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8 05:09최종 업데이트 22.11.1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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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왕은 없습니다! 그리고 신은 죽었습니다!"

1905년 1월 22일 제정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인권탄압을 호소하기 위해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가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 게오르기 가폰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 대열은 비폭력적이었고 평화로웠다. 행렬의 선두에는 기독교 성화상과 청원서 그리고 니콜라이 2세의 초상만이 들려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게 황제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어버이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약 20만 명이 참가한 이 평화로운 집회는 러시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다. 니콜라이 2세는 궁 근처에 다다른 민중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근위대는 사람들을 향해 발포했고 흩어지는 군중 뒤로 기마병의 칼이 번뜩였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비명이 거리를 메웠고 수천 명의 시체가 도시를 뒤덮었다. 황제를 믿고 따르던 민중에게 돌아온 것은 피와 죽음이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이 참사 이후, 민중은 더 이상 황제를 숭배하지 않았다. 더구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황실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만 갔다. 결국 노동자들은 파업을 일으켰고 농민들은 봉기했으며 소수민족들은 반기를 들었다. 러시아 1차 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뒤늦게 니콜라이 황제는 러시아 의회인 '두마'를 인정하고 국민 기본권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정에 대한 철학은 부재했고 지식은 짧았으며 무엇보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특히 요승 그레고리 라스푸틴과 그를 전적으로 믿은 황후 알렉산드라는 황제의 눈과 귀를 멀게 했고 러시아를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아버지 알렉산드로 3세의 요절로 갑자기 황제가 된 니콜라이 2세는 준비가 부족했다. 그의 실정은 대관식부터 시작됐다. 1896년 5월 새로운 황제의 대관식을 보기 위해 러시아 전역에서 몰려온 100만 명의 민중이 궁 앞에서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1000명 넘는 사람들이 죽었지만 황제는 백성들을 돌보는 대신 만찬에 참석했다. 백성의 원혼이 저주가 된 것일까. 첫 대관식부터 적절치 못한 모습을 보인 그의 미래는 어둡기만 했다. 

러시아를 삼킨 요승 라스푸틴
 

니콜라이 황제 가족들 ⓒ 위키피디아

  
19세기 후반 유럽은 정치개혁과 산업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었지만 새로운 러시아 황제는 전제주의를 고수하며 개혁을 거부했다. 러일전쟁으로 산업은 피폐했고 민심은 바닥을 쳤으며 정치는 불안해져갔다. 하지만 니콜라이에게는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아들이었다.

알렉세이는 4명의 공주 이후 얻은 유일한 후계자였지만 불행하게도 혈우병을 가지고 있었다. 혈우병에 걸리면 조그만 충격에도 멍이 들고 피가 멈추지 않아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알렉세이는 황제 부부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지켜야 할 미래였다. 

1905년 황태자에게 위급한 일이 생긴다. 낙상으로 피가 멈추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의학으로 해결되지 않자 황제는 한 남자를 궁으로 부른다. 훤칠한 키에 우람한 체격, 깊은 눈과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그레고리 라스푸틴이었다. 

라스푸틴의 과거는 신비와 사실로 뒤범벅되어 있다. 도둑질로 고향에서 쫓겨난 그는 시베리아를 떠돌다 수도원에 들어간다. 계율이 딱딱하고 위계가 엄한 러시아 정교는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결국 사교에 발을 들인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이자 치유자로 부르며 사람들을 현혹했다. 특히 상류층 여성들에게 사제이자 상담사로 인기를 얻으며 영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기록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진정시켜주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정신과 의사나 무당 혹은 법사와 같은 존재였다.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들어온 그는 점차 상류사회에서 치유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 소문을 들은 황제는 자신의 아들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놀랍게도 라스푸틴의 치료를 받은 황태자 알렉세이는 호전됐다. 이를 본 황후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시작했다. 아들 문제로 편집증을 앓고 있던 그녀에게 라스푸틴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황후는 라스푸틴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의존했다. 

황실을 등에 업은 라스푸틴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비선 실세가 된다. 군사, 사회, 인사 등 국정에 영향을 미쳤으며 실질적인 정치권력까지 휘둘렀다. 황제와 황후 앞에서는 고상한 사제인 척했지만 뒤로는 재산을 빼돌리고 문란한 생활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궁정 안팎으로 라스푸틴을 경고하고 멀리할 것을 조언했지만 황제 부부는 듣지 않았다. 점점 러시아 황실은 라스푸틴이 쳐놓은 장막에 갇혀 현실과 동떨어지고 있었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
 

라스푸틴과 러시아 황제와 황후를 풍자한 포스터 ⓒ 위키피디아


1914년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가 참전하자 상황은 더 악화됐다. 라스푸틴의 권유로 최고 사령관이 된 니콜라이 황제가 궁을 떠나자 러시아는 요승의 손아귀에 놓였다.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를 자신의 뜻대로 조정했다. 각료는 수시로 바뀌었고 국가의 중요한 대소사도 합리적 절차 없이 결정됐다. 요승이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이다. 

