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렝케를라의 다양한 맥주들
윤한샘
슈렝케를라는 슈페지알과 함께 전 세계 유이하게 라우흐비어(Rauchbier)를 이어가고 있는 양조장이다. 라우흐비어란 훈연 향이 나는 독일 전통 맥주를 뜻한다. 여기서 나오는 훈연 향은 맥아 때문이다. 맥아는 보리에 싹을 틔운 후 건조한 것으로 발효에 필요한 당을 제공하는 필수 재료다. 오랫동안 인류는 맥아를 얻기 위해 나무를 태워 보리를 건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맥아는 나무의 연기를 입었고 훈연 향을 머금었다. 더구나 나무는 열을 조절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대부분 맥아는 어두운 색을 띨 수밖에 없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이 방법은 17세기 대전환을 맞는다. 1635년 영국인 니콜라스 할스가 석탄을 열원으로 사용하는 맥아 가마를 발명한 것이다. 석탄은 온도를 조절하기 용이했고 특별한 향도 만들지 않았다. 게다가 비용도 절약되었다. 이후 맥주는 더 이상 스모키 한 향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색도 밝아졌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양조 기술이 새로운 단계로 진보한 것이다. 전 세계 99%의 맥주가 이런 혁신에 동참하며 현대적인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런 환경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한 양조장이 있었으니, 바로 슈렝케를라다.
슈렝케를라 라벨에는 1405년을 출발점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사실 본격적인 역사는 1767년 양조장을 인수한 볼프강 헬러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양조장 이름을 헬러 브루어리로 변경하고 양질의 맥주를 생산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했다. 법적으로 등록된 양조장의 이름이 헬러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슈렝케를라라는 비공식적인 명칭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877년 안드레아스 그레이저가 양조장을 인수하고 난 뒤다.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는 걸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고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슈렝케른, 밤베르크 사투리로 절뚝거리는 사람으로 불렀다. 양조장 또한 슈렝케를라라는 별칭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라벨 한쪽에 있는 빨간색 인장 속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스 그레이저다.
안드레아스는 충분히 현대적인 방법으로 맥주를 만들 수 있었지만 나무를 태워 맥아를 만드는 전통을 고수했고 현재까지 6대째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맥아 회사 바이어만이 바로 코 앞에 있음에도 여전히 직접 맥아를 생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통이 그들의 정체성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알 수 있다.
한스와 슈렝케를라 입구에서 마신 맥주는 슈렝케를라 메르첸이었다. 윗비어, 복비어, 도펠복 등 다양한 서브 카테고리를 자랑하는 슈렝케를라 맥주 중 메르첸은 가장 클래식한 스타일이다. 메르첸은 5~5.5%의 알코올과 앰버색을 가진 라거 맥주다. 섬세한 캬라멜 향과 부드러운 바디감이 이 스타일의 매력이다. 슈렝케를라 메르첸은 훈연 맥아로 만든 메르첸으로 짙은 훈연 향 속에 숨어있는 메르첸 고유의 특징을 품고 있다.
▲슈렝케를라 메르첸
윤한샘
일반적인 메르첸에 비해 조금 더 어두운 마호가니 색을 띠고 있지만 빛이 투과될 정도로 투명하다. 맥주를 코에 대자 훈연 향이 물씬 올라온다. 슈렝케를라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은 맥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낯선 향에 움찔할 수도 있다. 살짝 꼬릿한 향도 잠시, 부드럽게 넘어가는 맥주 뒤로 섬세한 캬라멜 향과 검은 과실의 힌트가 비강을 물들인다. 꿀꺽꿀꺽 들이키기는 어렵지만 참을 인자 세 개만 마음에 새기면 서서히 이 맥주의 향미에 익숙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하기 힘들면 음식이 천군만마가 될 수 있다.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고 구운 고기, 말린 육포는 훌륭한 파트너다. 구운 아몬드와 치즈도 빠질 수 없다. 굽고 볶는 데서 나오는 향미를 가진 음식은 슈렝케를라 메르첸을 친숙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 이 맥주가 가진 마력이기도 하다.
'전통을 유지한다는 것은 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슈렝케를라에는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맥주에 없는 어색한 훈연 향에도 꾸준히 슈렝케를라를 찾는 건 이 불씨의 정체를 이해하고 공유하고픈 무언가에 이끌렸기 때문 아닐까? 수천 년 간 맥주를 마셔왔던 인류의 DNA에 새겨진 흔적을 찾고자 하는 본능일 수도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 또 아는가. 23세기 맥주는 모두 훈연 향을 갖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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