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2 20:03최종 업데이트 22.11.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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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의원들 머리카락에서 검출된 살충제에 관한 분석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 ⓒ 폴리니스


유럽의회 의원들 머리카락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가 검출되었다. 지난 10월 26일, 프랑스의 환경단체 폴리니스(POLLINIS)가 유럽의회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지난 6월, 이 단체는 인체 잔류 농약 실험에 응한 유럽의회 의원 30명과 과학자, 언론인 14명의 모발을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연구소(IRES)에 보내 분석하도록 했다. 그 결과 총 27종의 살충제들이 검출되었고 그중 20종은 이미 유럽 시장에서 퇴출된 것들이었다. 실험 대상 91%에서 1개 이상의 살충제가 발견되었고 가장 흔히 발견된 3개는 발암물질과 신경독성 등이 함유되어 1970년대에 유럽에서 사용이 금지된 것들이었다.


이런 실험은 개정을 앞둔 '유럽의 화학 물질 등록·평가·허가·제한에 관한 규제(REACH)를 둘러싸고 농화학계와 환경단체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가운데, 여론을 환기시키고 개정 논의에 참여할 유럽의회에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고자 진행되었다.  

정치인, 과학자, 언론인 등 농업과 관련 없는 도시인들의 체내에서 다양한 살충제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유럽의 환경, 공기, 음식물, 지하수, 토양 등에 이것이 편재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유럽 내에서 판매 금지된 살충제들까지 다수 검출된 사실은 수입 농산물이나 가구, 공산품들을 통해서 유입되었거나, 일부 회원국에서 금지된 화학약품들에 유예기를 두거나 예외를 적용했을 가능성, 판매가 중단된 이후에도 지하수나 토양에 잔류된 경우 등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이 결과는 현재의 통제 시스템이 살충제 축소와 생태계 보호라는 목표에 이르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대기와 토양뿐 아니라 신체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살충제는 생물다양성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건강에 직접적인 피해를 미친다. 다양한 대안적 농업 방식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시민들은 유럽연합이 보다 효과적으로 살충제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규정 강화를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유럽집행위는 올해 초 한계에 도달한 REACH의 개정 계획을 알렸다. 2030년까지 유럽 내 살충제 사용량을 50% 수준으로 축소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고 회원국들은 각국 상황에 따라 35~60% 사이의 목표치를 제시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곤충 75%가 사라졌다
 

1999~2020 살충제의 증감 유럽에서만 0.2% 축소했고, 남미(119.4%), 아프리카(67.8%) 아시아(7.7%) 등은 큰 폭 상승했다. ⓒ 유럽살충제행동네트워크

 
그러나 바이엘-몬산토를 필두로 하는 농화학업계는 "REACH의 개정은 농화학업계 관리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업계가 어려운 상황"이란 이유를 들며 개정안 채택을 미뤄줄 것을 호소했고, 유럽집행위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개정안 논의를 내년으로 미룬 상태다. 그 사이 업계와 시민단체 사이에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의 막이 올랐다.

유럽 환경단체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럽 농화학업계의 올해 매출은 안정적이거나 오히려 지난해보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유럽 시민의 목소리보다 업계의 요구에 가까이 몸을 기울여온 선출되지 않은 권력 '유럽집행위'에 있다.

이런 단단한 구조의 벽이 수많은 시민적 의지들을 번번이 좌절시켜 왔지만, 유럽 시민들은 다시 한번 의지를 모았다. 지난달 200여 유럽 환경시민단체들은 '벌과 농부를 구하자'라는 시민청원을 진행했다. 유럽연합 내 최소 7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성해 유럽집행위 검토 안건으로 채택된 바 있다.

유럽연합 역사상 7번째로 채택된 이 시민청원은 유럽집행위의 당초 계획을 훌쩍 뛰어넘어 2030년까지 화학 살충제의 80%, 2035년까지 100% '완전한' 퇴출을 요구한다. 유럽집행위는 시민단체 대표단을 맞이하여 의견을 경청해야 하며 내년 4월까지 공식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들은 청원을 통해 살충제 퇴출뿐 아니라 농경지의 생물다양성을 복원하고 농생태학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농부들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청원을 주도한 '유럽살충제행동네트워크'(PAN Europe)의 마틴 더민은 지난 10월 20일 한 언론(Novethic)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많은 농부들과 농생태학이 화학농약 없이도 세상 모두가 충분히 먹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살충제 스캔들에 관한 첫 번째 책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온 지 60년이 지났지만 살충제 사용은 줄지 않았다. 독성이 강한 일부는 금지되었지만 즉시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을 뿐. 

