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스틸컷. 길어 늘어선 참호 안에서 끝이 없는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17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나이트>와 같은 걸출한 영화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게르크> 또한 전투를 충실히 재현한 전쟁 영화로 2차 세계대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도버해협 건너편인 프랑스 덩게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 명의 영국군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내용이 영화의 줄거리다. 지상의 독일 육군과 바다의 어뢰도 만만치 않았지만 후퇴 작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독일군의 전투기였다.
1차 세계대전의 상징이 참호전이었다면 2차 세계대전의 상징은 전투기 폭격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비행기는 있었지만 대량 살상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전투기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역할을 수행한다. 전차군단으로 유명한 나치의 군대도 지상에서 전차부대가 진격하기 전에 전투기가 먼저 해당 지역을 폭격했다.
<덩게르크>에서도 철수 작전을 방해하는 독일군 전투기와 영국군을 싣고 탈출하는 배들을 항공 엄호하는 영국군 전투기가 전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전투기 폭격은 일종의 심리전이기도 했다. 나치 독일이 항복 선언을 하기 14주 전 연합군은 작센 왕국의 수도였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을 폭격해 도시를 초토화한다. 이 폭격으로 수만 명이 죽었다.
이처럼 전투기 폭격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더불어 압도적인 소음과 폭음, 파괴력과 살상력으로 상대편에게 공포를 심어주어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덩게르크>의 주인공 토미(핀 화이트헤드)가 철수 작전이 진행되는 잔교에 다다랐을 때, 모여있는 영국군을 향해 독일군 폭격기가 날아들자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병사들이 혼비백산 우왕좌왕하며 흩어지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장면은 폭격이 주는 공포감을 잘 보여준다.

▲<덩게르크> 스틸컷. 철수 작전에서 독일군, 영국군 모두에게 전투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덩게르크
우리는 전쟁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전투만을 떠올리지만 어쩌면 전투는 전쟁의 표피일 뿐이다. 전투 바깥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기획하고 진두 지휘하는 이들 또한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바이스>는 전투 바깥의 전쟁 모습을 빼어나게 묘사한다. <1917>과 <덩게르크>가 특정한 전쟁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라면 <바이스>는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라는 인물의 전기 영화다. 하지만 딕 체니의 독특한 이력이 이 영화를 전쟁 영화로 불러도 손색없게 만든다.
딕 체니는 걸프전 당시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었고 그 이후에는 석유회사인 핼리버튼의 경영자로 자리를 옮겼다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하며 부통령이 되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전쟁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매파였다. 이라크 전쟁은 딕 체니와 그가 경영자로 재직했던 핼리버튼에 막대한 이윤을 안긴다. 핼리버튼은 이라크 전쟁 직후 110억 달러 규모의 재건 사업을 미국 정부로부터 따낸다. 그리고 핼리버튼은 퇴임 이후 딕 체니에게 해마다 15만 달러를 지급한다.
<바이스>는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전투 바깥에서 보여준다. <1917>과 <덩게르크>의 전쟁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영토 확장 쟁탈전이었다. 이후 이어진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이념 전쟁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21세기 벽두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은 앞으로 일어날 전쟁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전쟁이었다. 영화 <바이스>는 그 죽음의 돈잔치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 딕 체니를 통해 21세기 전쟁의 모습을 파해친다.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콘텐츠판다
전쟁터에서 전쟁에 저항하는 이들: <사마에게>
위의 영화들이 충실하게 전쟁을 재현하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를 제공한다면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는 날것의 전쟁을 보여주면서 더 노골적으로 전쟁을 비판하는 영화다.
정의감과 행동력으로 똘똘 뭉친 대학생 와드가 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선 싸움을 기록해 나간다. 민주화 운동 이후 기나긴 내전에 돌입한 시리아, 날마다 폭격과 교전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제2 도시 알레포에서 와드는 함자와 함께 병원을 세우고 사람들을 치료하며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기록해 나간다.
정부군이 알레포를 포위하고 압박해 올 때 와드와 함자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버티며 전쟁에 맞선다. 그러던 와중에 와드와 함자는 사랑에 빠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터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이름 '사마'는 와드와 함자의 딸이다.
이 다큐 영화는 감독인 와드가 딸 사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단순히 전쟁을 기록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알레포에서 일어난 일을 세계에 알리고,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해 함께 싸워달라는 호소를 건네는 정치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전쟁터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이 가지는 힘에 더해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전쟁에 저항한 이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직접 담겨 있어서 묵직한 감동까지 준다.
▲영화 <사마에게> 스틸컷. 영화의 주인공인 함자와 와드,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사마.
사마에게
<사마에게>는 제작자의 정치적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이 글에서 소개한 나머지 영화들은 딱히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전쟁의 다양한 현실을 잘 묘사한 이 영화들을 보고 나면 누구나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전쟁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한 영화의 힘이기도 하지만 전쟁 자체가 가지는 폭력성 때문이기도 하다. 잘 만든 전쟁영화는 모두 반전(反戰) 영화가 되는 역설의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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