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의 광주 광산구 우산동 자택을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광주를 찾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만나 외교적 해법 마련을 약속했다.
연합뉴스
사실, 논의 기구를 확대하겠다는 윤 정부의 구상은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제 식민지배 문제를 가급적 공론화하지 않는 것은 1965년 이래로 한일 정부가 유지해온 묵계 같은 것이었다.
이 문제가 공론의 장으로 나와 국민적 논의가 활성화되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일본 경제가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종속적 구조가 명확히 드러날 뿐 아니라 1949년에 불발됐던 친일청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양국 정부가 가급적 들추지 않으려 했던 식민지배 문제를 윤석열 정부가 공개토론회 명목으로 공론화시키게 되면, 윤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공산이 크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윤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시선을 싸늘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공개토론회를 열게 되면 시간을 더 지체시킬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윤 정부에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9월 2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방문한 강제징용 피해자 중에 이춘식 할아버지가 있다. 올해 98세인 이춘식은 2005년에 일본제철(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가 2008년에 패소하고, 2009년에 2심에서도 패소한 뒤 2012년에 대법원에서 처음 이겼다.
하지만 이 승리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돌아갔고, 할아버지는 거기서 다시 승소했다. 하지만 불복하는 바람에 사건이 2013년에 대법원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로부터 5년 뒤에야 최종적인 승소 판결을 받았다. 양승태 사법농단이 폭로될 당시 널리 알려진 것처럼,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건을 지연시켜주는 대신에 박근혜 정부로부터 이익을 얻어내려 한 정황이 있었다.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보내 절차를 지연시킨 일도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2018년에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그는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에서 처음 이긴 2012년 이후로도,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2005년 이후로도, 일제가 패망한 1945년 이후로도 그는 하염없이 기다려왔다. 그러는 사이에 100세를 바라보게 됐다.
피해자들은 이렇게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논의 기구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대법원은 절차를 진행시키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피해자들을 봐서라도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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