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간에 이상 소견이 있어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고 오는 길. 눈이 내려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은주
이것으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일까. 이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왜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을까. 왜 아파도 그 사실을 숨겨야 했을까. 수술을 끝내고 퇴원한 후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까.
건강검진을 통과하여 우리나라에 일을 하러 온 청년이 일을 하는 도중에 위중한 병을 얻었다. 누구나 갑작스럽게 아플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대비하여 건강보험제도가 있고, 2019년 7월부터 이주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로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제때 건강검진을 받고 의료기관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의하면 제조업, 건설업에 비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상태는 열악한 반면, 의료기관을 이용한 비율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건강상의 문제로 의료기관에서 진단, 검사 또는 치료가 필요하지만 받지 못한 비율을 나타내는 '미충족 의료율'도 제조업이 17%, 건설업이 22.3%인 데 비해 농업이 62%로 가장 높다. 그 이유는 하루 노동 시간이 길고 한 달 평균 휴일이 2일밖에 안돼 병원에 갈 시간이 없고, 의료진과 의사소통하기 어려우며, 거리가 멀거나 교통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농업 사업장의 다수는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이 불가능해 지역보험 가입 비율이 높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반씩 부담하는 직장보험과 달리 지역보험은 보험료 전액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외국인은 자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내국인의 평균 보험료를 납부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100만 원을 벌건 200만 원을 벌건 외국인 지역보험 가입자는 13만 원가량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게다가 농업사업장은 5인 미만인 경우가 많아서 산재보험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안 나으면 자기네 집에 가야지"
로타씨가 입원 후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데는 3~4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병이 위중하다 보니 중증환자로 등록을 했고, 이후에도 계속적인 검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원래 일하던 사업장에 이 사실을 알리고 휴가를 받는 것이 필요해 로타씨와 함께 고용주와 전화 통화를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고용주와의 첫 통화부터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X! 바빠 죽겠는데! 나도 몸이 아픈데 밭에 나와 일하고 있고. 나도 꼴이 말이 아니야. 애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나도 병 생겼다고. 그까짓 자궁에 혹 좀 달렸다고, 떼면 그만이야. 요즘은 암이라도 치료하면 다 나아. 안 나으면 자기네 집에 가야지. 아픈 사람들이 한국에 뭐하러 돈 벌러 왔어!"
왜 고용주는 아픈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얻은 병에 대해 '그까짓'이라고 할 만큼 질병에 대해 잘 알까. 건강검진에서 통과한 사람, 20~30대의 젊은이들이 이주노동자로 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걸까?

▲로타는 고향에서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래서 책에 관심이 많아요. 저랑 다닐 때는 꼭 서점에 들릅니다.
정은주
돈만을 쫓아온 기계가 아니고, 자신들의 꿈을 함께 가지고 온 사람,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은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가 될 사람들이라고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걸까? 많이 아파서 지금은 쉴 수밖에 없지만, 빨리 나아서 농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노동자에게 아프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을까.
로타씨는 고용주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아픈 것을 꽁꽁 숨겼을 것이다. 고용주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울음이 터진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몸이 아픈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
수술을 한 지 몇 달이 지나도 로타씨는 일을 할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었으나 워낙 큰 낭종을 제거한 데다가 길고 깊은 상처가 배에 남았다. 병원에서도 힘을 많이 들이는 일은 당분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였다.

▲ 2021년 2월 큰수술을 잘 이겨내고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 로타씨
정은주
그러나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 E9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 신분이었다. 고용허가제도 안에서 이주노동자는 정해진 기간 지정된 업체에서만 일을 할 수 있다. 로타씨처럼 큰 병에 걸려도, 충분한 휴식 기간을 갖지 못하고 자유로이 일터를 옮길 수 없다. 업무상 재해, 질병, 임신, 출산 등의 사유가 있을 시에는 조금의 여유가 더 주어지지만, 로타씨가 수술 후 받은 진단서로는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에 의거, 최대 3개월의 기간에 한 달의 유예기간을 더 받을 뿐이다.
그동안 구직 등록을 하고, 여러 곳에 면접을 보러 갔으며, 혹시나 수술로 일을 구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처음 일한 농장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업장 이동을 신청하였고, 그 후 정해진 기간 새로운 일을 구하지 않으면 로타씨는 첫 고용주의 말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미등록으로 남아야 했다.
부지런히 구직활동을 한 덕분에 기간 안에 그녀는 새로운 일을 찾아 충청도의 한 농촌으로 떠났는데, 그때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였다, 결국 며칠 되지 않아 수척해진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버섯을 기르고 상자에 담아 옮기는 일을 했는데, 힘에 부쳐서 일을 못하게 된 것이다.
다시 돌아와 있는 동안에도 3개월 안에 일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마음이 편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동안 틈틈이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도 받으면서 혹시나 전이가 되지 않았나 하고 가슴을 졸이는 시간도 있었다. 가끔 통증이 찾아왔지만 열심히 구직등록을 하였고, 지금은 또다시 새로운 일을 구해서 갔다. 새로운 일터의 고용주는 로타씨가 병원에 가기 위해 안산에 올 때면 경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나에게 자주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물어본다. 이런 '사장님'을 만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 로타씨는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아야합니다. 2021년 12월 병원가는 버스안
정은주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2020년 12월 20일 냉기 가득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을 거둔 이주노동자 속헹씨를. 그 후 우리 사회는 여러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도 더 이상 제2, 제3의 속헹씨가 생기지 않도록 한목소리를 내어오고 있다.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건강보험의 비합리적인 적용을 고쳐보려는 시도 등의 긍정적인 움직임이 그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속헹씨가 숨을 거둔 이후에도 노동자가 일터와 숙소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로타씨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겨우 한 발자국 비켜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일만이 아니다. 조금만 넓게 보면 이 땅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의 이야기가 된다.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장에서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수술이 막 끝나고 마취가 깨기 전인데 제가 손을 잡아주니, 제 손을 30분이나 잡고 놓지않았어요.
정은주
2022년 1월 7일 드디어 캄보디아에 있는 속헹씨의 유가족으로부터 국제우편이 왔다. 안에는 고 속헹씨의 산업재해 보상보험 관련 청구를 우리가 제안한 법률사무소에 위임한다는 가족의 위임장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그 죽음에 대해서라도 온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바람이 1년 넘어서야 답을 받은 것이다.
죽은 날로부터 20일 후면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그녀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죽음이 남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살피고 논의해나갈 것이다. 비록 아주 천천히지만, 속헹씨의 가족들에게서 온 우편처럼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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