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 이주노동자 자녀인 고교생 K의 추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고기복
유학생 비자 D2로 입국했다가 구직활동 비자인 D10으로 갱신하고 체류 중이던 몽골인 청년 P의 경우를 보자. 지난해 10월 그는 횡단보도 적색 신호에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보험사, 경찰에 접수된 사건이었고 도한나씨가 상담을 맡았다.
"한국어는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법을 잘 몰랐습니다. 경찰에 접수되니까 겁을 냈던 것 같아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체류에 문제가 생길까봐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 하더군요. 불안이 가장 큰 걸림돌이에요."
아주 작은 문제로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이주민들을 어눌한 사람으로 만든다. 정확한 법 조항과 그 의미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두려워지고, 쫓겨나는 사람들의 선례를 보고 들으면서 두려움은 증폭된다. 법의 힘은 강하고 경험은 구체적 공포를 낳는다. P는 응분의 보상을 포기하면서 사건이 서둘러 종결되기만을 바랐다. 교통 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에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같은 경우 선주민들은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이라는 다른 경험에 기댔을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불거질지도 모르는 차별에 대한 불안이 그에게 불리한 선택을 강요한 셈이다.
누가 죽어도 바뀌지 않는
최근 몽골인 단기비자 체류자들은 더욱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항공편이 여의치 않아 출국 희망자들도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3개월 관광 비자로 들어와 기간을 넘긴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월 1회씩 체류 기간을 연장해 왔다. 그런 상태로 1년을 넘긴 사람도 있다. 문제는 연장된 체류 기간 동안 생계를 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주로 건설 노동이나 이삿짐센터의 일을 합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청소 노동이나 식당 노동을 하지요. 모두 임시직입니다. 애초부터 비전문취업 비자인 E9나 전문취업 비자인 E7과는 처우가 달라요. 이들은 1년 자동연장이 되었습니다."
체류 자격과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문제도 많이 발생한다. 도한나씨는 거의 매일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는다. 국제결혼 등의 법률상담도 있지만 최근의 상담 내용은 주로 임금 체불과 퇴직금 관련이다. 들어주고 조언하는 데에 그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연결한다. 자원봉사자들이다.
"상담 목적은 문제 해결입니다. 예를 들면 이주노동자가 납입한 외국인 출국만기보험금을 퇴직금 전액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돈은 출국 때 수령할 수 있고 퇴직금과 차액이 발생하면 고용인이 지급해야 하는 거예요. 이주민들은 심지어 퇴직금이 발생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또는 퇴직금을 정산해서 받았는데 금액이 틀려요. 가령 50만 원을 덜 받았다고 우리가 항의를 하면 30만 원만 주고 말아요. 거듭 항의를 하고 조목조목 따져야 받아낼 수 있지요. 임금의 경우에도 본인이 출퇴근 시간대를 기록한 것을 근거로 받아내기도 하고요."
언어도 유창하지 못하고 부당함과 불합리를 겪어온 이주민들이 이런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수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완강한 벽에 부딪히는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가 죽어야 바뀌거나 죽어도 바뀌지 않는 열악한 현실. 도한나씨의 활동은 그래서 사각의 사각 지대에서 도전하고 부딪치는 일이다.
"처음에는 언어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어렵지요. 한국어는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제게 더 어려운 부분은 법률입니다. 계속 바뀌는 법 조항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요. 법률용어, 특히 인권침해와 관련된 단어를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일상어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죠. 법 조항이 바뀌면 제도도 바뀝니다. 이걸 놓치면 안 되고 계속 따라잡으면서 이주민들에게 정보도 제공해 드려야 되거든요. 의료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적인 용어가 많아서 환자에게 제대로 통역해 주기가 어려워요."
통역과 문제 해결이 일상이 되는 삶. 도한나씨는 먼저 이주한 사람으로서 길을 개척하고 후에 온 사람들이 넘어질 때 일으켜주는 자라고 자신을 인식한다. 이주 10년이 넘으면서부터 한국 국민이라는 자각도 강해졌다. 그러나 그의 자부심과 의지를 흔드는 아픈 일들은 끊이지 않는다.
무지, 혐오, 폭력은 하나의 고리
지난 7월 경남 양산의 몽골 국적 여중생이 또래 여중생 4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고 그 영상이 유포된 사건이 12월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가해자들은 속옷 차림인 피해자의 손과 다리를 묶고 뺨을 때렸고 술과 담배꽁초를 강제로 먹였다. 사건 당시 관련 신고가 3건 있었고 피해 학생이 다음날 피해 사실을 경찰에 호소했다. 조사는 한 달 후에 이루어졌다. 피해 학생은 영상 유포 혐의도 주장했으나 경찰은 이들에게 폭행 혐의만 적용했다.
사건이 부각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외국국적 여중생을 묶고 6시간 가학적 집단폭행한 가해자 4명 강력처벌·신상공개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랐고 답변 기준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상태이다. 인권위는 경찰과 학교의 초동조치가 적정했는지 직권으로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주한몽골여성총연맹에서 거듭 항의 집회를 열고 호소한 이후였다.
