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서 경찰이 동원령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은 예상했던 것보다 전쟁이 길어지자 애초에 러시아 국민들에게 공언한 바와 달리 2022년 9월 21일 예비군 동원령을 내려 30만 명을 추가로 징집했다. 군 징집은 특히 소수민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집중되었다. 현재 인천공항에 체류 중인 러시아인들 또한 정교회 신자, 이슬람교 신자,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 출신, 몽골 민족 출신들로 이를 반증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과 전쟁에 동원되기를 원하지 않는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동원령에 거세게 저항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동원령이 발표된 9월 21일에는 38개 지역에서 최소 1300명이 체포되었고, 24일 벌어진 시위에서는 32개 지역에서 724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징집대상이 아닌 러시아인들도 동원령을 비판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상징적인 액션을 하면서 구속되거나 구금되고 있다.
직접적으로 동원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징집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는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이들과 이들이 안전하게 러시아를 탈출하도록 돕는 이들도 있다.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단체 '보이스인코리아(Voices in Korea)'와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의 한국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라에 따르면 푸틴이 동원령을 발표한 뒤 몇 분 만에 이스탄불(튀르키예)과 예레반(아르메니아)으로 가는 기차표가 매진되고 몽골, 핀란드, 조지아와 러시아 국경에서 엄청난 교통체증이 나타났다고 한다.
실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러시아를 탈출했는지 정확하게 추산하긴 어렵지만 동원령이 발표되고 2주 동안 최소 38만 8000여 명이 러시아를 떠났다고 알렉산드라는 전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반전활동가들과 함께 러시아 정부의 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층들을 대피시키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평화활동가들이 징집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하는 남성들을 돕는 까닭은, 그것이 명백하게 전쟁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고 전쟁을 멈추기 위한 직접행동이기 때문이다. 푸틴은 동원령이 성공적이며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국내외에 알리고 싶어 한다. 전쟁은 한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지지 없이는 지속하기 힘들다.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동원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하는 것은 푸틴의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일이다.
길어지는 전쟁에 군인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한다면 전쟁 승리는 요원하고, 그 이전에 러시아 내에서 전쟁 반대 여론이 높아진다면 전쟁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전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하고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행동뿐만 아니라,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지 않는 것-전쟁을 지지하지 않거나, 징집을 피해 도망가거나, 병역거부자를 돕는 모든 행동은 푸틴이 두려워하는 일들이고 정부가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병역거부는 전쟁에 대한 역사적 전통이 있는 저항 방식이다. 19세기까지는 소수의 종교인들이 종교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했다면,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을 멈추기 위한 평화운동가들의 병역거부가 이어졌다. 병역거부는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고,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저항)할 수 있는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저항이었다.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기꺼이 잡혀가거나 재판을 받으면서 싸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징집을 피해서 혹은 전투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거나 난민이 되는 병역거부자들도 많았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탈영한 병역거부자들이 5만 명에 달했고 이들 중 일부는 난민이 되어 캐나다나 북유럽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징병이 실시된 1944년 이후 징집을 피해 도망친 조선인들과 1944년 이전 강제동원을 피해 도망 다닌 조선인들도 모두 전쟁에 저항하는 병역거부자들이다.
독립운동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거나 전쟁터에 나가 죽고 죽이는 일이 무서워서 도망 다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전시 상황에서 이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정부를 방해하는 평화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난민 심사 기회조차 박탈한 법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