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1 15:30최종 업데이트 22.09.0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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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시설을 중심으로 공공언어 사용에 영어 남용 등 문제가 많은 것이 드러났지만, 어떻게 바로잡을지 대안을 찾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한결같이 이런 일에 힘쓰고 있는 최용기 해외동포책보내기협의회 이사장으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봤다.

최 이사장은 문체부에서 6년, 국립국어원에서 30년 근무했고 퇴임한지는 5년이 되었는데, 퇴임 후 해외 책 보내기 봉사 활동을 하면서 국어운동 단체에서 공공언어 바로 쓰기 운동도 펴고 있다. 퇴임 후 더 바빠졌다고 하는 최 이사장을 경복궁 영추문 옆 한옥에 있는 '한글이름 함께 짓는 집'에서 만나봤다.

"공공 언어가 간결한 국가가 민주국가"
 

공직에서 36년, 퇴임 후에도 꾸준히 공공언어 바로잡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최용기 이사장 ⓒ 김슬옹


- 요즘 공공기관의 영어 남용이 부쩍 늘었다. 그 이유를 어떻게 보는가?
"매우 심각하다. 정부 업무 보고 자료와 홍보 자료를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 구호까지 대부분 영어 투성이다, 도대체 무엇을 알리고 홍보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무언가 자기 부처가 특이하게 보이려는 의도나 부처의 과시 정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가령, 데이케어센터, 템플스테이, 드림스타트, 문텐로드, 스탠드스틸, 포트 홀 등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이들은 '종일 돌봄터, 절(사찰) 체험, 희망 직업, 달맞이길, 이동 중지, 도로 파손' 등 쉬운 대체어가 있는데도 마구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 구호도 '하이서울, 다이나믹 부산, 컬러풀 대구, 이츠 대전, 훌라이 인천, 어메니티 서천, 하이터치 공주' 등이 무슨 구호인지 알 수가 없다."


- 사실 이런 심각성은 국어운동 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하고 있고 양식 있는 시민들도 많이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잡을 대책이다.
"먼저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공직자들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고 그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쉬운 언어를 쓰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면서 관공서는 국민을 위한 봉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언어 표현도 민주화되고 눈높이가 국민에게 맞게 바뀌어야 한다. 이 모든 문제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 또 법령이나 제도가 변하지 않는 가운데 공무원의 노력만으로 공공기관의 언어를 소통이 잘되도록 바로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만은 안 될 것이다. 당장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국민을 상대로 한 각종 공문서의 표현은 국민 눈높이에 맞도록 알기 쉽게 쓰려는 노력을 각자가 기울일 때 비로소 정부는 국민에게 쉽게 다가갈 것이고 국민이 체감하는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다. 공공언어가 간결하고 명확한 국가가 민주국가요, 선진 일류국가이기 때문이다."

- 국어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으로서도 활동하셨고, 퇴임 후에는 국어 운동가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삶이 더 보람 있는가?
"사람은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삶의 보람을 느낄 것이다. 공무원으로서 국어 정책을 집행할 때는 국어기본법 초안을 만들고, 세종학당을 설립하고, 국어문화원을 만들고, 우리말 다듬기 사업을 추진할 때, 이런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났을 때. 보람이 있었다. 퇴임 후에는 원하는 일들을 맘껏 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국외(몽골)에 나가 2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귀국 후에는 우리의 다문화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국외교포에게 한글책 보내기, 그리고 배달말 찾기 운동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두 보람된 일들이다."

- 쉬운 말로 바꾼 사례 가운데 성공한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우리말 다듬기 사업을 할 때 41개 분야 20530개 낱말을 순화하여 '국어 순화 자료집'으로 만들어 전문가와 국어 단체에 보급하고 시디 1만 개를 국민에게 보급한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 이 가운데 문화재 용어와 의학 용어는 관련 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각계 중지를 모아 대안어가 마련돼 거의 모든 언론에서 환영을 받았고 교과서까지 반영됐다. 예를 들면 문화재 용어 가운데 '적석총(赤石冢)'은 '돌무지무덤', '각저도(角觝圖)'는 '씨름도', '마연토기(磨硏土器)'는 '간토기',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다듬었고, 의학 용어 가운데 '수포(水泡)'는 '물집', '슬개골(膝蓋骨)'은 '무릎뼈', '견갑골(肩胛骨)'은 '어깨뼈', '늑골(肋骨)'은 '갈비뼈', '족척부(足蹠部)'는 '발바닥'으로 다듬었다."

