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크리스티안 한센
carlsberg group
양조장 설립 초기 칼스버그의 맥주는 어두운 색 라거였다. 효모는 뮌헨 슈파텐의 것이었지만 스타일은 안톤 드레허의 어두운색 비엔나 라거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라거는 15세기부터 존재했지만 안정적인 생산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칼스버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거 효모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고 낮은 발효 온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냉장 시설과 장치도 없었다.
1860년대 들어서야 라거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스퇴르의 효모와 젖산균 발효에 대한 연구는 미생물학자와 의사뿐만 아니라 양조자들에게도 큰 희망을 준다. 야콥슨은 과학이 맥주 양조 중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 확신하며 1875년 세계 최초의 맥주 연구기관인 '칼스버그 연구소'를 세운다. 맥주 재료, 양조, 발효 등 맥주에 대한 연구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곧 위대한 연구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라거 효모의 순수 분리 배양은 그 믿음에 대한 첫 결과물이었다. 그전까지 맥주 양조는 기술이 아닌 운과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곤 했다.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는 양조장의 효모가 여러 균체와 다양한 개체군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소수의 효모 균주만이 발효에 가장 적합하다고 가정했고 이를 찾는 실험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실험과 발효를 진행한 결과 단일 세포에서 자란 순수한 라거 효모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고 칼스버그는 이 효모를 가지고 기존과 다른 수준의 라거를 만들었다.
학계에서는 이 효모에 칼스버그의 이름을 따 '사카로미세스 칼스버겐시스'(Saccharomyces carlsbergensis)라는 학명을 붙였고 사람들은 단순히 '라거 효모'라고 불렀다. 칼스버그가 위대한 것은 이 라거 효모를 필요한 모든 양조장에 보냈다는 것이다. 라거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폄하할지라도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많은 양조장이 이에 대해 고마움과 경의를 표했다. 일례로 1885년 네덜란드 하이네켄 또한 칼스버그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계기로 라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맥주 시장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꿔 놓는다. 20세기 들어 영국 에일은 선반 끝으로 밀려났고 라거가 새로운 왕좌에 앉게 된다.
1909년 칼스버그는 또 다른 업적을 세상과 공유한다. 2대 연구소장 소렌 소렌슨이 수소 이온 농도 지수(pH, power of hydrogen)를 발표한 것이다. pH는 산성과 알칼리성의 정도를 0~14까지의 지수로 표시한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pH는 맥주 양조에서 가장 중요한 효소와 효모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써 이에 대한 관리와 조절은 맥주 향미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품질의 핵심이다. 소렌 소렌슨의 이 연구는 맥주뿐만 아니라 화학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공로로 소렌슨은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덴마크 맥주의 자존심, 칼스버그 필스너
▲전용잔에 담긴 칼스버그
윤한샘
1904년 칼스버그 최초의 밝은색 라거, 필스너가 출시된다. 아들인 칼 야콥센이 만든 이 맥주가 현재 칼스버그의 시그니쳐다. 필스너 우르켈이 나온 지 64년 만이니 명성에 비해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시절 안정적인 황금빛 라거 생산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칼스버그 필스너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시장을 휩쓸었고 덴마크 황실에 공급하는 첫 맥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칼스버그 로고 위에 보이는 왕관도 바로 이때 붙여졌다.
칼스버그 필스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드러움'이다. 투명한 밝은 황금색 칼스버그를 머금으면 섬세한 탄산과 쓴맛이 입안을 간지럽힌다. 깔끔하고 청량하며 무난하다. 진하고 무거운 필스너 우르켈이나 깨끗하지만 다소 날카로운 하이네켄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가볍지만 우아하며 모나지 않고 기품이 있다. 5%의 알코올은 이 모든 것을 받치는 기둥과 같다.
하지만 내가 칼스버그를 마실 때마다 느끼는 건, 단순한 향미가 아니라 아우라다. 오리지널 라거 효모를 사용한 맥주라는 아우라, 덴마크 황실이 인정한 맥주라는 아우라 그리고 더 나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얻은 지식을 세계와 공유한 양조장이라는 아우라는 다른 맥주에서 맛볼 수 없는 칼스버그만의 독특한 아로마와 같다.
2016년 칼스버그는 1883년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 발견한 라거 효모로 만든 맥주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창고에서 발견된 맥주에서 당시 효모를 추출해 그때 레시피로 맥주를 만든 것이다. '1883'이라고 명명된 이 맥주는 인류 발전에 기여한 위대함과 헌신을 상징한다. 맥주가 단순히 알코올을 함유한 술이 아닌,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할 수 있는 존재임을 칼스버그는 보여 주고 있다.
칼스버그가 더 나은 맥주를 만들었는가? 아마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는가? 아마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