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2일 한국의 이승엽이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 일본과의 경기에서 8회말 1사 1루 타석때 역전 2점 홈런을 친뒤 그라운드를 돌며 환호하고 있다. 이승엽은 한국 야구사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이기도 하지만 가장 극적인 홈런을 많이 친 타자이기도 하다. 팬들의 기억 속에서 두 번의 올림픽과 한 번의 한국시리즈 속 상황이 종종 혼동되는 것은 대부분 '시리즈 내내 부진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승엽이 터뜨린 홈런'이 거짓말처럼 반복됐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179였던 이승엽의 타율은 베이징에서도 .167에 불과했다(2002년 한국시리즈 때는 .148이었다).
유성호
그날도 삼진과 병살타로 부진했던 이승엽은 어김없이 일본의 좌완투수 이와세의 몸쪽 공을 부드럽게 걷어 올렸고, 그렇게 날아오른 공은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의 오른쪽 펜스를 넘기는 2점 홈런으로 다시 한번 '약속'을 실현했다.
그리고 뒤를 이은 김동주의 안타에 이어 고영민이 좌측 외야로 큰 타구를 띄웠을 때 심리적으로 무너진 일본 외야수 G.G.사토의 수비가 겹치고 강민호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까지 이어지며 보탠 2점은 쐐기가 됐다. 6대 2, 한국의 결승전 진출.
되풀이된, 바닥을 친 이승엽의 결정적 한 방
쿠바와의 결승전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팬들이 편한 마음으로 지켜본 한 판이었다. 한 편으로는 이미 최소한 사상 최초가 될 은메달을 확정 지어 놓은 상황에 포만감을 느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쿠바를 이겨서 금메달을 딴다는 것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미리 마음을 접어두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선리그에서 사상 첫 쿠바전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건 어쨌거나 이미 두 팀 모두 4강 진출을 확정해놓은 상태에서의, 굳이 서로 무리할 필요 없는 승부였다. 1970년대 이래 쿠바는 만나면 늘 지는 상대였고, 져도 두 자릿수 점수 차이로 크게 일방적으로 지는 상대였고,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이 느껴지게 하는 상대였다.
오죽하면 연세대 시절 자그마한 체구에도 잘 맞히고, 멀리 치고, 잘 뛰고, 심지어 잘 던지기까지 하는 대학리그 최고의 선수 박재홍에게 '마치 쿠바 선수처럼 잘한다'는 의미로 '리틀 쿠바'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였다. 그런 쿠바와의 진검승부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그 시점의 한국 야구인과 야구팬들에게는 상상하는 것만 해도 좀 버거웠다.
하지만 기세를 올라타면 점점 강해져서 능력치 이상을 이루어내곤 하는 것이 한국팀의 전통적인 강점. 오히려 더 부담 없이 가벼운 기분으로 경기에 임한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유난히 몸이 가벼웠다. 1회 초 시작하자마자 늘 잘했던 이용규의 안타와 내내 부진하다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 날린 결정적 홈런으로 부담을 털어낸 이승엽의 홈런이 이어지며 두 점을 선취했고, 7회에도 이용규의 2루타에 힘입어 한 점을 추가했다.
하지만 쿠바도 1회 말과 7회 말, 실점 직후 곧바로 솔로 홈런 한 방씩을 날려 바짝 따라붙는 강팀의 면모를 과시하며 3대 2의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그리고 운명의 9회 말. 단 2실점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끌고 온 선발투수 류현진의 체력이 고갈되고 주심의 석연치 않은 개입이 더해지면서 위기 상황이 연출되었다.
쿠바 선두 2번 올리베라가 좌전 안타를 친 뒤 3번 엔리케스의 번트로 2루까지 진루했다. 2루 주자를 들여보내면 동점이 되지만 타자를 내보내면 역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류현진은 4번 타자 세페다를 회피할 필요가 없었지만, 마지막 집중력을 끌어모아 스트라이크존 구석으로 정교하게 제구한 공들이 잇따라 볼로 판정되면서 1루가 채워졌다. 그리고 반드시 승부를 해서 결과를 만들어야 했던 다음 5번 알렉세이 벨의 타석에서마저 회심의 승부구들이 계속 볼로 판정되었고, 결국 볼넷이 허용되며 1사 만루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됐다.

