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엘은 종종 우리집에 들러 남은 음식을 챙겨가기도 하고 낡은 옷이나 신발을 받아가기도 했다. 아무리 소박한 음식이라도, 아무리 낡은 옷이나 신발이라도 우리엘은 그냥 받아가는 법이 없었다. 언제든 시간이 날 때 집 앞을 쓸어두거나 집 안으로 들어와 마당 풀을 정리해두고 갔다. 우렁각시처럼. 가진 것 하나도 없이 하루하루 겨우 밥과 마약을 사 먹어 가며 살아갔지만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고향에 가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 마저도 고향에 닿지 못하였다. 첫 번째 아내가 병으로 죽기 전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돈을 모아줘 여비를 마련해 아픈 아내를 데리고 그의 고향 마을에 보름 간 다녀올 수 있었다. 오고 가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릴 만큼 그의 고향은 먼 곳이었다.
림수진
죽음의 징후는 없었다. 며칠 전 봤을 뿐더러, 자그마한 체구에 몸이 가벼워 사뿐사뿐 나무 오르는 모습을 보면 딱히 아플 만한 곳도 없는 듯했다. 무엇보다 젊었다. 그에게 나이를 묻진 않았지만, 마흔을 넘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우리엘이 죽었다는 소문은 장례를 핑계로 당장 마약 사 먹을 돈을 구하기 위한 여자의 '뻔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가면서 소문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매장 대신 화장을 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마약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러니까 마약의 적량을 조절하지 못해서 죽었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아무래도 소문은 사실인 듯했다. 이웃은 내게 그 여자가 오거든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돈을 줘봐야 당장 그녀의 마약 값으로 쓰일 것이란 이유였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해가 질 무렵, 우리엘과 같이 살았다는 그 여자가 찾아온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지폐 몇 장이 담긴 작은 비닐봉지를 손에 꼭 쥔 그녀는 우리 집 앞에 선 채 혼자 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엘이 죽었다고, 매장은 생각지도 못하고 화장을 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 외상으로 했다고, 그리고 외상값을 갚지 못해 열흘 넘게 화장장에서 우리엘의 유골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우리엘이 어찌 죽었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일을 나간 우리엘이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몸을 덜덜 떨면서 집으로 왔다고 했다. 여느 날 같으면 아침나절 번 돈으로 빵하고 코카콜라를 사오는데 그 날은 빈손으로 와 당장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자가 급히 라임을 따 즙을 내 먹였고 꿀을 구해 입으로 흘려 넣었는데 몸을 더 심하게 떨고 침을 흘리며 헛소리까지 하더라고 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이온음료를 먹고 싶다 하여 여자가 급하게 가게로 뛰어가 음료 한 병을 외상으로 줄 것을 간절히 청했으나 두 곳 가게 모두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약에 손을 댄 이후 이미 여러 가게에 외상 빚을 지고 있었을 것이다.
음료를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와보니 우리엘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 다시 가게로 뛰어가 앰뷸런스를 불러줄 것을 청했고 한참이 지나 앰뷸런스가 왔지만 마약 과다복용이라는 말만 남겨두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