"컴퓨터 용어 순화 작업, 순조롭지 못했다" 

- 문체부에서 6년, 국립국어원에서 30년이나 근무하셨는데, 정책 이름이나 공공언어 개선 관련 일을 공무원으로 했던 일 가운데 내세우고 싶은 성과와 보람은 무엇인가?
"문체부 때에는 국립국어원을 설립하는 데 앞장서고, 서체 명칭인 명조체를 바탕체, 고딕체를 돋움체로, 노견을 '갓길'로 바꾼 일, 국외 한국어 교사 파견과 초청 사업, 아름다운 한글 서예전과 한글날 행사 추진 등의 성과가 있었다.

국립국어원 때에는 국어문화학교 설립과 운영, 한글날 전후 한글 주간 선포, 국어기본법의 제안과 초안 작성, 세종학당과 국어문화원 설립, 한국어 교원 양성과 교육과정 마련, 한국어 교재 작성과 보급, 훈민정음 언어권별 번역,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변경, 광화문의 한글 글자 마당 조성,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에 힘을 보탠 일이 보람이 있었다. 특히 세종학당 설립 등을 통해 한국어 해외 보급에 힘써 매달렸는데 이것이 요즘 한류 열풍의 중심에 놓이게 되어 무척 보람된다."

- 혹시 실패한 사례나 아쉬웠던 점도 있는가?
"우리말 다듬기 사업을 추진할 때 전산기(컴퓨터) 용어 순화 작업이 순조롭지 못했다. 너무나 빠르게 전문 용어가 보급되고 미처 순화 대상 용어를 선정하기도 전에 외국에서 들온말이 퍼져 나갔고 일부에서는 순화 용어를 비웃기까지했다. 가령 컴퓨터를 '슬기틀', '하드웨어'를 '굳은모', '소프트웨어'를 '무른모'로 바꾸었지만 반응도 냉담했고 결국 실패한 것이 아쉽다. 그런 말들이 안 쓰여서가 아니라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못내 아쉽다는 것이다. 요즘 국어기본법이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 보니 국어기본법에 의무 조항이나 당연 조항을 선택 조항으로 양보한 것은 더욱 아쉽다."

- 그럼 쉬운 정책 용어를 왜 사용해야 한다고 보는가?
"언어는 소통이다.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의 전달 의도를 듣고 읽는 사람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면 오히려 소통이 더 가로막힐 수 있다. 쉽게 이해되는 글을 보면 읽는 사람의 마음이 개운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글을 볼 때 읽는 사람은 답답함을 느낀다.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글을 마주하게 되면 어떤 뜻으로 말했을까,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듣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답답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가령, 동사무소에서 주민들을 위해 윷놀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대보름맞이 척사 대회'라고 크게 써 붙여 놓았는데 '척사 대회'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런 언어 사용은 실패한 언어 사용이다.

단지 어려운 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정책 이름이 난해하면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창업을 원하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인 서울특별시의 '맘프러너' 정책은 'Mom'과 'Entrepreneur'에서 따온 말인데 그 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워 그 정책을 버리고 말았다. 정확한 규모는 생각이 잘 안 나지만 이로 인해 낭비한 국가 예산이 최소 몇십 억 원에서 최대 몇백 억 원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역 3층 맞이방 안내판 ⓒ 김슬옹


잘못된 정책명으로 낭비한 경제 규모를 설명하는 최 이사장의 모습은 오래 공직에서 근무한 사람이 아니라 평생 국어운동에 매달린 운동가의 열정 그 자체였다. 이런 분들의 노력 덕에 이제 우리는 '적석총'이란 암호 같은 말이 아니라 '돌무지무덤'이란 쉬운 말로 유물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병원만 가면 '슬개골' 같은 어려운 말 때문에 주눅들던 데서 벗어나 '무릎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몸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대담을 마무리하며 최 이사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쉬운 정책명 하나만 골라달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것은 기차역에서 늘 마주하는 '맞이방'이었다.

"과거에 버스 터미널이나 철도역의 '대합실(待合室)'을 쉬운 말인 '맞이방'으로 바꿨더니,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모두 환영하였습니다. 1999년 철도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역순 사전으로 유명한 남영신님 제안을 국립국어원이 받아들여 함께 퍼뜨린 것이죠. 김 원장이 대학교 때 퍼뜨렸던 '동아리'라는 말과 더불어 국민들이 사랑하는 말로 자리잡아 늘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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