실라를 타면서 새로 발견한 풍경들

이번에 타실라를 타고 경주를 여행하면서, 경주를 새롭게 보게 됐다. 노서리-노동리 고분군과 쪽샘지구 고분군에서 신라 고분의 또 다른 면을 봤다. 대릉원 고분군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이들 고분군은 일단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고분군이 동네 공원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런 친근감은 대릉원에서 보기 힘들다.

대릉원에서는 수시로 관람객들에게 엄숙함을 유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방송이 나온다. 대릉원에 있다가 이쪽 고분군으로 넘어오면, 마치 정장을 입고 있다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낮에 노서리 고분군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구성진 옛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동리 고분군에서는 거대한 느티나무 몇 그루가 봉분 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풍경을 보았다. 대릉원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노동리 고분군, 봉황대, ⓒ 성낙선

 
타실라를 타고 분황사를 찾아가는 길에 까마귀 떼가 황룡사지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광경이 장관이다. 나중에 쪽샘지구 고분군을 지나가는 길에 다시 이들 까마귀 떼와 마주친다. 이쯤 되면, 까마귀를 길조로 받아들여야 할지 흉조로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린다.

도심 여행을 마치고 보문관광단지를 향해 가는 길에 '북천'의 존재를 새로 알게 됐다. 북천 천변에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 이 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꽤 아름답다. 북천은 경주 동쪽 함월산에서 발원해 보문호를 지나 형산강으로 흘러든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유적지가 아닌 하천 위주로 여행을 해 볼 생각이다.

타실라를 타면서 경주가 예전보다 더 번잡해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관광객이 늘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주 도심은 유적지가 아닌 곳이 없다. 도로를 늘리고 넓히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전거가 그런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경주에서 타실라가 더욱 더 유용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쪽샘지구 고분군, 나무 위에 내려앉은 까마귀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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