12월,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호텔에 근무하는 한국인 남성이 5명의 몽골인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몽골 국영방송 등의 현지 매체들이 양산 여중생 사건을 보도한 며칠 후였다. 범행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각 언론은 보복 범행으로 의심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지난 7월 경남 양산의 몽골 국적 여중생이 또래 여중생 4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고 그 영상이 유포된 사건이 12월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MBN 뉴스 화면.
MBN
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야 할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1월 양산 여중생 사건에 대해 교육당국이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학폭위는 피해 학생을 배제하고 열렸고 가해 학생들은 사회봉사 처분만을 받았다. 피해 학생은 학폭위가 열린 사실조차 몰랐다고 전해졌다. 등기우편으로 학폭위 개최를 알렸으나 우편물이 반송되었다.
사건 담당 수사관이 한 달 만에 진정서를 반려한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관은 피해 학생 부모의 동의를 얻었다고 했으나 가족 측의 주장은 달랐다. 한국어에 서툰 이주민 가족에게 이 절차는 정당했는가. 도한나씨의 다음 설명은 그래서 더욱 중요해진다.
"2021년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작성한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초중고생 535만 6천 명 중 다문화가정의 학생은 2.8%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꾸준한 증가세이고요. 아이들이 학업을 잘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 수업만으로는 어려운 현실에서 경제적 이유로 사교육이 쉽지 않지요. 그렇게 되면 친구들과의 소통도 힘들어집니다.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소통 이외에 학부모와의 소통에도 노력해주기를 바랍니다. 가정통신문 하나도 이주민들에게는 어려운 과제가 됩니다."
실제로 이주민 학부모의 경우 가정통신문을 사진으로 찍어 그에게 보내오기도 한다. 글자는 읽어도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손 글씨일 경우 해독 자체가 어려워서이기도 하다. 통신문을 번역해서 답을 작성해주면 글자를 베껴 그리다시피 해서 학교나 어린이집으로 회신을 하는 형편이다. 이런 문제들을 사소하게 넘길 수 있을까. 우리는 자녀교육을 사소하게 여겨왔던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대기자가 많습니다. 당장 일하러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지요. 신청서류를 작성하는 데도 곤란을 겪습니다. 원장을 대신 만나고 통화를 대신해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미등록의 경우에는 대기 명단에 올리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물론 교회 부설기관이나 민간어린이집도 있겠지요. 그쪽은 원비가 더 비쌉니다. 외국인은 국공립이든 민간시설이든 정부지원을 못 받아요. 다행히 최근에는 일부 지역에서 보육료 지원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린이집을 거치고 초등학생이 되면 다문화 인권수업을 받기도 한다. 이주민 자녀들만 따로 문화체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한나씨는 인권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이 상처가 되고 이런 무지와 무관심이 쌓이고 굳으면 차별과 혐오,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도한나씨는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입국해서 자신이 체험한 고난과 그를 이겨내고 일구어낸 상대적 안정보다는, 나중에 온 이들의 어려움을 말하고 싶어 했고, 이 땅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의 말미에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주민으로서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가 이제 입시생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어려워요. 다문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사교육에 매달렸지요. 아이가 학원을 쉬고 싶대요. '뺑뺑이 돌린 돈이 아깝다, 계속 다녀라'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입시 정보에 자신이 없어서였어요."
결국 학원을 그만둔 아이의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보고서야 머리가 굵어진 아이에게 강요는 나쁜 약임을 그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땅의 선주민 엄마들과 같은 깨달음이었고, 그는 한 번 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지향하는 공동체는 몽골이냐 한국이냐, 짓궂은 농담이었던 마지막 질문에 그가 조용하게 미소를 지었다. 답은 인터뷰 후 보충 자료를 보내온 소포에 담겨 있었다. 상자 안에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실태조사 보고서>((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 발행)라는 책자와 함께 차곡차곡 정리되어 묶인 마스크 수십 개와 다섯 통의 손 세정제가 들어 있었다. 인터뷰 장소였던 그의 일터 한쪽에 천장까지 높게 쌓아올려진 상자들의 압축판이었다.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사무실에 쌓여 있는 코로나 방역물품. 한국의 몽골인 단체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것으로 몽골로 보낼 예정이다.
이경란
▲이주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을 위한 안내책자도 제작 배포하고 있다. 한글과 외국어로 함께 쓰인 책자의 서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느 업체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을 위해 안전장치설치나 작업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을 작업에 투입하기 전에 안전교육이나 안전한 작업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충분히 시키는 경우가 없다. 산업기술연수생이나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경우에도 불과 3일간의 한국어 교육만 시킨 채 산업현장에 투입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그나마의 교육도 없이 작업에 투입된다."
이경란
상자들은 몽골로 보내기 위해 이주민들이 정성을 모은 방역 물품들이었다. 스무 개 가량 결성되어 있는 몽골인 커뮤니티가 결속한 구체적 증거. 그것이 선주민인 이웃에게까지 흘러온 것이다.
개봉한 상자를 앞에 두고 속절없이 시인 이성부의 <벼> 중 몇 구절을 중얼거렸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햇살 따가워질수록/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