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사 뉴스 앵커가 무료 검사를 받기 위해 전날 오후 1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17시간을 길에 서서 기다린 여성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비단 이 여성뿐 아니라 멕시코 전역 무료 검사소 앞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열 시간 혹은 스무 시간 이상 기다리며 노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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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검사소까지 왔다면 이들 대부분은 이미 감염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다. 열이 있거나 혹은 심한 기침이 있거나. 그런데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으니, 언뜻 이해가 쉽지 않다. 게다가 항원 검사의 경우 30-40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갔으니 그 돈만 내면 이렇게 줄을 서는 일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매일 멕시코 전역 수만 명이 그 돈을 아끼자고 하루 전부터 밤을 새워 줄을 선다. 30-40달러의 여윳돈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인 이곳 멕시코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 검사 받지 말라'는 보건당국
결국, 보건 당국이 나섰다. 무료 검사소를 늘리겠다는 내용을 기대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대국민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보건부 차관 우고 로페스 가텔(Hugo López-Gatell)의 발표는 '검사를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증상이 있다면, 검사를 받겠다고 검사소로 오지 말고 각자 집에 머물라는 것이었다. 검사를 위한 장비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지간하면, 검사를 받지 말라'는 보건부 차관의 발표에 사람들이 비웃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무료 검사소 앞에서 열대여섯 시간씩 기다리며 노숙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증명, 그뿐이었다. 치료를 위한 보건 당국의 관리는 일말 기대치도 않았다.
통상적으로 멕시코의 경우, 중증이 아닌 이상 무료 치료가 가능한 공공 병원에 갈 수 없다. 설령 중증이라도 그들 모두가 병원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멕시코에서 병상 점유율이 비교적 낮게 유지되는 것과 입원 환자들의 사망률이 유독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사설 병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수만 달러를 넘어서는 그 곳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2022년 1월 13일 멕시코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Andres Manuel Lopez Obrador)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와중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비해 증상이 훨씬 경미하고 백신 접종을 한 이상 중증으로 갈 우려가 거의 없음을 전하며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그에게는 이번이 코로나바이러스 두 번째 감염이다.
멕시코 대통령처
그럼에도 이들이 확진 증명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각 개인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증명하고 그에 기반하여 공공 병원의 진단서가 나와야 '병결'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증명서는 사설 검사소와 국가 검사소 모두 효력이 인정되지만, 그에 기반한 진단서는 공공 병원에서 발급된 것만 효력을 갖는다. 급여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무료 검사소 앞에 줄을 선 이들이 열대여섯 시간씩 기다려 확진 결과를 받는 것은 병결 허가를 받기 위한 전초전인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
검사지를 확보한 후엔 공공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진단서를 받는 일마저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진료증을 신청해야 하는데, 새벽부터 병원 앞에 줄을 서고도 당일 진료 쿼터가 마감되어 진단서를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진찰을 받는 것도 아니고, 양성 결과를 확인해주는 진단서만 받는데도 끝도 없이 긴 줄을 서야 한다.
그나마 들어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줄을 선 이들 대부분은 기약 없는 내일을 기다리며 다시 밤을 새워 줄을 선다. 문제는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방문한 이들도 이들 사이에 뒤엉켜 같이 줄을 선다는 점이다. 그 곳에서 다시 2차, 3차 감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무료 검사소 앞에 모여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잠든 사이 있을지 모를 새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도착하는 대로 앞 사람에게 번호를 묻고 자신의 손등에 그 다음 번호를 적는 식으로, 각자의 손등에 연번을 적어 자기들끼리 순서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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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다시 보건 당국이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들은 공공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병가를 위한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인데, 역시나 실효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설령 접근한다고 해도 시스템 불안정으로 성공적으로 진단서를 발급받기까지 엄청난 인내력을 요구한다. 결국 다시 확진자들이 거리로 나와 공공병원을 빙빙 둘러싼 채 일반질환자들과 섞여 줄을 서는 위험하고도 슬픈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2022년, 새해가 시작된 이후 지상파 방송 뉴스에서는 연일 줄! 줄! 줄!을 외치고 있다. 그 앞에 '믿을 수 없는' 혹은 '기록을 깨는'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1월 19일,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확진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6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종일 뉴스에서 '역사적 기록'이란 말이 흘러나온다. 지난 1월 1일 1만 명 언저리에서 시작되었고 그제 4만 명, 그리고 어제 5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무서운 기세다.
▲멕시코에서 코로나바이러스 4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어린아이들도 감염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아이들 역시 무료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열 대여섯 시간 이상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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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시간 혹은 스무 시간 이상 추운 일기 속에 노숙할 수 없어 검사소에 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역사적인 숫자 6만 명에 몇 배를 더 곱해야 현실적인 계산이 나올지 아득하다. 그간 목숨을 잃은 자의 수가 46만 2211명에 이르니 나의 삶 역시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마냥 멀리 있을 수 없다. 그 중 다섯 명은 나의 이웃이었고 동료였다.
4차 대유행이란 이름으로 다시 시작된 이 광기의 시간들이 언제쯤 잠잠해질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서로가 무사하기를,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의 숫자가 더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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