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고마운 눈과 귀, 그건 절대 사소할 수 없는 내 자부심이었고 뿌듯함이었다.
김승재
조금은 더웠던 5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총 17명의 답사대가 3대의 차에 나눠 타고 단양으로 출발했다. 생각지도 못한 대규모 답사단이었다. 비록 성당의 다른 일로 모임이 있기는 했지만, 그 친구들이 모두 함께 할 줄은 몰랐다. 거기다가 교통 체증 때문에 선택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시겠다며 6명의 어머니와 1명의 아버지까지 함께하셨다.
아내가 모는 소나타를 타고 단양으로 달려가는 길, 조금씩 희망을 잃어가면서 나 자신을 지워가던 내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보이지 않는다고 나까지 지워버릴 필요는 없었는데, 왜 그리 한심하게 굴었는지 정말 부끄럽단 생각뿐이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내 희미한 시야에 부쩍 높아진 산들이 느껴졌다. 바빠진 내 가상의 눈들이 부지런히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난 어느새 뒷좌석에서 장난질에 정신없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동고서저의 우리나라 지형을 큰 소리로 설명하고 있었다.
"어머, 보이는구나! 그럼 그동안 못 보는 척했던 거네?"
아내가 놀렸고, 우리는 크게 웃었다.
온달산성에 도착한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달려드는 벌레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가파른 계단을 서로에게 뒤질세라 뛰어올랐다. 삼삼오오 무리 지은 어른들도 때 이른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뒤를 따랐다. 아내의 도움으로 열심히 계단을 올랐지만, 내게도 조금 벅찬 계단이 혹시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앞서가던 아이와 어른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내가 그곳 단양과 충주 일대를 답사지로 정한 것은, 그곳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치열한 격전지여서만이 아니었다.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그곳의 빼어난 경치도 당연히 한몫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갔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일행들 곁에 서서 준비한 역사 이야기로 한껏 잘난 체를 했다.
분명 그때 내 시력은 지금보다는 조금 나았다. 얼굴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사람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낮과 밤은 물론 웬만한 빛도 느낄 수 있어서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불규칙한 계단은 다니기 어려웠고, 사람들이 오가는 시내 길 역시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답사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쓴 장문의 답사 여행기에 나는 아래와 같이 적어 놓았다.
'문득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굽이굽이 강물은 산들을 뚫고, 그 강을 따라 엇갈려 도열한 산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날 믿고 싶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게 진짜 내가 보고 쓴 것인지 아니면 일행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감탄과 설명을 듣고 내 가상의 눈들이 만들어 준 이미지를 글로 표현한 것인지.

▲본 것일까, 그린 것일까... 나도 알 수가 없다.
김승재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덥고 힘들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온달 산성 안에 도착했다.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곳이어서인지, 아래 온달관광지에는 단체 관광객을 비롯해 꽤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산성 안에는 오직 우리뿐이었다. 환호 속에 여기저기를 오가는 우리들의 발소리와 또다시 터져 나오는 감탄으로 1500여 년간 잠들었던 온달산성의 정기가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무척 좋았다.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산성을 내려와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눈길조차 주지 않을 사지원리 방단적석유구에 들렀고, 다시 발길을 돌려 도담 삼봉을 거쳐 단양 휴게소 뒷산이 되어 버린 적성과 단양 적성비를 감상했다. 그리고 그날 유난히도 짙었던 석양과 노을을 배경으로 남한강 변 충주 탄금대에서 답사 여행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조잘대면서도 내 앞에 모여들었고, 어른들은 정말 진지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줬다. 비록 여행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내가 준비한 설명은 아이들에게 그저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다름없었겠지만, 나는 그때 다시 살아난 희망을 느꼈다.
▲그 때의 아이가 된 웃음 소리, 보람 뒤엔 진짜 엄청난 즐거움도 따라온다.
김승재
그해 가을, 아내와 난 다시 답사 계획서를 들고 강화도를 찾았다. 봄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답사에 도전하는 길이었다. 이번에도 모두가 함께했다.
정족산성과 전등사에서 절정을 이룬 가을 단풍 아래 시작된 답사 여행은, 초지진과 광성보 그리고 갑곶 돈대에서 힘겹고도 고달팠던 강화의 아픔을 느꼈고, 말 없는 타임머신 고인돌에서 머나먼 옛날을 엿본 후, 적석사 뒤편 낙조대에서 진한 가을 노을 아래 끝을 맺었다.
그날 나는 돌아오는 차에 오르기까지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강화 고인돌 앞에서 어머니들이 고인돌 덮개돌을 들고 있는 듯 모두가 그 앞에 무릎 꿇고 손을 들고 환호할 때는 마치 내가 그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난 역사 교실을 접고 다른 일을 준비한다. 그렇다고 희망의 불꽃이 사그라진 건 아니다. 할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물론 어렵고 힘이 조금 들겠지만 그럼 나도 그만큼 천천히 할 거다. 이렇게 수다를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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