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라고 지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진과 여진으로 병원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지진 당일 라디오 방송과 SNS를 통해 병원 환자들을 위한 천막 지원에 대한 요청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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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크고 작은 여진은 계속되었다. 하필, 제법 큰 규모의 여진들은 꼭 새벽에 찾아오는 통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분명히 불안하고 피곤한 상황이었으나, 이곳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작금의 상황들을 유쾌함과 해학으로 버무려 받아쳤다. 새벽녘 놀라 집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돌아오는 길엔 늘 깔깔거림이 있었다.
9.19마다 큰 지진이
사실, 멕시코 사람들은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강하다. 특히 1985년 지진은 멕시코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아픔으로 남아 있는데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만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강도 8.1의 지진은 수도 멕시코시티뿐 아니라 멕시코 중서부 전역을 흔들었다.
그 해 9월 19일 아침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모두가 출근 혹은 등교 준비로 분주할 때 그들의 온 세상이 흔들렸고 고층 건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묻혔다. 당시 멕시코는 지진을 대비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구조 또한 체계적일 수 없었다. 결국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구조했다. 대학교를 비롯한 모든 학교들이 전체 휴교령을 내리고 이웃 구조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해 지진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전 세계에서 구호품이 답지하였는데 대한민국에서 텐트가 도착했다고 마을 사람들 일부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스위스에선 노란치즈가 도착했는데 맛이 희한하여 먹기가 참 고약스러웠다고 하고 유럽 어느 나라에선 쿠키를 보냈다 하고 캐나다에선 사탕을 보냈다고도 하여 그 때 마을 사람들이 생전 처음 나라 밖에서 온 별 희한한 것들을 다 먹어 봤다는 집단 기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