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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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보다 부드럽고 편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대륙 봉쇄령 이후, 특히 전쟁과 혁명, 왕정복고 등의 격변이 마무리되고 시민들이 일상적 소소함을 즐기기 시작한 비더마이어 시대(1815-1848)에 접어들어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커피 대중화와 함께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도 커피메이커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이런 움직임을 이끈 것은 유명한 과학자도 천재도 아니었다. 양철공과 같은 노동자들이었다.
유럽에 비해 산업화와 커피 대중화가 늦었던 미국에서는 1865년에 매사추세츠 주에 살던 제임스 네이슨(James H. Nason)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미국식 커피포트인 퍼컬레이터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스팀의 압력을 이용한 방식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 그의 직업은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에서 완성도 높은 퍼컬레이터가 등장한 것은 1889년이었다. 일리노이주의 농부였던 한슨 굿리치(Hanson Goodrich)가 요즘 커피메이커와 거의 같은 방식, 즉 스토브 열을 이용하여 용기 하단을 가열하면 용기 중간에 있는 튜브를 타고 물이 올라가서 중간에 설치된 거름망 속의 커피 가루를 적시는 방식이었다. 프랑스 양철공 조셉 로랑의 커피포트와 같은 원리를 이용하였다. 굿리치는 평범한 농부였다.
드디어 1908년 지금 우리가 즐기는 종이 필터를 이용한 드립 방식이 등장하였다. 독일의 평범한 주부 멜리타 벤츠(Melitta Bentz)의 발명품이 그 원조이다. 그 이전까지는 터키식으로 커피가루를 주전자에 넣고 끓이든지, 커피포트를 사용하여 내리든지, 아니면 천 종류인 융(Flannel)을 여과 도구로 사용하여 거르는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었다.
벤츠는 이런 불편한 방식을 개선하여 커피의 역사를 바꾸었는데, 그녀가 처음 사용한 필터는 아들이 사용하던 노트를 찢어서 만든 필터였다. 이 종이 필터를 받치는 드립퍼가 초기에는 어떤 소재였고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벤츠의 종이 여과지를 이용한 드립 방식은 일본 커피인들을 통해 대중화되었다.
이처럼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커피 제조 기술은 과학자의 명석한 두뇌나 대형 기업이 가진 자본의 힘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90대의 주교, 평범한 양철공, 농부, 그리고 가정 주부의 생활 속 경험과 생활상의 필요가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역사이다.
갑과 을이 분명치 않던 아름다운 시대
19세기 커피의 역사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유럽에서의 커피의 대중화와 소비의 폭증으로 인해 '제국의 시대'에 커피 생산에서는 식민주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대단한 기술력이나 공장이 필요 없는 커피 생산 과정의 특징으로 인해 19세기 후반까지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피 생산에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커피는 노동자와 농민들도 마시는 대중적 음료로 의미가 확대되었고, 브라질의 등장으로 커피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소비의 증가가 생산량의 증가를 가져왔고, 생산량의 증가는 가격을 안정시켰다. 안정된 가격으로 커피 소비 인구와 소비량은 다시 늘어났다. 이런 거대한 선순환 과정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적 야욕이 끼어들기 어려웠다.
철도망의 개설과 기선의 등장으로 커피 수송 비용이 낮아진 것도 이러한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었다.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맞아 돌아가는 커피의 생산과 거래 과정에 강대국이 관여할 여지가 크지 않았다. 가공 과정에 기계와 자본이 필요했던 설탕 산업 등과는 달랐다.
독일인들이 과테말라 커피농장으로 노동 이민을 왔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브라질 커피농장으로 향했다. 커피 생산의 세계에 갑과 을이 명료하지 않은 비교적 아름다운 시대, 커피 생산지에 소소한 행복이 넘치던 시대였다. 거대 자본과 결합을 시작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이 좋아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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