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권우성
천공이 대통령 관저 선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아직' 사실이 아니다. 진실도 아니다. 현 단계에서는 그저 의혹일 뿐이다. 다만 근거가 없는 의혹은 아니기에 언제든 사실로 바뀌거나 진실로 직행할 가능성이 있다.
의혹의 출발점은 대통령 관저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뀐 사실이다. 3월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집무실은 용산 국방부 청사로, 관저는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으로 옮긴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 육참총장 공관이 낡아서 물이 샌다는 둥 석연찮은 이유로 관저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 김건희 여사가 비밀리에 현장을 답사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의혹을 키웠다.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려면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관문은 천공 관련 군 내부 보고의 실체다. 관저로 지정된 육참총장 공관과 육군 서울사무소에 천공이 윤 당선인 쪽 고위관계자와 함께 나타났다는 내용이 군 고위관계자에게 보고됐다는 의혹이다. 두 번째 관문은 현장 확인이다. 보고내용대로 천공이 실제로 현장을 답사해 관저 선정에 영향을 끼쳤는지다. 그게 그 얘기 같지만 엄밀하게 보면 차이가 있다.
두 관문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각자 독립된 영역이기도 하다. 즉 첫 번째 의혹이 사실이라고 해도, 두 번째 의혹이 자동으로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지만, 추론은 추론일 뿐이다. 진실에 가까울지는 몰라도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시점에서 군 내부 보고 의혹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의혹의 진위는 당장 판별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통령실에서 강력히 부인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한 마당이라 진실 공방이 불가피하다.
첫 번째 의혹과 관련해서는 신분이 확실한 증언자 A씨가 있다. A씨는 당시 천공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군 고위관계자 B씨와 직무상 밀접한 관계였다. 증언 내용은 구체적이다. B씨로부터 '천공 보고'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는 일시와 장소도 선명하다. 증언과 관련된 '간접증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B씨가 한때 가까웠던 A씨의 증언을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나는 이 문제로 B씨와 몇 차례 통화했는데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거나 "모르는 일"이라고 비켜 갔다. 최근에는 좀 더 논쟁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는 내게 "소설 쓰지 말고 그만하라"고 했다. 내가 "OO님(B씨)에게 직접 그 얘기를 들은 사람(A씨)을 유령 취급하려는 거냐"고 따지자 더는 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고 두 번째 관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건 아니다. 천공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다는 것과 실제로 천공이 나타났다는 것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 조직의 특성상 확인되지 않은 엉터리 보고가 지휘부에 올라갈 개연성은 작다는 점에서 두 가지 의혹은 거의 한 몸으로 보인다.
그렇긴 해도 증언,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전문(傳聞) 증거이기에 증거력 면에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어떤 사정에서든 발설자가 이를 시인하지 않는다면 섣불리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보고가 이뤄졌다면 보고자가 있게 마련이다. 보고자와 목격자가 일치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나는 군 주변을 수소문해 보고자로 추정되거나 보고내용을 알 만한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다. 현역 신분임을 감안해 별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A씨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이 육군본부의 입장문이다. 대통령실의 고발 조치가 이뤄진 날 당사자도 아닌 육군본부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거짓주장으로 군에 대한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해당 부사관과 군의 명예를 실추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입장문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천공과 함께 현장에 나타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정부 고위관계자에게는 오래전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사실이 아닌 내용이 보도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했기에 그의 답변과 상관없이 보도를 유예하고 보완취재를 계속했다.
논란의 주인공인 천공은 거듭된 질문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용산에 있는 정법시대 사무실 직원과 통화하고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낸 다음 수신을 확인한 것이 몇 달 전 일이다. 답은 오지 않았다. 천공 측 내부사정을 잘 알 만한 사람한테 '천공 답사'와 관련된 얘기를 들었으나 역시 전언이라 내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후 어떤 일을 계기로 천공 측 고위관계자와 연결된 후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다시 보냈다. 법무팀장은 몇 차례 "스승님을 직접 만나 질의서를 건네고 답변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최근까지 대화의 끈이 이어졌는데,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정보공개 거부한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