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1 19:53최종 업데이트 23.02.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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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파란색 선이 인천 서해갑문 가는 길, 왼쪽 분홍색 선이 평화누리 자전거길. ⓒ 성낙선


이제는 날씨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싶다. 한동안 날이 푸근하더니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몸이 움츠러들게 만든다. '도로 결빙이 우려'되니 '외출 시 미끄럼 사고에 유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연이어 날아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년에 비해 따듯한 날씨 때문에 봄꽃들이 이른 개화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철없는' 봄꽃 위로 눈이 내렸단다.

이게 다 무슨 조홧속인지 모르겠다. 지구온난화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설명이 되지 않는 날씨라고 할 수밖에. 날씨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게 봄꽃뿐 만은 아니다. 자전거여행도 봄꽃만큼이나 큰 영향을 받는다. 급격한 날씨 변화는 적응하기 힘들다. 봄꽃이 지금 꼭 꽃을 피워야 하나 마나 하며 아리송해 할 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이때 그래도 자전거를 타야 하나 마나 하며 갈등을 겪는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도로 상태는 극과 극을 달린다. '도로 결빙이 우려되니, 외출 시 유의하라'는 경고성 문구는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자전거를 탈 때도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는 말 중에 하나다. 경고를 무시한 채 아무런 대비 없이 외출을 하다가는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최저기온이 영하 7도로 떨어지던 날, 일기예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날씨가 나쁜 편은 아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 시간대에는 기온이 다시 영상으로 올라간다. 바람도 그다지 세게 불지 않는다. 이 정도면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 별 지장이 없어 보인다. 해가 뜨고, 기온이 좀 더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집을 나선다. 날이 춥긴 춥다. 하지만 벌벌 떨 수준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몸이 금방 더워진다. 추위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전류리포구 가는 길 표지판. 경인항 부근. ⓒ 성낙선

 
전체 길이 무려 218km ... 평화누리 자전거길

여행은 방화대교 남단에서 시작한다. 가는 길에 판개목쉼터를 지나간다. 판개목쉼터는 지난 가을 아라뱃길 자전거도로를 따라 인천 경인항까지 여행할 때 들렀던 곳이다. 그때 판개목쉼터를 떠나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자전거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걸 유심히 봐 두었다. 하나는 인천서해갑문을 향해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누리 자전거길'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전거길이 둘레길만큼이나 많은 세상이다. 둘레길이 유행을 타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둘레길이 생겨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전거길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어떤 둘레길은 이름만 둘레길이고, 실제 가 보면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자전거길도 그와 유사한 경우가 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도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앞서 그 길을 달려본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도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지 않다고 해서 꼭 좋은 자전거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일단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기대마저 접지는 않는다. 어차피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낯선 곳에서 남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을 눈여겨보는 것 아닌가?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코스가 여러 갈래다. 전체 7코스로, 크게는 한강 북쪽을 달리는 길과 한강 남쪽을 달리는 길로 나눌 수 있다. 전체 거리는 218.7km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절반에 해당하는 상당히 긴 거리다. 어떻게 이런 자전거길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 의지가 대단하다. 이런 경우, 단기간에 여행을 끝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코스별로 나눠서 여행을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코스별로, 1코스 대명항~전류리포구(47.9km), 2코스 전류리포구~행주대교 남단(21.4km), 3코스 방화대교 북단~출판도시휴게소(21.0km), 4코스 출판도시휴게소~반구정(28.0km), 5코스 반구정~연천 장남교(29.4km), 6코스 연천 장남교~군남홍수조절리(39km), 7코스 군남홍수조절지~역고두름(32km)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 내가 여행한 자전거길은 2코스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순서를 뒤바꿔 '역주행'을 하게 됐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김포구간 1,2코스 안내판. ⓒ 성낙선

 
끝없는 철조망 ... 눈 앞에서 마주하는 반쪽 평화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남북분단이 처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보면서, 평화를 기원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2코스 자전거길로 올라서고 나서 얼마 안 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풍경이 강변을 가로막고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이다. 그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날이 차서 그런지, 더욱 더 스산해 보인다. 그 철조망에 '접근금지', '사진촬영금지' 등 이러저러한 경고문들이 붙어 있어 그런 느낌이 더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자전거길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전거도로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 길은 보기 드물게 자동차와 자전거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도로다. 도로 옆에 서 있는 도로표지판에는 '자전거우선도로'라고 적혀 있다. 이 길이 그냥 무늬만 자전거우선도로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달려봐야 알 수 있다. 그나마 차량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이 자전거우선도로는 2코스 1/4 지점에 해당하는 풍곡리쉼터가 있는 곳까지 이어진다.

