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 되면 '항해사 또르따'가 우리 마을을 찾아와 과달루페 성모를 모신 성당 바로 앞에 가판을 세운다. 찾는 사람들이 많이 번호표를 배부하는데 워낙 속도가 느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또르따를 기다리며 맥주를 사다 미리 마시기도 하고 미사를 보고 나오기도 한다. 또르따를 기다리다 그 곳에서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을 만나 수다 삼매경에 들기도 한다. 그러니 또르따가 아무리 늦게 나온들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
림수진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은 "항해사 또르따가 무사히 오고 있겠지?"라고 서로 묻는다. 이는 12월 1일부터 12일 사이 열 이틀 간 성대하게 치러지는 잔치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 아니다.
기왕 우리 마을 잔치달력을 보면 상반기는 부활절 축제 말고 이렇다 할 잔치가 없지만 하반기로 들어오면 잔치의 연속이다. 9월로 들어서면 16일 독립기념일 파티를 준비하며 흥을 돋우고 10월이 되면 마을 수호 성인 라파엘 축일을 기념하는 잔치로 마을이 들썩거린다. 축일은 하루지만(10월 24일), 잔치는 장장 보름간 평일 주말 상관없이 계속된다. 물론, 그 보름 동안 사람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놀고먹는다. 그리고 11월이 다가오면서 '죽은자의 날'을 위해 여러 날 전부터 집집마다 조상께 올리는 제단을 차리고 꽃을 장식하며 잔치를 준비한다. 그렇게 11월 죽은 자의 날 잔치가 끝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12월 마을을 찾아오는 '항해서 또르따'를 기다리며 맘을 설렌다.
성모 마리아 과달루페
1년 축제 중 가장 성대한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다시 또 축제라니, 묻힐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꼬박 12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가 되면 마을 전체가 엄청난 축포 세례를 받는다. 깜깜한 새벽, 다디단 새벽잠을 깨웠다고 툴툴거리는 이는 나 뿐, 마을 사람들에겐 이 또한 축제의 단 맛이다. 12일 동안 낮과 저녁으로 특별미사가 봉헌된다. 미사가 진행되는 과달루페 성당에 하루 종일 사람들이 몰리고 그 곳 바로 앞에 '항해사 또르따' 부스가 세워진다. 물론 그 옆에 온 세상을 다 돌아 결국 종착역에 이른 듯 삐거덕 삐거덕 노쇠한 몸을 굴려가며 아슬아슬 가까스로 굴러가는 놀이기구들도 등장한다. 놀이기구에 오르는 이도, 놀이기구도 한 판 비명을 질러야 뭐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