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5 05:03최종 업데이트 22.10.0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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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문제 해소 방안으로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 도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의 제목입니다.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의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거라고 했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로 "장기적인 저출산 추세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출산율 하향세는 둔화됐"다고도 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정부에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 도입을 건의했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 페이스북

 
오 시장이 외국인 도우미 제도를 건의한 건 대통령이 주관한 국무회의 자리로 "인구 위기 대응"이 주요 안건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기존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시작으로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저출산 대책을 요구했고, 오 시장은 외국인 육아도우미 제도 (이하 외국인 도우미)를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겁니다.

그럼 외국인 도우미 제도가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오 시장의 말처럼 홍콩과 싱가포르는 외국인 도우미를 도입한 이후 "출산율 하향세가 둔화"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현지 실정과 거리가 아주 먼 이야기입니다.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

홍콩에서 외국인 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건 1972년이었고 싱가포르는 1978년입니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홍콩의 출산율은 1972년 3.3명에서 도우미 도입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1986년에는 1.4로 절반 이하가 되었고, 2020년 0.87명으로 한국과 꼴찌를 다투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출산율. 60년에는 세계 평균보다 높았으나 지금은 한국과 함께 세 나라가 전세계 꼴찌를 다투고 있습니다. ⓒ 세계은행

 
싱가포르는 외국인 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1978년에 이미 1.79로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 중 하나였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줄어서 2020년에는 1.1을 기록해 뒤에서 세번째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우리가 출산율을 높이겠다면서 한국 때문에 겨우 꼴찌를 면한 두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오세훈 시장이 연출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외국인 도우미 제도는 출산율 대책이 아니라 인구가 부족한 두 섬나라 싱가포르와 홍콩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도입되었습니다. 1965년 독립 후 싱가포르는 수출 위주의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하였고 1970년대에는 미국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을 다수 유치했습니다. 그로 인해 노동인력이 부족해지자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동남아시아의 저임금 여성들이 집에서 상주하며 가사와 양육 등을 전담하는 외국인 도우미 제도(The Foreign Maids Scheme)를 도입했습니다.

그 때부터 가사 노동을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길 수 있게 된 고학력의 싱가포르 여성들이 산업현장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970년에는 싱가포르 전체 15세 이상 여성 중 전업으로 취업하는 여성의 비율이 24.6%였는데, 도우미 제도가 도입된 이후인 1980년에는 39.3%로 뛰었고, 2020년에는 60%까지 증가했습니다. 한국은 현재 53% 수준입니다.
  

싱가포르 금융가 모습. 여성의 참여는 싱가포르가 아시아 무역과 금융의 중심에 서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 이봉렬

 
1970년만 해도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싱가포르 여성이 14.2%였는데 외국인 도우미의 도입으로 이들 모두가 서비스업이나 공장의 생산라인으로 투입되었습니다. 고학력에 전문지식을 갖춘 여성들은 공용어인 영어와 모국어인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다국적 기업에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싱가포르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후 맞벌이가 싱가포르의 일반적인 가정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향상된 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각 국의 경제, 정치, 교육, 건강 분야 성별 격차를 측정하여 발표하는 성격차지수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49위입니다. 한국은 그 보다 한참 뒤떨어진 99위입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경제참여와 기회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Economic Participation)만 떼어 놓고 보면 싱가포르는 28위로 올라 가고 한국은 오히려 115위로 더 떨어집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22년 성격차지수.싱가포르는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49위,한국은 99위입니다. 여성들의 경제참여와 기회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Economic Participation)는 싱가포르 28위, 한국은 115위입니다. ⓒ 세계경제포럼 레포트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는 오 시장의 주장은 <오마이팩트>에서 이미 "대체로 거짓"으로 판단하고 보도했으니 여기선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관련기사 : 오세훈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 38만~76만원" '대체로 거짓') 오 시장이 말한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는 건 도우미가 받는 금액이지만, 고용주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고용부담금과 보험, 건강검진, 기타 경비 등을 모두 더해 12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가 되는 게 싱가포르의 현실입니다.

외국인 도우미가 출산 대책도 아니고 그 비용도 오 시장이 말한 금액의 두 배가 넘기 때문에 그의 건의는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가깝습니다. 윤 대통령의 요구와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오 시장이 어설프게 던진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가 과연 한국에서 실제로 가능한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 한국에서 가능할까?

