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특별합동심의 결과서EBS측이 공개한 특별합동심의 결과서. 앞서 8월 24일에 공개한 입장문과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EBS
EBS 측이 공개한 특별합동심의 결과서에 따르면 "일부 영상 구성이나 자막에 있어서 연출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학살 이유나 배경 설명이 거의 없어 시청자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어려운 점"과 "시대적 배경 및 내용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필요한 객관적 자료 제시나 데이터에 대한 출처 표시 등이 부족한 점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불충분한 점"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4조(객관성)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EBS의 특별합동심의 결과서에서 지적하는 내용은 EBS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아닌 영화제 출품작들이 온전하게 충족시키기에는 애초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제에 출품하는 작품들은 방송프로그램이 아니고 작가들이 주제 의식을 가지고 독창적으로 제작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정굴 이야기>는 상영시간이 18분 안팎의 짧은 단편 작품이며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 달리 기존의 금정굴 학살에 대한 기록영상들과 애니메이션 기법들을 혼합해 독창적인 이미지로 구성한 영화다. 이런 특징이 있는 <금정굴 이야기>가 심의위원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고 자료 출처와 정보를 영화에 넣으려면 결국 작품 형식과 개성을 포기해야 한다.
이번 <금정굴 이야기> 방송불가 결정은 EBS 심의위원회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자체를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협소하게 적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협소하게 적용한 EBS
또한 특별합동심의 결과서의 지적이 구체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다. 방송하기에 부적합한 부분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면 해당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지적한 부분의 문제점을 방송 편성자와 제작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특별합동심의 결과서는 이런 설명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의 심의 지적에 순순히 방송불가 처분을 납득할 창작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금정굴 이야기>를 연출한 전승일 감독과 영화·문화계가 영화제가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EBS 심의 결과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결국 이번 심의 처분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한국 전쟁과 군부 독재를 거치며 문화·예술에 대한 사전 검열이 장시간 지속되었고 또 그만큼 긴 시간 표현의 자유가 억눌렸던 사회적 트라우마가 있다. 영화가 검열에서 벗어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런 트라우마가 겨우 옅어질 무렵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이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이 유무형의 압력과 불이익을 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사회 맥락에서 납득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 제한은 결국 한국 사회와 예술인들이 겪었던 검열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EBS와 심의위원들이 이런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면 최소한 방송불가 결정을 내릴 때는 그 표현의 자유가 방송에서 허용되지 않는 합리적인 이유를 무겁게 판단하고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했다.
EBS 심의위원회의 방송불가 결정이 무색하게 <금정굴 이야기>는 여러 영화제와 페스티벌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제 영화제와 인도 카루크리트(Karukrit)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으며 LA 독립 단편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웹 & 뉴미디어 부문에서 수상했다.
인도 뭄바이 국제 영화제에서는 애니메이션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체코 프라하 국제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 8월 18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제22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에서는 한국 작품상을 수상했다.
EBS는 이번 사태에 대해 제기된 사회 각계의 비판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지금이라도 <금정굴 이야기> 측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제시해야 한다. 또 종래의 심의 절차 또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수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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