▲2008년 8월 23일 한국야구대표팀의 강민호가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서 9회말 1사 1,2루 알렉시스 벨 타석때 제대로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아 주심에게 항의하고 있다.
유성호
더구나 벨에게 던진 마지막 공이 볼로 판정되던 순간, 경기 내내 유지되던 스트라이크존이 갑자기 좁아졌다고 느낀 포수 강민호가 몸을 돌려 의문을 표시하자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주심 카를로스 레이 코토는 단호하게 퇴장 명령을 내리며 한국팀을 더욱 몰아붙였다. 강민호가 미트를 두 번이나 팽개치며 격하게 항의했지만, 불어나는 것은 사흘 뒤 통보된 벌금 액수뿐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부상 때문에 뛸 수 없었던 베테랑 진갑용에게 마스크를 씌워 내보냈고, 투수 역시 선수단에서 가장 안정된 제구력을 가진 전 시즌 우승팀 SK 와이번스의 마무리투수 정대현으로 교체했다. 짧은 안타 하나만으로도 역전 끝내기 점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 게다가 내내 앞서왔던 경기를 마지막에 내줄 위기 상황에 주전 포수의 퇴장까지 목격하며 흔들린 선수들의 심적 상태.
이미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치러진 세 번의 대회에서 모두 결승전에 올라 모두 승리하며 금메달 3개를 가져갔던 쿠바는 여유가 있었고, 사상 첫 금메달 도전이 마지막 순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몰린 한국은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뀐 투수 정대현의 얼굴에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고, 쿠바의 전설적인 강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상대로 무덤덤하게 스트라이크 두 개를 연달아 던졌다. 좁아지던 주심 역시 트집 잡기 어려운, 하지만 천하의 구리엘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끔 낮게 깔려오는 낯선 궤적의 언더핸드 싱커.
그리고 역시 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단순한 정면 승부라는 듯, 가운데 낮은 쪽으로 찔러 넣은 세 번째 스트라이크는 구리엘이 건드릴 수밖에 없었고, 정대현이 의도한 그대로 그 타구는 유격수 박진만의 글러브에서 시작해 2루수 고영민과 1루수 이승엽에게 이어지는 병살타가 되고 말았다. 극적인 한 점 차 승리로 얻어낸, 한국 야구의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2008년 8월 23일 한국야구대표팀 선수들이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서 3대2로 승리한 뒤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자축하고 있다.
유성호
올림픽 금메달, 특별한 울림
올림픽이란 한국인에게 특별한 울림을 가지는 단어다. 나라가 없던 시절 금메달을 딴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에 얽힌 소동을 겪으며 '나라'를 생각하게 했고, 88 서울 올림픽 유치 결정 장면이 수백 번 되풀이 재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바덴바덴'이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와 '쎄울, 코레아'라는 발음을 기억하게 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는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모든 부문의 뉴스들이 단신 처리됐고, 메달을 다투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방송될 때는 대입 시험을 앞둔 고 3 교실의 시청각교육용 TV도 잠시 달리 활용되곤 했다.
심지어 산업화 시대에는 올림픽이나 IOC와 아무 관계도 없는 '월드 스킬(world skill)'이라는 국제 기술경연대회에 자의적으로 '기능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국의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메달 획득 의지에 불을 붙이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올림픽은 '국가'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 최고'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꿈속으로 품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올림픽에서, 일본과 쿠바의 최정예 대표팀을 상대로 두 번씩이나 완승을 거두며 얻어낸 금메달이란 한국야구가 세계를 제패했다는 표현에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 없게 만드는 일이었고, 야구를 하고 보고 즐기는 일에 거리낌 없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사건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은 '베이징 세대'라는 표현을 낳을 정도의 광범위한 영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IMF 경제위기의 여파로 침체기를 겪기 시작한 뒤로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한 한국 야구의 강력한 반격이었고, 야구에 대한 특별한 감정 없이 자라온 젊은 세대와 여성들까지 야구장으로 이끌어 들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08년 8월 23일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목에 금메달을 걸고 시상대 위에 섰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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