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코코순이>
커넥트픽쳐스(주)
그가 공정한 심문관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그녀들은 일본인이나 백인 어느 기준으로 봐도 예쁘지 않다"라는 문장에서도 나타난다. 인격을 의심케 할 만한 이런 서술은 요리치 본인의 문제점보다도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긴 상관의 안목을 의심케 한다.
더 황당한 대목도 있다. "낯선 사람 앞에서 그녀들의 태도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그녀들은 여성의 간계(wile)를 알고 있다"라는 문장이다. wile은 엉큼함이나 속임수로도 번역된다. 위안부 여성들이 겉으로는 양순하지만 실제로는 엉큼하고 간계를 부린다고 서술한 것이다. 굳이 쓸 필요도 없는 이런 내용을 그는 보고서에 담았다. 그가 위안부 문제의 공정한 사관(史官)이 될 수 없음은 이런 서술만으로도 잘 드러난다.
공정한 심문관의 자질을 결여했기 때문에 그가 내린 결론에도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안부들이 돈도 많고 대우도 융숭하게 받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이 위안부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은연중에 사실 실토
보고서 7쪽의 인적 사항을 살펴보면, 위안부와 심문관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영화 제목으로 등장한 코코순이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요리치가 상대방의 성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15번 연무지(Yon Muji), 16번 오푸니(Opu Ni), 19번 오키송(Oki Song), 20번 김겁투고(Kim Guptogo) 등의 인명이 그러하다.
심문관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포로의 이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명 중에 한두 명이라도 일어를 잘했다면, 그 한둘이 나머지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정확히 전달해줬을 것이다. 요리치 본인도 그 한둘을 통역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발음이 불분명한 인명들이 보고서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미국 상관들이 한국인 인명에 서툴지 않았다면, 그는 보고서를 다시 써야 했을 수도 있다.
포로들과의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도, 요리치는 위안부들에 대해 7쪽이나 되는 보고서를 생산했다. 이는 그가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보고서 말미에 적혀 있다.
위안부들의 인적 사항을 적은 7쪽 끝부분에, 함께 붙들린 일본인 위안소 업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38세 된 기타무라 도미코, 41세 된 기타무라 에이분이 그들이다. 성도 같고 주소도 같은 이 두 사람이 모리치의 진짜 심문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안부들이 돈이 많고 대우도 잘 받았다는 진술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매주 수요시위 현장에 나타나 '위안부는 사기다'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과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이들을 응원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핵심 논거 중 일부는 요리치의 보고서에서 나왔다. 이 점은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일본 정부가 얼마나 허술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일본 정부와 극우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베를린 같은 데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이유도 알려준다.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세력이 그처럼 허술한 자료들에 의존하고 있으니, 그들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위안부들에게 불리한 서술을 하는 와중에도 요리치가 이 문제의 실상을 보고서 곳곳에 흘렸다는 점이다. 그의 보고서에서는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위안부를 자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튀어나오곤 한다.
요리치는 업자들이 여성들을 동원할 때 '위안부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부상병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말도 했었다고 알려준다. 그는 여성들이 이런 말에 속아 버마로 오게 됐노라고 말한다. 오늘날 위안부 문제의 쟁점 중 하나인 '자발적 참여 여부'에 관해 요리치가 적절한 증언을 해준 것이다.
이 대목은 요리치가 피해 여성들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로 폄하한 배경 중 하나를 시사한다. 거짓말에 속아 버마까지 가게 된 여성들이 그의 눈에는 불쌍하게 보이기보다 한심하게 보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요리치는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통제를 받은 사실도 노출했다. 일본군이 가는 곳마다 이들이 있었으며 일본군의 규정이 이들에게도 적용됐다고 설명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등이 극구 부인했던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요리치가 실토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49번 보고서는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쪽이 아니라 긍정하는 쪽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자료다. 신뢰성 낮은 요리치의 태도는 이 자료에 근거한 극우 세력의 주장을 배척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보고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기·기망에 의한 강제연행과 일본군 개입의 실상은 일본의 국가범죄를 입증하는 데도 유용하다. 르포영화 <코코순이>가 일본 극우세력의 무기인 이 보고서를 소재로 진실 규명에 나서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