유럽에서는 30년 동안 곤충의 75%가 사라졌고, 토양은 황폐화되었으며, 물은 오염되었고, 식품 잔류 살충제들로 우리의 건강은 훼손되었다. 9월 말 발간된 PAN Europe 보고서는 유럽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5가지 가을 과일의 45%가 여전히 가장 위험한 살충제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이 모든 현실이 REACH의 실패를 입증하며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유럽연합 산하 유럽식약청(EFSA)이 농화학 기업들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가진 상태에서 작성된 내부 지침을 따르는 구조적 이해충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022 살충제 세계지도
 

2022 세계 살충제 지도 유럽 환경단체들이 함께 만든 세계 살충제 소비 현황 보고서 표지 ⓒ 유럽살충제행동네트워크

 
이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된 농화학업계와의 치열한 대결에 나선 유럽의 또 다른 환경단체 지구의 친구들(les Amis de la Terre Europe) 등은 유럽집행위를 압박하고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무기로 지구 전체의 살충제 현황을 보여주는 '2022 살충제 세계지도'를 지난달에 내놓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1990년 이후 지금까지 지구촌에서 사용되어 온 살충제의 총량이 80%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남미(119.4%)와 아프리카(67.8%)가 이 증가세를 주도했으며, 아시아(7.7%)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유럽은 살충제 퇴출 규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작 0.2%의 사용량을 줄였을 뿐이다.

단 4대의 기업(바이엘-몬산토, 바스프, 코르테바, 신젠타)이 세계 농화학 시장의 70%를 점유하며 매년 약 400만 톤의 살충제를 팔고 있다. 이들은 농약에 길들여진 유전자 변형(GMO) 종자 판매, 농약에 대한 농민의 의존성 강화, 독점 강화 등의 전략으로 2019년 84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기록했으며 2023년까지 1307억 유로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농업에 적극적으로 개입된 화학농약들은 농민들로 하여금 전통적 농사(순환농업, 혼합농업 등) 대신 단일작물의 농업을 적극 권장했고, 이는 토양의 황폐화와 급격한 독성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업계는 농약이 녹색혁명을 주도하며 농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처럼 선전해 왔지만, 보고서가 보여주는 데이터는 이와 반대다.

농약으로 재배되는 농경지는 유기농사를 짓는 농경지에 비해 작물의 다양성 면에서 1/5 수준밖에 미치지 못하며, 수분 매개 곤충의 다양성에선 1/20밖에 미치지 못한다. 농약은 생태계와 토양을 무너뜨리며 농업 자체를 죽음의 길로 서서히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뿌려진 독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살충제 사용이 2020년 한 해동안 초래한 세계 각국에서의 피해 사례 ⓒ 유럽살충제행동네트워크


유럽집행위가 로비에 포섭된 절망적 현실에도 지혜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타개한 경우도 있다. 덴마크 정부는 2013년부터 농약에 대한 세금을 농약의 액면가에 따라 물리지 않고 농약이 인체와 지하수, 환경에 미치는 독성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 왔다. 또한 농약을 통해 거둔 세금은 모두 농업 분야에 대한 지원으로 상환되었기에 농민 단체들의 조세 저항을 낮출 수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농민들로 하여금 점점 독성 농약을 포기하고 유기농업을 위해 마련된 지원금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면서 바람직한 결과를 거두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이 가장 큰 농약 소비국이라면, 반대로 가장 큰 폭의 농약 사용 감소를 보인 나라는 덴마크다. 이는 유럽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귀 기울여야 할 훌륭한 사례다.

유럽연합은 유럽 내에서 74개의 살충제 사용과 판매를 금지하면서도 외국에 수출하는 것은 방치해 왔다. 이 모순된 정책의 결과 상당수의 금지된 살충제가 수입된 식품을 통해 유럽의 식탁에 되돌아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해외에 판매되는 독성 화학 약품들로 아시아에서 연간 약 2억 5500만 건, 아프리카에선 1억 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살충제 세계지도'는 밝히고 있다.

이 파괴적인 살충제와 파괴를 확대하는 정책은 오직 대규모 농화학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기여하며 지구 전체를 오염시켜왔다. 하나뿐인 지구에 뿌려진 독성물질은 어디로든 흘러가 결국 우리의 삶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미셸 리바지를 비롯한 유럽의회 60명의 의원은 REACH 개정안에서 이 이중적 원칙의 폐기를 공식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18일 유럽집행위가 공개한 내년도 REACH 개정안 로드맵에 금지된 살충제의 수출 금지 항목은 빠져 있다. 그들은 또다시 지구촌 전체의 생명보다 업계의 이해를 우선하는 선택을 했다.

유럽 시민들은 자신들이 서명한 청원을 유럽집행위가 받아들이도록 또다시 싸움에 나설 것이다. 지구의 또 다른 나라들 역시 유럽이 팔아넘길 맹독성 살충제가 우리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함께 싸워야 할 것이다. 지구에 뿌려진 독은 어디로든 흘러가 결국 우리 모두의 생명을 갉아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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