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가 발행하는 <분게이 온라인> 18일자 기사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도?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한국 여론이 전전긍긍하는 이유(韓?人へのビザ?給禁止も? 日本企業の資産現金化、韓?世論が“??恐?”としているワケ)'
분게이슌주 캡처
사실, 전전긍긍해야 할 쪽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일본정부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의 눈에는 한국이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가해자가 한국 정부에 '해결책을 갖고 오라'고 재촉하는, 공수가 뒤바뀐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제목이다.
<분슌 온라인>은 한국인들이 강제징용 현금화로 인해 일본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일본의 제재 조치에 의해 한국이 심대한 데미지를 입게 된다며 한국 국내는 소란스럽다"고 전한다.
또 현금화를 요청하는 피해자들도 실상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중도 성향 언론사 소속이라는 익명의 한국 기자를 인용해 "피해자 측은 현금화가 될 경우에는 사죄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일본이 '한국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위 기사는 앞으로의 상황을 상당히 낙관한다. 법원에서 설령 현금화가 실현되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그냥 있지는 않으리라고 기대감을 표시한다.
기사는 현금화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 "앞에 나온 기자는 '가능성은 있지만 높지는 않다'고 말하는 한편, 만약 그렇게 되면 '한국정부에 의한 긴급조치가 취해지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한국 법원이 그런 조치를 내리게 되면 윤석열 정부가 긴급조치라도 취하게 될 거라고 중도 성향 언론사에 속해 있다는 그 기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염려하는 일본, 과거엔
<분슌 온라인>은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기사가 우려를 표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의 자세로 봐서는 일본 기업들이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지지율이 낮아서 일이 그르쳐질 수도 있다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분슌 온라인> 보도에서도 나타나듯이, 윤 대통령 당선 이후로 일본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낙관론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 일본의 제재가 두려워서라도 한국인들이 막판에 태도를 바꾸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표하는 보도도 나온다.
이런 보도들을 접하면서 떠올리게 된 사례가 두 가지 있다. 지금과 똑같지는 않지만, 지금만큼이나 한일관계가 첨예했던 상황에서 막판에 번번이 핸들을 꺾은 쪽은 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노다니엘 전 홍콩과기대 교수의 <독도밀약>이나 <월간중앙> 2007년 4월호 등에 소개된 것처럼, 미국의 재촉과 압력 하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진행되던 1965년 초반에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놓고 한국 정부와 비밀 협상을 벌이다가 '한·일 양국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와 더불어 '한국이 독도를 점거하는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등이 담긴 독도밀약을 그해 1월 11일 체결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해준 부분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또 '한국이 독도를 소유하는 현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지 않고 '점거하는 현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 것 역시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한편, 한국이 독도를 점거하는 상태를 인정하기로 한 것은 일본의 외교적 실패인 측면도 없지 않다. 독도 영유권을 마무리하고 신속히 국교를 정상화하라는 미국의 압박을 받던 상황에서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 핸들을 튼 결과라고도 해석될 여지도 있는 사례다.
1973년 8월 8일 도쿄에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한민국 공권력을 발동해 김대중 납치 사건을 자행하자, 일본 정부는 박정희 정권의 처사에 불만을 갖게 됐다. 1974년 8월 15일에 재일동포 문세광이 육영수를 저격하자, 일본 정부는 '문세광은 김대중 납치에 분개해 박정희 독재를 무너트리려 했다'며 문세광을 두둔하는 듯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한일관계가 악화되자 박정희는 그해 8월 30일 우시로쿠 도라오 일본대사를 불러 국교중단 가능성을 시사하며 일본을 위협했다. 한·일 관계단절은 한미일 동맹 와해를 의미하므로 누구보다 당황한 쪽은 워싱턴이었고, 미국이 화해를 독촉하는 상황 속에서 핸들을 먼저 튼 쪽은 일본이었다.
그해 9월 19일 시나 에쓰사부로 자민당 부총재가 총리 특사로 방한해 박정희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미국의 대한·대일 영향력이 지금보다 강할 때 일어난 일들이기는 하지만, 한일관계가 매우 첨예했던 상황에서 두 차례에 걸쳐 태도를 바꾼 쪽은 일본이었다.
지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한국 국민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이 이 의지를 꺾을 수 있으라고는 보기 힘들다. 이 상황에서 핸들을 틀어야 하는 쪽은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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