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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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공적 복지를 늘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후퇴한 것도 아니다. 보수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 가릴 것 없이 민주화 이후 복지지출을 꾸준히 늘렸다. GDP 대비 사회지출은 지난 1990년 2.6%에서 2019년 12.2%로 30여 년 만에 4.7배나 증가했다. 복지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적지 않다.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후보들은 기본소득, 상병수당, 사회서비스 확대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경제 성장률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건실한 성과를 거두었다. 삼성, 현대, LG, SK 등 재벌 대기업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심지어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인원 1700만 명이 평화적 집회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21세기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순
그런데 우리가 직면한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꿈꿔왔던 선진국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이상하다는 말밖에는 한국인이 직면한 이 모순적인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람들은 부모 찬스를 사용하는 특권에 분노하고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피가 거꾸로 도는 울분을 느끼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을 지지하는 것을 주저한다. 불평등과 비정규직이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서울교통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하자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했다.
결국 한국인이 분노한 것은 성장제일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불평등한 결과가 아니었다. 한국인이 분노한 것은, 이웃의 안정적인 삶이 내 기회를 가로챈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사회가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매일매일 사람들이 스스로 죽거나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도, 청년의 미래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으로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생계를 접어도, 한국 사회는 그것이 치열한 경쟁의 결과라면 눈도 깜짝하지 않을 사회가 된 것이다.
연대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세금을 내고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지난 30년 동안 복지 지출이 늘어난 것도 사회적 연대의 결과가 아니었다. GDP 대비 사회 지출이 급증했지만 그 대부분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는 사회보험 급여였다. 북서 유럽에서 사회보험은 사회적 연대를 상징하는 제도이지만 한국에서 사회보험은 안정적 고용을 보장받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가르는 특권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8월 현재 정규직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률은 94.2%와 84.8%에 이르는 데 반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5.5%와 43.1%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사회보험은 내가 낸 것을 내가 돌려받는, 국가가 운영하는 또 하나의 보험 상품일 뿐이다.

▲성장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치운 우리의 노력은 연대 없는 사회를 만들고 성공의 덫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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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쩌면 헬조선이 된 선진국 대한민국의 모습은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공'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장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치운 우리의 노력이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기적 같은 성공을 위해 우리는 '나와 내 가족' 이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연대 없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성공의 덫'에 갇혀 버렸다. 어떻게 해야 이런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공적 복지를 늘리면 되는 것일까? 새로운 혁신기업을 육성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닐 것 같다. 만약 성공이 우리가 직면한 헬조선의 원인이라면,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성공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조금 느리게 갈 수도 조금 빠르게 갈 수도 있을 뿐이다.
재벌 대기업이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고,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기보다는 손쉽게 국외에서 부품, 소재, 장비를 수입·조립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경제구조에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생존경쟁은 지금보다도 더 치열해질 것이다.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연대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00년 전의 상상
많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오랫동안 대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각각의 대안이 실현된다고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저출산 현상을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했을 때 나를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은 여성이 일과 돌봄을 양립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은 지난 2019년 현재 한국의 0~2세 아동 보육률(해당 연령 아동 중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아동의 비율)은 62.7%로 스웨덴의 46.3%보다 1.35배나 높다. 그러나 성 평등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출산율은 더 낮아졌다.
그렇다고 보육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출산이라는 삶의 문제는 일과 돌봄의 조화만의 문제도, 성 평등만의 문제도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총체적 삶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경제, 정치, 문화라는 한국인의 총체적 삶의 조건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성공이 만들어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2022년 대선이 우리의 삶의 조건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2022년 대선이 우리의 삶의 조건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불가능하다고 현실성이 없다고? 그렇다. 경제구조를 바꾸고, 정치구조를 바꾸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총체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조선인들이 일제의 강점에 신음하고 있을 때, 앞으로 100년 후 조선이 독립된 국가로 세계의 문화를 주도하는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100년 전의 그 말도 안 되는 상상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작은 언덕을 오르는 번거로움일지도 모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협력해야 성장할 수 있고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야 더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제도와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현명한 한국인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정치가 예술인 이유는 바로 이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이 기대와 좌절이 반복되는 또 다른 5년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춤을 추고 싶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기쁨의 춤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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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영역은 복지국가를 정치, 경제, 복지의 통합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한국사회정책학회장(전), 시민사회에선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전)을 역임했고, 주요 저서로는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1~3, <이상한 성공> 등이 있습니다.
▲윤홍식 / 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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