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은 막걸리집에 관해 엉뚱한 그림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픽사베이
얼마 후 그 친구는 물론 다른 친구들도 진실을 말해줬지만, 아마도 내게 딱 맞는 맛있는 막걸리와 안주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새로운 내 눈들은 그 왜곡된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뒀던 것이다.
사실 그곳은 막걸리와 음식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식재료를 여기저기 대강 쌓아둔, 시각적으로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평균 이하의 음식점이었다. 나도 그때 동행한 사람들의 설명을 들은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도 내 기억은 이렇게 엉뚱한 그림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의 착각은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도 가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나 같이 중도에 시력을 잃은 사람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아니, 사실 거의 절대적이다.
인간이 외부 자극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는 오감 중 시각이 무려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다 합쳐도 겨우 30% 정도의 정보를 입수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시각은 우리가 정보를 입수하고 저장하는데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영원하지 못하고 자주 왜곡된다.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생생한 기억과 정확한 기억은 전혀 별개다. 그런데 그나마 그 생생한 기억도 내 경우에는 이미 10여 년 전 일이다.
그러니까 시각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 같은 사람들은 완전히 정보의 입수와 보전이 다른 방식일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30% 남짓 역할을 담당했던 나머지 감각 기관들이 시각이 담당했던 70%를 포함한 100%를 처리해야 하니 계속해서 과부하가 걸리고 왜곡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사는 새로운 세상이 못 살 곳이란 얘기는 아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또 다른 재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다. 그 재미란 게 나 혼자는 안되는 것이다. 아직은, 아니 어쩌면 우리가 찬란한 태양 빛이 가득한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한 영원히 시각적 이미지는 필요하다. 그래서 난 도움이 필요하다.
서울의 한 공연장으로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다. 용변이 급해 그냥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던 소변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지만 내게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다.
"저기요, 제가..."
순식간에 몇 명이 내 말을 외면한 채 지나쳐 갔다. 처음 느끼는 당혹감이었고 약간은 두려움이었다. 곧 소변기를 찾을 수 있어 용변은 해결했지만 끝내 그날 날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사실 정반대의 경험이 훨씬 많다. 심지어 화장실을 나오려다 내 지팡이를 보고 다시 나를 데리고 들어가시는 분도 있고, 내가 볼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분도 간혹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소한 것이 내 기억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뮤지컬과 그 공연장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선 수준 이하로 남아 있다. 내 가상의 눈들은 배우들의 노래와 춤을 그다지 멋지게 보여주지 못하고, 공연장의 시설 역시 한참이나 모자라는 것으로 보여준다.
결국 내 새로운 눈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내 새로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더욱 중요하다. 나를 에워싼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감정들이 내가 새로 얻은 눈을 통해 내가 사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를 그려주고 있다.
10년 만에 발목 등산화도 벗고 반바지까지 입고 나와서인지 오늘따라 무척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 등산화와 반바지 얘기도 좀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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