싱가포르의 도우미 숫자는 2021년 기준 24만 6300명으로 전체 인구의 4%가 넘습니다. 싱가포르는 전체 가정의 20% 정도가 도우미를 채용하고 있으니 외국인 도우미는 이미 싱가포르 사회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우미에 대한 법과 제도 그리고 각종 시설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싱가포르 외국인 도우미 채용 법에는 도우미를 채용할 고용주의 자격요건을 규정하고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연간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고, 주거 환경도 평가를 합니다. 독신자가 고용을 하려면 별도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정신병력이 있거나 알츠하이머 혹은 치매 등에 걸린 사람은 고용주가 될 수 없습니다. 외국인 도우미 채용 관련 온라인 교육도 수료해야 합니다. 16세 미만 아동이나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이 있는 가구의 경우는 외국인 도우미 채용 과정이 간단하고 정부에 내는 부담금도 줄여 줍니다. 반면에 해고를 자주 하는 고용주는 외국인 도우미 채용에 제한을 두거나 노동부와 면담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무소 풍경입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출신이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대기 중인 여성들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 이봉렬

 
외국인 도우미의 경우 23세에서 50세 사이의 여성으로 정해져 있고, 최소 교육 수준도 정해져 있습니다. 출신 국가도 아시아의 13개 국가로 정해져 있는데 필리핀,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과 함께 한국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도우미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도우미가 된 후에도 6개월에 한 번씩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임신 판정이 나면 추방을 당하게 되고 고용주는 조사를 받게 됩니다. 도우미 일을 시작한 후 정해진 기간 안에 노동부에 방문하여 면담을 하는 절차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등을 확인하는 겁니다.

외국인 도우미를 채용했다면 그들이 지낼 공간이 필요합니다. 싱가포르는 다섯 집 중에 한 집이 도우미와 함께 살기 때문에 고급 민간아파트의 경우에는 애초에 도우미를 위한 공간도 함께 설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한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과 작은 화장실 하나지만 그래도 집 안의 별도 공간입니다. 도우미가 없는 가정에서는 그 공간을 창고로 쓰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도우미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구조부터 손봐야 하는 겁니다.


외국에서 온 도우미와 언어가 통하는 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얀마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도우미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려고 영어를 조금은 배워서 오지만 단순한 지시와 대답 외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쓰는 필리핀 도우미를 더 선호하고 월급도 더 높습니다.

영어가 공용어인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은 영어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도우미 일을 할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국말을 할 줄 모릅니다. 동남아 여성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만 한국어를 따로 배우지는 않으니까요. 한국 가정에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이 함께 거주하면서 가사를 돕고 육아를 담당하는 데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도우미와 고용주 간의 폭력이나 학대 등의 사건 사고도 많습니다. 고용주가 도우미에게 제대로 된 식사도 제공하지 않고, 힘에 부치는 과도한 일을 시키는가 하면 휴식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고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다가 신고가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도우미가 물건을 훔치거나 보살펴야 할 아이나 노인을 학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우미가 고용주인 두 노부부를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고, 반대로 고용주가 도우미를 학대하다가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외국인 도우미와 관련된 살인 사건을 보도하는 싱가포르 언론. 도우미가 두 노인을 살해한 사건 (위), 고용주가 도우미를 살해한 사건 (아래) ⓒ 스트레이츠 타임즈 보도 화면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민을 우선하기 보다는 최대한 공정한 판결을 내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창이공항그룹 회장이자 싱가포르 투자회사 테마섹의 고문이던 리우 회장이 인도네시아 출신 도우미에게 부당한 지시를 했다가 거부당하자 9년 동안 일했던 그를 쫓아내고 절도죄를 뒤집어 씌웠는데 그게 재판을 통해 무고로 드러나서 모든 공직을 내려 놓아야 했던 일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로 인해 외국인 도우미들에게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HOME(Humanitarian Organization for Migration Economics) 이나 TWC2(Transient Workers Count Too) 같은 이주 노동자와 외국인 도우미를 돕는 시민단체가 생겨서 언어나 문화가 달라 생기는 여러 다툼을 해결해 주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도우미를 위한 시민단체들이 조직되어 법적 지원을 포함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TWC2 홈페이지

 
이처럼 외국인 도우미를 우리 사회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우리가 외국인, 그것도 우리보다 약자의 처지인 이주 노동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공장이나 농촌에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법과 제도도 미비해서 수많은 불법체류자를 만들고, 그들에 대한 처우도 비인간적인 경우가 많은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린 과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집 안까지 불러올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 시장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싸니까 들여와서 육아를 맡기자는 단순한 사고로 시작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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