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0 13:34최종 업데이트 22.12.2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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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어느 늦은 오후 이웃 형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림, 날 저물기 전에 다 같이 모여서 또르따(Torta, 멕시코식 햄버거)를 먹기로 했어, 그러니 저녁 6시까지 아랫마을 과달루페 성당 앞으로 내려와!"


마침 그 날 오후 3시를 넘겨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답신을 문자로 보냈다. '나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에 다시 온 답신은 의외로 간결했고 뜬금이 없었다.

"좋아, 좋아. 그럼 됐어. 잠시 후에 과달루페(Guadalupe) 성당 앞에서 만나."

뭐가 좋다는 것인지, 뭐가 됐다는 것인지 감을 잡기는 어려웠지만 잠시 후 성당 앞에서 만나자는 말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아, 내가 오후 여섯 시까지 아랫마을 과달루페 성당 앞으로 나가야 하는 일만은 분명했다.
 
멕시코식 햄버거 혹은 샌드위치라 할 수 있는 또르따Torta.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에 따라 여러 종류의 또르따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토마토, 아보카도, 양파, 할라피뇨 고추, 실처럼 늘어지는 치즈 등이 기본으로 들어가고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찢어 넣거나 얇게 저민 돼지고기나 닭고기 혹은 소고기를 튀겨 넣기도 한다. 미국식 햄버거에 비해 채소가 많이 들어가고 고기 종류도 패티 대신 다양하며 주문과 동시에 딱딱한 빵을 화덕이나 철판에 다시 구워 쓰기 때문에 겉은 바삭거리는 반면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위키커먼스(Jose Nicdao)
 

문자와 함께 시작된 빅 이벤트

오후 6시, 어스름하게 해는 지고 있었다. 마을 형님들은 이미 성당 앞 또르따를 파는 간이 부스 앞에 모여 있었다. 한 형님의 손에 번호표가 들려 있었다. 작년 12월의 이 즈음도 그랬고 재작년 12월의 이 즈음도 그랬다. 매년 12월 이 즈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12월 1일부터 12일까지, 마을의 가장 성대한 잔치를 맞아 우리 마을을 찾아오는 유명한 또르따를 맛보겠다고 이미 십 수 명이 번호표를 받아 들고 줄을 선 상태였다. 형님들 일행이 손에 쥔 번호표는 20번을 훌쩍 넘어서는데 이제야 5번 또르따가 나오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기다림에 지쳐 미리 맥주를 사다 마시는가 하면 번호표를 들고 집으로 가 영화 한 편 보고 오겠다고 총총총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어제 밤 11시쯤 왔다가 당일 또르따가 완판 되어버리는 바람에 오늘 다시 와서 줄을 선다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내가 보기엔 우리 마을에서 1년 365일 상시 판매하는 또르따와 크게 맛이 다를 것이 없는데, 사람들은 12월만 되면 굳이 우리 마을을 방문하는 이 '항해사 또르따' 가판 앞에 번호표를 들고 긴 줄을 선다(또르따 가게 상호 명이 항해사다).
 
매년 12월이 되면 '항해사 또르따'가 우리 마을을 찾아와 과달루페 성모를 모신 성당 바로 앞에 가판을 세운다. 찾는 사람들이 많이 번호표를 배부하는데 워낙 속도가 느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또르따를 기다리며 맥주를 사다 미리 마시기도 하고 미사를 보고 나오기도 한다. 또르따를 기다리다 그 곳에서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을 만나 수다 삼매경에 들기도 한다. 그러니 또르따가 아무리 늦게 나온들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 림수진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은 "항해사 또르따가 무사히 오고 있겠지?"라고 서로 묻는다. 이는 12월 1일부터 12일 사이 열 이틀 간 성대하게 치러지는 잔치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 아니다.

기왕 우리 마을 잔치달력을 보면 상반기는 부활절 축제 말고 이렇다 할 잔치가 없지만 하반기로 들어오면 잔치의 연속이다. 9월로 들어서면 16일 독립기념일 파티를 준비하며 흥을 돋우고 10월이 되면 마을 수호 성인 라파엘 축일을 기념하는 잔치로 마을이 들썩거린다. 축일은 하루지만(10월 24일), 잔치는 장장 보름간 평일 주말 상관없이 계속된다. 물론, 그 보름 동안 사람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놀고먹는다. 그리고 11월이 다가오면서 '죽은자의 날'을 위해 여러 날 전부터 집집마다 조상께 올리는 제단을 차리고 꽃을 장식하며 잔치를 준비한다. 그렇게 11월 죽은 자의 날 잔치가 끝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12월 마을을 찾아오는 '항해서 또르따'를 기다리며 맘을 설렌다.

