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8 08:59최종 업데이트 22.12.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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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격리기간에 맞은 크리스마스 성탄 이브를 격리중 조용히 보냈다 ⓒ 최수경


지난 26일 자정에 코로나 격리가  끝났다. 7일 가운데 사흘을 끙끙 앓으며 이불 속에서 보냈고, 머리에 새집을 지은 채 회복기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언제 아팠나 싶을 만큼 용모를 가다듬고 어수선해진 집안을 치우며 보냈다. 마지막 날에는 산보 나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는데도 참았다. 흔히들 코로나 격리기간에 푹 쉬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상 온 정신으로 푹 쉴 수 있는 시간은 이틀이었다.

코로나는 사람을 가려서 오나? 왜 이제야 내게 왔을까? 그간에 밥 같이 먹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전해와도, 나는 이상할 정도로 비껴갔다. 그러다 막상 연말이 되어서야 찾아온 코로나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몸이 바쁠 때 코로나에 걸렸다면 일의 연속성 상 주변에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코로나도 긴장으로 똘똘 뭉친 나를 비집고 들어올 틈을 못 찾았나 보다. 그러다 한 해 농사 끝내고 발 뻗을 만하니 기다렸다는 듯 틈을 알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농한기 새끼 꼬면서 함께 지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러나 성탄 선물은 고약했다. 몸에 들어온 손님은 엄청 날뛰었다. 그중에서 인후염이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 목이 까칠할 때는 목감기인 줄 알았다. 그러다 점차 심해지며 목과 코가 찢어지듯 아팠다. 열이 펄펄 나고 근육통에 온몸이 시큰거렸다.

두통에 설사까지 코로나가 갖고 있는 장기자랑은 다 하고 갔다. 처방에는 콧물과 가래를 말리는 알레르기약이 들어 약에 취해 잠만 잤다. 통증을 잊자면 차라리 잠자는 것이 나았다. 약 먹기 위해 밥을 먹고 밥 먹으면 그냥 곯아떨어졌다.
 

코로나 확진 후 처방 약 요즘 코로나 증세는 인후염 통증이 심하다. 조제약은 매우 졸려서 격리기간 동안 잠을 많이 잤다 ⓒ 최수경


여전히 예측 불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을 때 했던 걱정 중에 가장 큰 것은 사실 건강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를 둘러싼 사회적 고리에서 내가 빠졌을 때 오는 영향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다.

막상 코로나에 걸리니, 코로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12월 말이라 행사, 모임, 약속이 줄줄이 있었지만, 통첩으로 단칼에 정리해 주었다. 불가피한 사정이라도 일정을 번복하는 행위 자체는 신뢰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일이었다. 때문에 모임의 성격에 따라 간 보며 처세하는 사회적 동물이어야 했다. 

그런데 막상 코로나에 걸리니, 코로나 확진 문서는 원망 살 일도 미안할 일도 없는 현대인의 신무기 같았다. 코로나라는 병은 아파도 병문안을 안 가고 안 받아도 되는 실용적 병이었다. '격리 기간 동안 푹 쉬세요!'는 바로 사회관계로부터 쉬라는 뜻이었다.

여전히 코로나는 예측 불가다. 최초 접촉이 예상되는 모임 이후 최종 확진 받기 전까지 마주했던 부모님, 지인들, 집에 온 손님 모두 매일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무증상이었고 코로나로부터 안전했다.

일반적으로 증상이 경미하거나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봐서, 코로나는 체질과 면역력, 감염 시의 정도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변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의 경우는 한해 지칠 시간 없이 달려왔고 연말에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는데, 어떤 경우의 수로 자신에게 들어올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1월로 돌아가 보았다. 당시 확진자가 나오면 건물을 폐쇄하고 확진자를 음압병동에 가두었다. 접촉자 역학조사로 확진자가 다녀간 동선은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확인이 필수였다. 지금이야 확진자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지만, 당시에는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끌려가는 자신을 죄수처럼 느꼈다고 했다.

격리 후에도 확진자라는 낙인효과로 인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항공기로 귀국한 단체 여행객의 격리용 생활치료시설을 반대하며 충북 모 지역 주민들은 강경한 시위 투쟁을 했다. 집단 감염을 막고자 개인의 인권 원칙에 위배된 코호트 격리도 국가 방역 차원에서 당연시했다. 

위드코로나 시대
            

소규모 인원의 거리두기 생태여행 코로나가 어느 정도 완화된 시점 실외 마스크 권장인데도 참가자들은 의무와도 같이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 최수경


역사적으로 감염병은 시대전환을 이루었다. 14세기 흑사병 이후 종교개혁과 르네상스가 있었고, 15세기 천연두 이후 인구감소로 인해 초원지대가 회복되었다. 19세기 초 콜레라는 도시의 상하수도와 위생시설 등 인프라의 중요성과 의료 전문화를 이뤘고,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은 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가져왔다.
      
코로나19는 마스크 사려고 약국 앞에 선 줄, 1m 거리두기, 비대면, 배달 음식, 캠핑 급증, 시골 노인정 등의 사회복지시설 휴관 등 다양한 풍속도를 만들어냈다. 포스트 코로나는 지구촌과 세계화, 스마트 정부, 언텍트 문화, 산업과 기술의 전환, 교육과 에너지, 안보관리, 위기 속에 협력이 필요한 새로운 공동체 등 전환이 일어났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생활과 경제 활동 제약에 국민 불안과 피로도는 증가했고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를 향한 조치로 법정 감염병 1급에서 2급으로 낮추고,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와 격리기간 단축 등 방역지침 완화를 논하고 있다. 방역지침 완화는 곧 국민 스스로가 자율성을 관리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코로나 방역의 특성상 여전히 사생활의 침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자율성 제한의 고리에 묶인 채, 자율성 허용이라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안정적인 균형점을 찾아 위드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숙제는 시민의 몫이 되었다.

정부와 국가 중심의 K-방역 외에도 민간 등 다양한 주체가 중심이 되어 위기 속에서 협력을 이루어낸 새로운 공동체들이 K-방역에 일조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있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었다. 자영업자의 희생 등 시민의 자율적 대응 역량이 모아졌다.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 작용을 통해 조정과 협상 그리고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재난에 대응하는 네트워크를 학습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인류가 그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모든 분야에서 앞으로의 미래는 보다 빨리 변화될 것이다. 위드코로나 시대,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인내와 헌신에 기댈 수 없다.

정부는 각각의 주체들이 각자의 역할과 역량을 다 할 수 있도록 정책 수단을 내야 한다. 국민은 위기 속에서 협력을 이루어낸 공동체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타자에 대한 배려, 협동과 참여, 스스로 높은 수준의 윤리적 삶이 요구된다.

자율적인 격리 기간에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의 선행과 타인의 배려가 더욱 소중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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