러시아 사회는 더욱 불안해져갔다. 기근과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민중들은 더 이상 황실을 믿지 않았다. 국민들은 라스푸틴과 황후가 내연 관계로 러시아를 전횡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916년에는 마치 전 러시아와 라스푸틴이 대적하고 있는 듯했다. 귀족들의 분노도 점점 커져 라스푸틴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총탄이 되어 그의 심장으로 날아갔다. 

1916년 12월 19일 네바강 얼음 위로 한 구의 시신이 떠오른다. 몸과 얼굴에는 총상과 구타의 흔적이 있었고 위에서는 독극물도 검출됐다. 큰 키에 덥수룩한 수염, 바로 라스푸틴이었다. 

라스푸틴을 살해한 자들은 펠릭스 유스포프를 비롯한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상담을 핑계로 라스푸틴을 집으로 초청한 후 청산가리가 든 와인과 빵을 먹였다. 그래도 라스푸틴이 죽지 않자 결국 총과 도구를 사용하여 살해하고 강에 버렸다. 러시아를 통째로 흔들던 거인의 비참한 최후였다. 

황제와 황후는 큰 충격을 받았으나 여전히 개혁을 거부했다. 결국 민중들은 혁명에 가담했다. 군인들도 전선을 이탈해 무기를 들고 동참했다. 1917년 2월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열린 '여성의 날'에 참가한 여성들이 궁전으로 행진을 하자 수십만 명의 군중들이 함께했다.

대규모 투쟁과 혁명이 시작됐고 러시아는 무정부 상태가 됐다. 놀라운 건, 황후는 그때까지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는 것이다. 전보를 받은 황제는 경비대를 투입했지만 군인들도 황실에 등을 돌리고 혁명 세력에 가담한다. 

"마치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네, 폐하, 혁명이 맞습니다."

1917년 3월 8일 러시아 2차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는 폐위되고 3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린다. 제정 러시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차르를 위한 맥주, 올드 라스푸틴
 

올드 라스푸틴 라벨 ⓒ 노스코스트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포트 베그에 위치한 노스코스트 브루어리는 '올드 라스푸틴'이라는 발칙한 이름의 맥주를 출시한다. 라벨에는 한 손을 들고 있는 라스푸틴 이미지와 '진실한 친구는 바로 생기지 않는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아직 크래프트 맥주가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던 시절, 노스코스트 브루어리의 대표 마크 루드리치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맥주를 만들고 싶었다. 높은 알코올과 강한 쓴맛을 가진 스타우트인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당시 흔치 않은 스타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브루어리를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맥주 스타일로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낙점한 후, 시험 배치에 들어간다. 

1994년 노스코스트 브루펍에서 한정판으로 판매되며 맛과 품질을 다듬은 이 맥주는 최종적으로 9% 알코올, 진한 흑색, 농밀한 다크 초콜릿과 옅은 적사과 향을 가진 모습으로 출시되었다. 마크는 이 맥주가 지닌 강렬한 향미와 스타일명에서 이름을 착안했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줄임말로 18세기 영국에서 러시아 황실로 수출했던 높은 도수를 가진 스타우트에서 유래됐다. 마크는 제정 러시아를 몰락으로 이끈 그레고리 라스푸틴을 떠올렸고 자신의 새 맥주를 드러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임페리얼 스타우트와 라스푸틴이라면 수많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올드 라스푸틴 임페리얼 스타우트 ⓒ 윤한샘


실제 이 맥주에 있는 라스푸틴의 이미지는 뭔지 모를 신비감을 던져준다. 부유했던 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낮은 톤의 금색 라벨은 화려함보다 권력의 허무함과 쓸쓸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짙은 검은색을 두른 액체를 한 모금 입에 넣자 높은 알코올과 강한 쓴맛 그리고 묵직한 바디감이 혀를 짓누른다. 올드 라스푸틴의 향미는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주는 듯하다. 라스푸틴의 요술에 걸린 것일까. 맥주를 통해 보는 역사는 더 야릇하고 생생하다. 

1918년 반대 세력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한 볼셰비키는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리아, 아들 알렉세이 그리고 네 명의 공주, 올가, 타티야냐, 마리아, 아나스타샤를 머물던 가옥 지하에서 몰살한 후 야산에 매장했다. 러시아 마지막 왕조는 그렇게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황제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러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는 정작 국민이 러시아라는 것을 몰랐다. 요승 라스푸틴을 내치고 충직한 조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였다면 아마 역사는 달라졌으리라. 요승과 법사의 이야기를 듣는 권력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 시대의 권력이 마지막 차르가 전하는 울림과 떨림을 기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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