성모 마리아 과달루페

1년 축제 중 가장 성대한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다시 또 축제라니, 묻힐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꼬박 12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가 되면 마을 전체가 엄청난 축포 세례를 받는다. 깜깜한 새벽, 다디단 새벽잠을 깨웠다고 툴툴거리는 이는 나 뿐, 마을 사람들에겐 이 또한 축제의 단 맛이다. 12일 동안 낮과 저녁으로 특별미사가 봉헌된다. 미사가 진행되는 과달루페 성당에 하루 종일 사람들이 몰리고 그 곳 바로 앞에 '항해사 또르따' 부스가 세워진다. 물론 그 옆에 온 세상을 다 돌아 결국 종착역에 이른 듯 삐거덕 삐거덕 노쇠한 몸을 굴려가며 아슬아슬 가까스로 굴러가는 놀이기구들도 등장한다. 놀이기구에 오르는 이도, 놀이기구도 한 판 비명을 질러야 뭐든 돌아간다.
 
일명, '롯데리아(복권)' 혹은 '돈 놓고 돈 먹기'. 12월 매일 밤 "날이면 날마다 오는 판이 아닙니다~~"라는 전세계 놀음판의 공통 멘트로 판이 시작된다. 판돈은 우리 돈으로 약 200원 정도. 남녀노소 구분 없이 200원을 내면 저 판 어디쯤 한 군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이 12개의 서로 다른 그림이 그려진 판을 하나씩 나눠주고 무작위로 그림을 호명하는데, 각자 서로 다른 그림 조합을 가진 참가자들 중 가장 먼저 12개 그림이 호명되는 자에게 상품들이 돌아간다. 역시 돈 놓고 돈 먹기 판에 훈수가 빠질 수 없으니 게임 참가자들보다 훈수자들 숫자가 더 많다. 상품은 싸구려 플라스틱 바가지부터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초상화까지 다양하다. 이 게임 역시 과달루페 성모 성당 바로 앞에서 행해지는데 올 해 이 게임을 통해 걷힌 돈으로 성당 과달루페 성모의 옷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해 줄 수 있었다. 림수진
 
이 즈음은 마을 사람들은 축제의 주인공을 기리는 옷으로 갖춰 입는다. 매일 밤낮으로 성당에 모이는 사람들 옷에 성상이 크게 수놓아져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과달루페 성모다. 12월 12일, 과달루페 성모 발현 축일을 위해 장장 12일 간 마을이 들썩거리는 잔치가 이어지는 것이다.
 
12월이 되면 미사에 참여하는 아이들에게도 과달루페 성모 발현 축일을 위해 옷을 만들어 준다. 림수진
 
과달루페 성모 성화. 멕시코 가톨릭의 경우 유럽으로부터 전파되었지만 황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의 과달루페 성모 발현을 통해 많은 부분이 토속화되었다. 메스티조, 혼혈인종으로 구성된 멕시코이기에 국가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정하기가 결코 쉬울 수 없는데 과달루페 성모 신앙이야 말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멕시코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벼리로 작용해왔다. 멕시코 사람들은 어머니 신앙의 토대를 과달루페 성모로부터 찾는다. 퍼블릭도메인
 
황갈색 얼굴과 검은색 머리, 전형적인 멕시코 원주민 형상을 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이름은 과달루페다. 언어학자들이 분석하여 '검은 강' 혹은 '늑대의 강'에서 이름의 어원을 찾기도 하지만 발현 신화에서 그녀가 분명히 멕시코 원주민 언어인 나후아틀어로 말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유럽으로부터 온 성모가 아니라 멕시코 아즈텍 문명에서 발현한 토속 성모임이 분명하다.

말 그대로 멕시코의 성모이자 이들의 어머니 격이다. 정복자 스페인으로부터 건너온 허여멀건 성모와는 차원이 다르다. 온전히 이들 편에 선다. 1810년 300년 넘게 멕시코를 통치해 온 스페인에 대항하여 독립을 취할 때도 과달루페 성모 깃발이 가장 앞에 섰다. 가톨릭 신앙을 전해준 나라 스페인에 맞서는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 후 혁명의 와중에도 여전히 과달루페 성모가 그려진 성모기가 모든 군기에 앞서 진행하며 민초들의 수호신이 되어 주었다.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내치기도 애매한 애증의 나라 스페인으로부터 건너온 가톨릭 신앙에 토대를 두지만, 이들의 공경과 존경은 오직 멕시코 이들의 땅에서 이들의 모습으로 발현한 과달루페 성모에게 집중된다.

