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미군기지 야구장1960년대에 용산의 미군기지에는 천연잔디가 깔린 당대 국내 최고 수준의 야구장이 있었고, 좋은 식사와 수준 높은 연습경기 그리고 결과에 따라서는 푸짐한 선물이 있었다. 그곳에 초청받은 한국인 야구팀들이 드러나지 않는 전력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197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 야구가 성행한 4대 도시로 서울과 인천, 부산과 대구가 꼽혔는데 그 네 곳은 모두 주한미군의 대규모 주둔지가 있던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네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야구 경기를 경험하기 쉬웠을 뿐 아니라 미군부대로부터 흘러나오는 공을 비롯한 야구 장비들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예컨대 1952년과 1953년 인천고의 고교야구 전국대회 전관왕 신화를 이끈 데 이어 국가대표와 실업팀의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야구해설자로서 이름을 날린 고 서동준 선생의 경우에도 인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 '미군들이 야구 경기 하는 걸 구경하다가 파울볼을 주워 들고 도망쳐서 인천군(안완식 등이 주축을 이루던 사회인야구팀) 아저씨들에게 가져다주면 귀여움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었다.
즉, 1940년대에 주한미군이 한국에 야구 기술과 장비를 전파하고 규모 있는 경기와 대회를 열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했다면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주둔지 인근에서 활동하던 야구팀들에 선진 기술과 장비를 전파함으로써 전국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하고 기술 발전을 선도하게 하는 드러나지 않는 배경으로서 기능한 셈이다.
미국 야구의 중계자, 주한미군
한국이 미국 야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도 프로야구가 창설된 1982년 이후였다. 1982년에는 홈런왕 출신의 부사장 행크 애런이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 선발팀이 내한 경기를 하며 야구 기술과 리그 운영에 관한 조언을 한 적이 있고, 1985년 시즌 전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미국 베로비치의 LA 다저스 캠프에서 전지 훈련하며 다저스 코치진의 지도를 받아 이후 팀 수비전략의 틀을 만든 적이 있다.
1990년대 말 이후로는 미국 출신 선수들이 들어오고 한국 선수들이 미국 무대에서 뛰면서 두 나라의 야구는 부쩍 가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한국에 미국 야구의 기술과 문화와 장비를 전해준 간접적 중개자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주한미군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주한미군들을 상대로 펼쳐졌던 '미8군쇼' 무대는 길옥윤, 이봉조, 신중현, 패티김 등을 길러낸 요람이었고 그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굵은 뿌리가 됐다. 주한미군이 한국 야구에 미친 영향을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역시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자양분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행크 애런삼성 라이온즈 초청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 선발팀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한 홈런왕 행크 애런이 이만수에게 타격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중간에서 지켜보는 것은 서영무 감독.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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