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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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거래를 방임하였던 브라질 왕정이 1872년에 막을 내리고 공화국이 세워졌다. 이를 주도한 것은 상파울루 주의 커피 재배업자들인 파울리스타(Paulistas)였다. 이들은 노예를 대신할 노동력으로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자 집단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선택하였다. 이들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사람들(colonos)은 임금을 받고 대형 커피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정착을 하였다. 작은 집과 땅을 받고 시작한 이들이 곧 브라질 커피 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이탈리아에서, 20세기 초반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200만 명 이상에 달하였다.
1900년까지 상파울루 주에서만 커피나무가 5억 그루 이상 심어졌다. 커피 재배지는 상파울루 지역을 넘어 남쪽과 서쪽의 고지대와 오지로 확대되었다. 1870~71년 평균 커피 생산량에서 브라질은 세계 생산량 660만 자루의 46.9퍼센트인 310만 자루를 차지하였고, 1900~1901년도에는 세계 생산량의 77.5퍼센트 그리고 1901~1905년 사이에는 73퍼센트를 차지하였다. 사라진 실론과 자바 커피를 완전히 대체하였다. 그야말로 세계 커피 시장의 거인으로 성장하였다.
이 엄청난 양의 커피를 수출하는 항구 산토스(Santos)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16~7세기에 모카, 18~9세기에 자바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산토스가 있었다. 모카와 자바는 고급 커피의 대명사였지만 산토스는 저렴한 커피의 대명사였다.
이물질 커피, 블렌딩 커피
고급 커피의 상징인 실론 커피와 자바 커피의 실종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식은 커피에 이물질을 섞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색과 맛이 유사한 민들레나 치커리의 뿌리를 넣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갈수록 다양한 이물질들이 섞였다.
당시 커피 가루에 섞었다고 마크 펜더그라스트가 그의 책 <언커먼 그라운즈>(Uncommon Grounds, 2010)에서 밝힌 이물질에는 식물뿐 아니라 구운 말의 간(baked horse liver), 숫돌(burrs), 연탄재(coal ashes), 개 과자(dog biscuits), 해삼(gherkins), 모래(sand), 톱밥(sawdust) 그리고 벽돌가루(brick rust)까지 들어 있었다. 사용하고 남은 커피 찌꺼기 재사용쯤은 그야말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1884년의 <뉴욕타임스> 헤드라인 기사는 "모든 커피에 독(poison in every cup of coffee)"이라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대처 방법은 비싼 커피와 싼 커피를 섞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반화된 블렌딩이라는 방식을 찾아낸 것은 식료품 회사 배달사원 조엘 오슬리 칙(Joel Owsley Cheek)이었다. 대학 졸업 후 식료품 도매 회사의 외판원으로 취직하여 커피 배달을 하던 칙은 스스로 다양한 커피 생두를 로스팅 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커피마다 고유한 맛과 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칙은 여러 생두의 장점을 합하면 아주 훌륭한 커피 맛을 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블렌딩 커피를 창안한 것이다.
이후 여러 가지 커피를 블렌딩하는 실험을 지속하였고, 무려 8년의 실험 끝에 1892년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맛을 찾았다. 저렴한 브라질 산토스산 커피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두 종류의 중남미산 마일드 커피를 섞는 방식이었다.
칙이 만든 이 블렌딩 커피를 처음으로 공급한 것이 테네시 주 내슈빌 소재 맥스웰 하우스라는 호텔의 커피숍이었다. 이 커피숍에서 칙의 블렌딩 커피는 인기를 끌었고, 결국 칙은 자신이 개발한 블렌딩 커피에 '맥스웰 하우스'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전까지의 커피는 당연히 싱글 오리진, 즉 한 잔의 커피에 단 한 종류의 커피 원두가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맥스웰 하우스는 500년 이상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래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커피의 상식을 파괴함으로써 미국을 상징하는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실론과 자바 커피의 몰락이 가져온 고급 커피 실종과 커피맛 하락이라는 소비자들의 불행 속에서 찾은 행운이었다. 19세기를 마감하는 해인 1900년 칙은 친구 존 닐(John Neal)과 함께 회사를 창업하였다. 맥스웰 하우스의 등장이다.
커피 시장이 요동치던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의 대처 방법은 달랐다. 향도 없고 맛도 부족한데 카페인 성분만 가득한 로부스타 종 커피와 향과 맛이 뛰어난 아라비카 종 커피를 섞은 후 진하게 내려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를 개발한 것이다. 정확한 개발 시기나 개발한 사람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지금 우리가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등장하였다. 아라비카 종 커피가 부족해지면서 생긴 일시적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유럽 커피의 상징 에스프레소였다.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직원들이 다회용 컵에 음료 담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2021.9.28
연합뉴스
최근 커피 산업은 불행의 문턱에 놓여 있다. 1년여 전부터 시작된 브라질의 서리와 가뭄, 베트남 지역의 홍수로 인한 커피 생산량 급감과 팬데믹이 초래한 세계적 물류난이 겹침으로써 생긴 불행이다. 커피 생두 거래 가격이 1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생산원가 상승으로 인해 소규모 카페의 어려움이 심각해지고 있고, 커피값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불행도 시작되었다.
커피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불행 속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누구에게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에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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