1531년 멕시코시티 인근 테페약(오늘날 과달루페 성모 성당이 자리한 곳)에서 발현한 이후 500년 가까이 멕시코 가톨릭 신앙의 근간이 되었으니 남자와 여자 이름이 철저하게 구분이 되는 나라임에도 유일하게 '과달루페'라는 이름은 남녀 모두에게 사용된다. 본명은 남녀 모두 과달루페지만, 애칭으로 남자의 경우는 루뻬(Lupe) 혹은 루삐또(Lupito), 여자의 경우는 루삐따(Lupita). 멕시코를 여행하다 보면 숱하게 만나게 되는 이들의 이름이다.
 
1531년 테페약Tepeyac 언덕에서 발현된 과달루페 성모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성당. Insigne y Nacional Basilica de Santa Maria de Guadalupe. 본 건물 측면으로 1531년부터 1709년에 걸쳐 지어진 성당 건물이 있는데, 지반 침하로 기울어지면서 1976년에 본 건물이 건축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가톨릭 성전으로 최대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통상 12월 1일부터 12일 사이 약 1500만 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이 성당을 방문한다. 퍼블릭도메인
   
멕시코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모든 나라의 가톨릭 전례력에 12월 12일은 과달루페 성모 발현 축일로 기념되지만, 멕시코에서의 성모 과달루페에 대한 사랑과 공경은 지극하다. 12월 1일, 공식적으로 '축일 주간'이 시작되고 크고 작은 마을에 있는 과달루페 성모를 모신 성전이 온갖 꽃들로 치장된다.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성모가 발현되었던 바로 그 장소, 테페약(Tepeyac) 언덕에 지어진 과달루페 성모 성당을 향한 순례가 시작된다. 많은 이들이 편의를 위해 대형 전세버스를 이용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이들은 몇 날에 걸쳐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성지를 향한 순례를 시작한다.

이들 대부분은 성당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과달루페 성모의 초상이 걸린 성당 안까지 무릎걸음으로 마음의 염원을 담아 다가선다. 히말라야의 오체투지를 볼 때마다 멕시코인들의 과달루페 성모를 향해가는 슬행(膝行)이 겹친다.

과달루페 성모 발현 축일을 위한 축제의 절정은 12월 11일 늦은 밤, 12월 12일 0시에 가까운 즈음이다. 멕시코 사람들의 마음을 다한 사랑과 공경의 대상인 과달루페 성모에게 멕시코 버전의 생일 축하 노래인 '마냐니따(Las mañanita, Early Good Mornimg)' 노래를 봉헌한다. 발현 축일을 성대한 생일 축하잔치로 치러주는 것이다. 멕시코 민중 음악의 전형인 마리아치(악단)가 빠질 수 없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12월 12일 0시가 가까워질 무렵 과달루페 성모를 모신 성당에 사람들과 마리아치가 모여 진심으로 그들의 성모 생일을 축하한다.
 
멕시코 순례자들이 과달루페 성모 성당 밖에서 노숙하고 있다. 연합뉴스/AP
 
12월의 이벤트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 날인 12일이 되면 통상 마을 형님들로부터 다시 한 번 문자가 온다.

"림, 오늘 항해사 또르따를 못 먹으면 내년 12월까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니, 해 지거든 과달루페 성당 앞으로 돈 챙겨서 내려와."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부러 찾아가서 적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 먹을 만한 맛이 아닌데 마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항해사 또르따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동지 팥죽을 먹고 새해 떡국을 먹어야 무사히 한 살을 먹는다고 생각해 온 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12월 과달루페 성모 축일 즈음에는 반드시 항해사 또르따를 먹어줘야 하는 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의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리 없는 나만 항해사 또르따 가판대 앞에 줄을 선 채 구시렁댄다.

12월 12일 마을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모인 과달루페 성모 축일 마지막 미사가 끝나자 작은 성당 앞에 진 쳤던 '항해사 또르따' 가판도 사라지고 삐거덕거리며 가까스로 돌고 돌던 놀이기구들도 사라졌다. 과달루페 성전 보수를 위해 밤이면 밤마다 성전 바로 앞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벌어지던 다소 성스러운 '돈 놓고 돈 먹기 판'도 자리를 걷었다.

겨우 하루, 혹은 이틀 정도 새벽녘 고요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전부터 어마 무시한 폭죽들이 단잠을 깨운다. 공식적으로 12월 15일부터 성탄 축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탄절 축제가 끝나고 나면, 바로 송년과 신년 축제가 시작된다.

12월은 한 달 내내 축제다. 어지간한 체력이 아니고는 마을에서 12월을 살아내기가 버겁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축적되어왔을 마을의 축제력을 겨우겨우 쫓아가면서 가끔 나는 매우 소심하게 묻고 싶다.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는 것인지, 이렇게 살아도 망하지 않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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