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섞여 있는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권우성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 핵심인사들의 위선적 언행이었다. 정부 초반인 2018년 9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이 폭등하는 와중에 라디오에 나와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며,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후반에 들어선 2021년 3월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신의 강남 소유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14% 이상 올려 받은 것이 드러나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그 시기가 임대료 인상폭을 5%로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이런 행태는 부동산 정책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비난 받아야 할 일만 한 것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로 임기 동안 소득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개선됐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70위까지 추락했던 언론자유지수를 42위, 아시아 1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표현의 자유 확대는 현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대외적 상황으로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남북화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국우선주의로 수렴하는 세계 속에서 외교적 균형을 비교적 잘 지켜낸 것 역시 호평 받을 만하다.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등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다양성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나름의 실천을 한 것 역시 평가 받아야 한다.
방역은 어떨까?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확진자 수가 폭등하자 야당과 보수언론은 '총체적 실패'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객관적 평가와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지난 일주일간 하루 평균 30만 명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사망자 역시 늘어 하루 평균 205명에 달한다. 수치로 보면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려워 보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예컨대 미국은 확진자가 하루 평균 3만 5천명 수준이지만, 사망자는 무려 1292명에 달한다.
이는 인구비율 사망자 수를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100만 명당 297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한국은 203명으로, 미국의 15분의 1 수준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현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과학적'이고 '불필요하다'고 비난해 왔으나, 철저한 추적을 통해 확산을 막고 백신 접종률을 비약적으로 높여 시간을 번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성과였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에서 수배에서 수십 배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가운데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식당가가 한산하다. 2020.12.9
연합뉴스
방역 정책의 문제는 따로 있다. 일선의 보건 노동자들과 자영업자에게 희생을 요구하고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방역을 위해 고객 수와 영업시간을 제한한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 유럽, 일본이 자영업자에 수천 만 원에서 억대의 피해보상을 할 때, 한국은 고작 수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 적은 액수조차 기획재정부의 비협조를 변명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자영업자들은 절망에서 죽음의 길을 걸었다. 이것을 무능 아니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정권은 교체됐다, 그 다음엔?
현재 한국사회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부의 집중으로 인한 불평등 심화, 직업 불안정, 비수도권 황폐화, 낮은 출생률, 노인빈곤, 약자와 소수자 혐오 확산, 기술기업(테크기업)의 독과점과 지배 강화로 위협받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복잡한 문제들이 한데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대외적 요인과도 연결돼 있다.
실타래처럼 뒤얽힌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뇌수술에 요구되는 섬세한 판단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한국 유권자들은 검찰 출신의 '정치 신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는 '뇌수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최근까지 당선자가 보인 태도는 깊은 우려를 낳게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받았음에도, 사과와 반성을 모르는 태도가 그렇다. 그는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남녀갈등에 대해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당선자가 트럼프가 그랬듯 '전임자 정반대로 하기'에 몰두하는 태도 역시 우려스럽다. 비록 핵심적 영역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다수의 유권자는 문재인 정부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 정부의 성공한 정책을 계승하며 과오를 바로잡기보다 '문재인 지우기'에 골몰한다면, 역시 트럼프가 그랬듯 실패를 재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향후 5년은 윤석열 정부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앞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탄핵으로 쫓겨났던 보수세력의 복귀'라고 말했다. 어렵게 얻은 이 기회를 날려 버린다면, 앞으로 다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시민들은 5년 동안 잠자코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은 들끓는 촛불에 밀려 탄핵에 앞장섰던 장제원 비서실장 내정자와,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윤석열 당선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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