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2 11:51최종 업데이트 22.12.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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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사망하면 '순직(殉職)'이라 표현한다. 사전의 의미도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음'이다.

군은 꽤 오래전부터 복무 중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군인도 심사를 통해 순직자로 인정하고 있다. 구타,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가 원인이 되거나 극단적 선택의 동기가 군의 과실이나 직무 수행의 문제와 연관된 경우가 그러하다.


여기에 더해 2022년부터는 의무복무 기간 중에 사망한 간부, 병사는 예외 상황 몇 가지를 제외하곤 모두 순직자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징집된 군인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군인사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순직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경우란 범죄를 저지르다 사망한 경우, 휴가 중 단순 교통사고 등 군 복무와 관계없는 개인적 사유로 사망한 경우 등만 해당한다.

느닷없이 '순직 비해당' 결정

그런데 지난 1일 육군은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순직 심사에서 순직 비해당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월 23일 육군에 의해 강제로 전역당한 변 하사는 쫓겨나지 않고 계속 복무하였다면 하사 의무복무 기간에 해당하였을 2021년 2월 27일에 사망했다. 하지만 사망 이후 법원이 육군의 강제 전역이 위법하다며 취소시켰기 때문에 변 하사는 군인 신분으로 사망한 것이 되었다. 그에 따라 뒤늦게 순직 심사가 진행된 것이다.

강제 전역이 취소된 뒤에도 변희수 하사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은 어느 하나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대전지방법원은 2021년 10월 7일 트랜스젠더 여성인 변 하사를 남성으로 취급하여 음경 및 고환 상실의 심신장애 사유를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며 강제 전역을 취소시켰다. 트랜스젠더를 군에서 쫓아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육군으로 인해 변 하사는 1년이나 마음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도 육군은 일말의 반성 없이 소송 과정에서 고인 모욕에 가까운 변론을 펼쳤다. 다행스럽게도 패소 후에 항소하지는 않아 2021년 10월 27일 판결이 확정됐다.

그런데 육군참모총장은 이틀 뒤인 10월 29일 변 하사의 유가족에게 공문서를 하나 보낸다. 제목은 '전역명령 발령을 위한 역종 파악'. 유가족에게 변 하사를 예비역과 퇴역 중 어느 형태로 전역시킬 것인지 결정해달라는 문서였다. 남군은 만기 전역하면 예비역이 되지만 여군은 예비역과 퇴역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유가족은 의아해했다. 법원이 강제 전역을 취소시켰는데, 왜 또 전역 명령을 발령하겠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변 하사가 사망한 이후 경찰이 확정한 사망일은 2021년 2월 27일이었다. 법원에 의해 취소된 강제 전역은 효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서류상 변 하사는 군인 신분으로 복무 중에 사망한 것이 된다.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당연히 예비역이나 퇴역 군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육군은 전역명령 발령하겠다며 이러한 문서를 보낸 것이다.

답은 육군이 보낸 문서의 한구석에 있었다. 육군은 변 하사의 사망일을 2021년 3월 3일로 명시해두었다. 3월 3일은 변 하사가 사망한 채로 경찰에 의해 발견된 날이다. 법적 사망일인 2월 27일이 아닌, 발견일을 사망일로 보겠다는 억지를 쓴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변 하사가 2월 28일 의무복무기간이 만료된 후에 민간인 신분으로 사망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순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신 2월 28일  자 의무복무 만료 시 예비역과 퇴역 중 어떤 형태로 전역한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를 황당하게 여긴 유가족은 육군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21년 12월 13일 자로 변희수 사망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2022년 4월 25일, 위원회는 육군의 주장과 달리 변 하사의 사망일은 2021년 2월 27일이라고 못 박고 순직 심사 절차를 개시할 것을 권고했다. 

동시에 변 하사의 사망과 위법한 강제 전역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인정됨으로 변 하사의 사망은 '직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순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점도 권고했다.

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과 변희수 하사 주치의들의 소견, 진단, 주변인들의 진술을 다양하게 청취했다. 변 하사가 강제 전역 직후 상당한 괴로움과 절망을 호소했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이었다.
  
성전환 수술 후 강제전역 조치 된 변희수 전 육군 하사(전차조종수)가 생전인 2020년 8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권우성
 
다행히 육군은 순직 심사를 개시하기로 했다. 다만 사망일을 마음대로 바꿔 행정 처리를 감행하려던 데에 대해 유가족에게 사과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육군은 강제 전역이 위법한 처분이라는 법원 판결 이후에도 유가족에게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없다.

이후로 유가족은 순직 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대통령 소속 기구인 위원회의 권고도 있었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순직 권고를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발언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순직 비해당 결정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대법원 역시 과거 판례를 통해 개인의 성격이나 특성이 자살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군에서 발생한 위법 행위나 망자가 겪은 피해 등에 비추어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어(대법원 2020. 2. 13. 선고 2017두47885 사건), 여러모로 보나 순직 결정은 예상된 결론이었다.

그런데 육군이 느닷없이 순직 비해당 결정을 한 것이다. 육군본부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순직 심사 결정문에 따르면 육군은 변 하사가 '군 복무와 관계없는 개인적 사유로 사망'했다고 보았다.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무와의 인과관계'란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것뿐 아니라 사망의 원인에 국가나 군의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군은 변 하사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을 한 것이다.

법이고 규정이고 나 몰라라

사람의 일을 예단할 수 없지만 변 하사가 '위법한 강제 전역'이란 고초를 겪지 않았다면, 그래도 지금 우리 곁에 없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군은 변 하사의 죽음에 명백한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이를 부인하는 것은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위법까지 하며 사람을 쫓아내고, 순직 심사를 안 하려고 죽은 날짜까지 바꿔치기하고, 이제는 위법 행위의 책임마저 부정한다. 법이고 규정이고 살필 것 없이 일단 살아서도 죽어서도 군의 일원으로 받아줄 수 없다는 비겁한 태도다.

변 하사가 트랜스젠더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대우를 받았을까. 국가의 위법 행위로 고통받다 목숨을 끊은 공무원의 죽음이 순직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순직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육군의 순직 비해당 결정은 명백한 차별이다.

위법한 강제 전역부터 순직 비해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은 변 하사에게 자행했던 차별의 폭력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한결같이 변 하사를 군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일에만 총력을 기울인다.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나라를 지키는 일에 힘을 더하고 싶다던 군인, 변희수를 이다지도 괴롭혀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체 그녀가 우리 군에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가? 유가족과 지원단체들은 육군의 순직 비해당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전망이다. 대체 우리 군의 비겁함이 어디까지, 얼마나 더 막장으로 치닫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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