이 길 위에서 잠시 의문에 잠긴다. 이 길을 과연 자전거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도 말만 자전거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쳐든다. 이 길에서 그 이름처럼 평화를 누리기 쉽지 않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가서는 곧 마음을 고쳐먹는다. 공용도로이면서 자전거우선도로라고 이름을 붙인 자전거길이 어디 그리 흔한가? 세상에는 이런 이름조차 얻지 못한 길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까, 길도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다. 비로소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김포한강로 운양교 밑을 지나가는 평화누리 자전거길. ⓒ 성낙선

 
풍곡리쉼터를 지나면서부터는 사실상 자전거도로라고 해도 무방한 길이 나온다. 여전히 공용도로이기는 하지만 자동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거기에서 2코스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홍도평소초에서부터 오롯한 자전거도로가 시작된다. 그런 자전거도로 상태와 상관없이 철조망은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길게 이어진다. 그렇지만 이 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삭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철조망 너머의 세계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강물 속은 아마도 물고기를 비롯한 각종 수생 생물들의 천국일 것이다. 인간의 침탈에서 벗어나 철조망 안쪽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니, 철조망이 그렇게까지 삭막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건 여전히 반쪽 평화다. 이 길이 온전한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되려면, 철조망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야생조류 생태공원 전망대. ⓒ 성낙선

 
전류리... 과거마저 사라져 가는 쓸쓸한 포구

감암포를 지나면서 자전거도로 주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와 함께 야생조류생태공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원 너머로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한강신도시가 보인다. 다분히 도회적이다. 강변 공원마저 여느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공원과 다를 게 없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현대적인 외관의 전망대까지. 지금까지 강변 철책선을 따라 달리며 보았던 풍경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전망대는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건물 중앙에 우뚝 서 있다. 하늘 위로 높이 솟은 전망대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끈다. 주위에 다른 건물이 없어 거칠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강 철책선 근처에 이런 전망대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전망대 안에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한강을 멀리까지 바라다볼 수 있다.
 

야생조류 생태공원 전망대 내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 성낙선

 
야생조류생태공원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이 공원은 둘레만 3km가 넘는다. 면적은 약 65만㎥. 꽤 넓은 편이다. 이곳에 벚나무가 길게 늘어선 산책로를 포함해, 참나무류숲 등 다양한 나무숲이 있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다소 황량해 보이지만, 계절이 바뀌고 봄꽃이 필 무렵이면,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원 여기저기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눈에 띈다.

삼엄한 군사시설을 코앞에 두고 이런 한가로운 풍경을 목도하는 것이 다소 이질적일 수도 있는데, 의외로 잘 어울린다. 여기서는 철책마저 풍경의 일부로 녹아든다. 언젠가는 이 풍경도 과거가 될 게 분명하다. 지역에 철책을 제거하자는 여론이 비등하다. 그때는 이곳에서 철책을 바라보던 일도 옛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철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고, 눈 안에 가득 담아두고 다시 길을 떠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야생조류 생태공원. ⓒ 성낙선

 
야생조류생태공원에서 전류리포구까지 그리 멀지 않다. 전류리포구는 한강 최북단에 위치해 있으면서, 한강에 남아 있는 유일한 포구다. 아직도 20여 척의 어선이 조업을 하고 있다. 이 포구는 한강 하구에 자리를 잡고 있어, 예전에는 서해에서 마포로 가는 배들이 밀물을 기다리며 머물다 가는 기착지였다고 한다. 게다가 강 건너 파주를 오가는 사람들로 포구가 꽤 번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곳곳에 쇠락한 흔적이 역력하다. 전쟁이 한순간에 이 모든 걸 뒤바꿔 놓았다. 평화가 다시 찾아오면, 전류리에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철책선으로 가로막힌 포구에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낡은 안내판 몇 개가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여행객을 맞는다. 그 안내판들 중 한 개는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져 있다. 그 모습이 휑뎅그렁한 포구에 쓸쓸함을 더한다.

전류리포구에서 북쪽으로 평화누리 자전거길 1코스가 바로 이어진다. 1코스는 2코스에 비해 더욱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길이 물 건너 북녘땅을 내려다보는 애기봉통일전망대를 거쳐, 강화도가 지척인 바닷가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어느새 서산마루에 해가 걸려 있다.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날씨이기는 하지만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는 날이었다. 1코스는 다음을 기약한다.
 

전류리 포구. 한강에 남아 있는 유일한 포구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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